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시로 숨을 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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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시로 숨을 쉽니다
  • 문선영 서평위원/동아대·국문학
  • 승인 2023.05.21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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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베르타스]

 

   “나는 시로 숨을 쉽니다.”
   미국 시인 윌리엄 칼로스 윌리엄스(1883∼1963)를 등에 업은 영화 「패터슨」 후반부에 나오는 대사이다. 시로 숨을 쉰다니, 이런 어마어마한 일이···· 영화 「패터슨」을 보고 윌리엄스의 시집 『패터슨』을 따라 읽으면서, 시를 읽고 쓰는 일에 대해 다시 진지해졌다. 시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그 어느 누구라도 시를 쓸 수 있다는 윌리엄스의 시적 사유가 짐 자무쉬의 영화에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어서 참 좋았다. 무엇보다 장소가 사람이 되고 사람이 시가 되는. 그래서 숙연해졌다. 
  ‘패터슨’ 이야기. 사실 이 글을 쓰려 한 지는 7년쯤 되었다, 몽글몽글 마음 깊숙한 곳에서 우러나오는 습기까지 포함하면. 짐 자무쉬 감독의 영화 「패터슨」을 본 후 윌리엄스의 시들을 찾아보게 된 것인데, 쉬 말할 수 있을 것 같은, 그러나 정작 한마디도 하지 못한, ‘비밀 노트’에조차 끄적이지 못했던 말들. 이제야 겨우, 조금 풀어놓는다. 이는 순전히 며칠 전 책장 뒤편에서 윌리엄스의 시집 『패터슨』을 지나치지 못한 내 마음에다, 영화 「패터슨」을 다시 찾아보면서 옛사랑 같은 그리움이 훅, 몰아닥친 덕분이다. 여전히 시에 대한 상념은 가득 안은 채.

                            William Carlos Williams

   영화 「패터슨」의 주인공 이름은 패터슨이다. 뉴저지 패터슨에 사는 주인공 패터슨은 패터슨 출신이자 시집 『패터슨』을 쓴 시인 윌리엄스를 ‘영웅’으로 여긴다. 추앙하는 그의 시집을 늘 끼고 살면서 주인공 패터슨은 시를 쓴다. 패터슨 곳곳의 풍광들, 사람들과 조우하면서 버스 기사인 그는 늘 품고 다니는 노트에 시를 쓴다. 버스가 출발하기 전 운전석에 앉아서도 시를 쓰고, 점심시간에 폭포를 보며 밥을 먹으면서도 시를 쓰고, 퇴근 후 윌리엄스의 시집들과 관련 책들이 놓여 있는 지하실 자그마한 방에서도 시를 쓴다. 말 그대로 틈나는 대로 시를 쓰는 패터슨. 
   뉴저지 패터슨은 당대 가난한 이민자들이 대거 몰려 사는 마을이었다. 윌리엄스는 “이 세상에서는/ 육신을 입고 사람이 잘 살 수는 없다/ 다만 죽어 갈 뿐 ― 자기가 죽어 가는 걸/ 모르는 채 ; 하지만/ 그건 예정된 일. 그리하여 자신을/ 새롭게 하고, 더하기와 빼기로,/ 위로 아래로 걸으며”(「패터슨」) 살아가는 곳으로 패터슨을 보았다. 그래서 그는 『패터슨』 제1권 서문 마지막 부분에서 “이슬처럼 흩어지고,/ 떠도는 안개들, 비가 되어 내리고/ 강으로 다시 모여서 흐르고/ 둥글어지고:// 껍데기들과 작은 벌레들/ 보통 또 그렇게 인간에게,// 패터슨에게.” 라는 러브레터를 보낸 것일까. 단어의 배열이 흥미로운 윌리엄스의 시집을 끼고 뉴저지 패터슨을 불쑥, 방문하고 싶게 만드는 연서. 버지니아 울프의 책을 읽다, 브론테 자매가 살던 그 흔적을 좇아 버지니아 울프가 찾아간 하워스를 나도 간절히 찾아가고 싶었던 것처럼.
 
   패터슨 시에 걸린 시계 종소리가 9시를 울리는 때부터 매번 같은 동선으로 패터슨이 모는 23번 버스는 달린다. 아니, 6시 조금 넘어서 기상한 후 아내에게 모닝 키스를 하고 개켜진 새 옷을 들고 나오고 시리얼을 먹고 버스 회사로 출근하고, 퇴근 후 저녁 먹고 반려견 마빈과 산책하고 바에 들러 맥주를 한잔 하는 일상도 매번 반복된다. 그저 반복되는 듯 보이는 그의 일상은 그러나 매번 변주되면서 시가 된다. 과장하거나 허세를 부리지 않고 보이는 대로, 느끼는 대로 그의 진심이 가 닿는 것들은 오롯이 시로 형상화된다. “모든 만남이 주는 힘 같은 것”(윌리엄스)으로. 

   그의 시를 더욱 의미 있게 만드는 것은 그의 부인 로라와 퍼세이크 폭포이다. 그의 부인 로라는 따뜻하고 맑은 사람이다. 무엇보다 시를 쓰는 패터슨을 존중하고 사랑한다. 시 창작의 원천이기도 하고 그의 작품을 듣는 첫 독자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의 시 창작노트를 복사해 두고 언젠가 시집으로 나오기를 간절히 바라는 그녀이다. 패터슨이 윌리엄스의 시집을 아끼는 만큼 로라도 그의 작품들을 좋아한다. 특히 「그냥 하는 말인데 This is Just to say」를 좋아하는데, 그녀가 장터에 컵케이크를 팔러 가기 전에 패터슨에게 낭송해 달라 요청하는 장면은 너무나 사랑스럽다(영화 속에 나오는 윌리엄스의 작품이라 영화에 나오는 번역 그대로 옮겼다). 패터슨을 사랑하고 그의 시를 사랑하고 그가 사랑하는 윌리엄스의 시를 사랑하는 그녀.

냉장고에 있던 자두
내가 먹어버렸다오

당신이 
아침식사로 
남겨 둔 
것일 텐데

용서해요 
한데, 아주 맛있었소
얼마나 달고 
시원하던지 

   - 「그냥 하는 말인데」

   퍼세이크 폭포는 영화 「패터슨」을 아우르는 장소이다. 공간(space)과 장소(place)는 비슷한 개념으로 통용되지만, 지리학자 이-푸 투안은 ‘가치’를 기준으로 이 둘을 분명하게 구분한다. 저자는 “공간은 장소보다 추상적이다. 처음에는 별 특징이 없던 공간은 우리가 그곳을 더 잘 알게 되고 그곳에 가치를 부여하면서 장소가 된다.”(『공간과 장소』)고 했다. “패터슨은 퍼세이크 폭포 아래 계곡에 누워 있다”(「거인들 스