교육이 없는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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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이 없는 나라
  • 이승섭 KAIST·기계공학
  • 승인 2023.05.27 1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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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에게 듣는다_ 『교육이 없는 나라: 서열화된 대학, 경쟁력 없는 교육, 불행한 사회』 (이승섭 지음, 세종서적, 256쪽, 2023.04)

 

공대 교수인 필자가 얼마 전에 책을 한 권 출간하였다. 책 제목을 다소 도전적으로 ‘교육이 없는 나라’로 하였지만, 열 번을 다시 생각해 보아도 제목은 잘 잡은 것 같다. 진정 우리나라는 교육이 없는 나라이기 때문이다. 필자의 책 내용 중 일부를 발췌하면 아래와 같다.

우리나라의 교육열은 세계 최고라고 한다. 부모들은 모든 것을 희생하면서 자녀 교육에 최선을 다하고, 아이들의 학습량은 세계적으로 손꼽히며 학업 성취도는 항상 세계 최상위권을 차지한다. 지난 세월 우리나라가 이룩한 경제 기적의 가장 큰 원동력이 이러한 높은 교육열에 기인하는 것은 결코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나, 오늘날 우리 사회는 우리나라의 교육과 입시 제도 그리고 학교에 대한 불만으로 가득하다. 

아이들은 학창 시절에 전혀 행복하지 않고 제대로 교육받고 있지 못하며 학업에 대한 흥미와 만족도는 항상 세계 최하위 수준이다. 정상적인 공교육과 가정 교육의 상실에 대한 우려는 갈수록 높아가고 가정 경제는 엄청난 사교육비에 짓눌려 있다. 심지어 혹자는 우리나라의 낮은 출산율에 대한 가장 큰 원인으로 과도한 사교육비를 거론하기도 하는데, 블룸버그는 작년 기사에서 우리나라의 세계 최저 출산율의 원인으로 ‘Hagwons, 학원’, 즉 사교육을 꼽았다.

“공부는 언제 가장 열심히 해야 하나?” 필자가 외부 강연을 시작할 때 던지는 첫 질문이다. 보기로 중학교 2학년, 고등학교 3학년, 대학교 2학년, 그리고 박사 과정을 예로 드는데, 청중들은 때에 따라 중고등학생, 대학생, 학부모님, 선생님들로 다양하지만 필자가 원하는 답을 듣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때로는 너무도 뻔한 답으로 인해 필자의 의도를 파악하고자 애쓰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는데, 뻔한 답은 물론 ‘고3’이다. 고3 때 공부를 열심히 해야 좋은 대학에 들어가고, 좋은 대학에 들어가야 더 나은 직장을 얻어 보다 나은 삶을 살 수 있다는 사회 통념 때문이다. 

가장 낮은 응답률을 보이는 답은 ‘대학교 2학년’인데, 역설적이게도 그것이 필자가 원하는 답이다. 왜 대학교 2학년일까? 교육 과정을 살펴보면 너무도 당연한 이 답변이 왜 우리 사회에서는 이렇게 어색하고 생뚱맞게 느껴지는 것일까? 대학 교수인 필자의 입장에서는 더욱 더 억울하고 안타까운 답변인 것만은 분명하다. 우리 사회가 ‘대학에 가기 위해 열심히 공부하는 사회’가 아니라 ‘열심히 공부하기 위해 대학에 가는 사회’로 바뀌었으면 하는 소망이다. 필자를 더욱 안타깝게 만드는 것은 같은 질문을 던지면서 간혹 ‘미국의 경우’라는 토를 다는 때인데, 그때는 많은 사람들이 ‘대학교 2학년’을 답으로 선택하곤 한다. 결국, 잘못된 교육 제도와 그로 인해 비롯된 사회 환경 탓으로 우리 사회와 아이들은 엉뚱한 곳에서 쓸데없이 시간과 노력을 낭비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 사회의 학부모와 아이들이 억울하고 국가와 사회는 교육을 통해 국가 경쟁력을 더욱 높일 수 있는 기회를 놓치고 있다.
  

몇 년 전 신문에 반수와 관련되어 대학 1학년생 중 휴학 및 자퇴 비율이 높은 대학교 순위가 발표된 적이 있었는데, 서울대의 경우 27%의 1학년생들이 휴학 및 자퇴를 한다는 내용이었다. 그 이유는 일단 서울대에 입학을 한 후에 더 좋은 학과 혹은 의대 진학을 목표로 대학 입시를 준비하기 때문이다. 그 나라 최고의 대학에 진학한 학생들 가운데 4명 중 1명 꼴로 대학 입시 준비를 다시 한다는 사실이 다소 당혹스럽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입시 전략 상 나쁘지 않는 선택일 수 있는데 일단 서울대에 학적을 걸어 놓고 한번 더 기회를 노릴 수 있기 때문이다. 

해당 뉴스를 접하면서 필자가 더욱 안타깝게 생각한 점은 결국 서울대 합격생 가운데 전공에 만족하지 않는 학생 비율이 최소 27% 더 나아가 40~50%까지도 가능하다는 사실이었다. 그 동안 필자가 가장 강조한 것이 “대학에서 열심히 공부해야 한다”는 것이었는데, 서울대 간판을 따기 위해서 자신이 좋아하지 않고 자신의 꿈과 관계없는 전공을 선택한 학생이 서울대에 들어가 과연 공부를 열심히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은 필자를 더욱 답답하게 만들었다. 어쩌면 현재의 교육 제도에서는 구조적으로 서울대는 물론 많은 대학교 학생들의 전공 만족도는 낮을 수밖에 없고, 더 나아가 상위권 대학들로 올라갈수록 그 정도가 더욱 심해질 수 있다는 가능성이다. 

오늘날 무한 경쟁 사회에서 점수와 서열은 모든 곳에 존재하며 우수성 혹은 경쟁력을 판단하는 중요한 잣대이다. 회사들은 매출액 혹은 시가 총액으로 서열이 정해지고 프로 축구팀은 리그 순위 그리고 선수들은 연봉 순이다. 우리나라의 대학들은 입학생의 내신 등급과 수능 성적 등으로 서열이 정해지는데, 입시철 대형 학원들이 제공하는 ‘지원 가능 대학 배치표’는 학부모와 수험생들에게 큰 영향력을 발휘하며 대학과 학과의 서열을 결정하는 기준이 된다. 또한 대학 입시가 마무리되는 시점에 발표되는 고등학교들의 의대와 서울대 합격생 수는 전국 고등학교의 서열을 결정한다. 

서열화된 대학 체계에서는 자신이 좋아하는 대학교 혹은 자신의 적성에 맞는 전공은 존재하지 않는다. 오랫동안 꿈꾸어 왔던 대학교도 운 좋게 더 잘 나온 점수를 받고 나면 아무런 망설임 없이 상위 대학으로 마음이 바뀐다. 어릴 적부터 로봇을 만드는 과학자가 희망이었던 학생도 높은 점수를 받으면 의대에 가라는 주위의 성화에 의대로 발길을 돌리고, 입시철에 이루어지는 고액의 입시 상담의 핵심은 해당 대학과 학과에 가장 낮은 점수로 들어갈 수 있게 하는 것이다. 그렇게 들어간 대학과 학과 그리고 전공에 무슨 애정이 있고 배우는 즐거움이 있을까 싶다.

우리 교육의 해결 방안으로 제시하는 필자의 제안은 ‘대학 차별화를 통한 대학 교육과 대학 입시의 정상화’이다. 기존의 한 줄로 서열화된 대학들을 ‘연구중심대학’, ‘교육중심대학’, ‘혼합형대학’ 등으로 차별화하고, 각각의 역할과 기능에 맞게 발전할 수 있도록 교육 정책을 수립하고 국가의 지원이 차별적으로 이루어지게 하자는 것이다. 대학의 차별화가 이루어지면 대학 입시는 우리 사회에서 인생을 결정짓는 ‘그 무엇’에서 원하는 대학과 전공을 정하는 단순한 통과 의례로 제자리를 찾아가게 되고, 그제서야 우리 사회는 중고등학교에서 진정한 교육을 할 수 있게 되며 사교육은 본연의 학업 보충의 장으로 돌아가게 된다. 

사회가 원하는 인재는 잘난 사람과 못난 사람으로 구별되지 않으며 점수로 순위가 매겨질 필요도 없다. 설사 순위가 매겨지는 경우라도 그 순위는 상황에 따라 언제든지 바뀔 수 있어야 하며 어린 중고등학교 시절보다 자신의 인생에 대한 책임이 더해지는 대학과 대학원 그리고 사회로 나가면서 정해지고 바뀌어져야 한다. 그리고 좋은 대학은 1등을 뽑아서 1등 혹은 2등으로 만드는 대학이 아니고 50등을 뽑아서 10등으로 만드는 대학이며 그런 대학들이 많아질수록 학생 개개인은 물론 국가와 사회의 경쟁력도 높아질 수 있다.

필자가 생각하는 ‘대학 차별화 제도를 위한 기본 원칙’은 다음과 같다.

1. 대학들을 ‘연구중심대학’, ‘교육중심대학’, ‘혼합형대학’ 그룹으로 나누고, 그 선택은 대학들이 스스로 결정하고 국가와 사회는 각 경우에 맞춰 차별적인 지원책을 마련한다.

2. 연구중심대학들의 경우, 학부는 최소화하고 대학원 중심으로 운영하며 세계 수준의 연구 성과와 석·박사 배출을 목적으로 한다.

3. 교육중심대학들은 학부 교육을 최우선으로 하고 대학원은 석사 과정까지 혹은 없는 경우도 가능하다. 물론 특화된 연구 분야의 경우 박사 과정 개설도 가능토록 한다.

4. 교육중심대학의 목적은 설립 취지에 따라 취업, 창업, 그리고 대학원 진학 등이 될 수 있으며 때로는 지역 중소기업들과의 현장 중심의 실증적 연구 개발도 포함될 수 있다. 

5. 혼합형대학은 연구중심대학과 교육중심대학의 중간 형태로 자연스레 연구 중심 혹은 교육 중심으로 방향성을 가지고 발전하거나, 설립 취지에 따라 더욱 새로운 형태의 대학들로 발전할 수도 있도록 한다.

6. 의대와 법대 혹은 약대 등은 전문 대학원 체제로 운영하며 교육 중심 대학 졸업생들이 주로 진학할 수 있도록 한다.


이승섭 KAIST·기계공학

KAIST 기계공학과 교수. 서울대 기계설계학과 학사 그리고 미국 캘리포니아 버클리 대학 (Universiry of California, Berkeley)에서 석박사를 마쳤다. 연구 분야는 초소형 기계공학, MEMS(Micro Electro Mechanical System)로 현재 KT 석좌교수이며 한국공학한림원 정회원이다. KAIST에서 학생처장, 입학처장, 글로벌리더쉽센터장을 역임하면서 교육과 입시에 대한 관심과 문제의식을 갖게 되었다. KAIST 입학처장 시절 『KAIST는 어떤 학생을 원하는가』(공저)를 출판한 바 있다. 교수협의회장과 함께 교학부총장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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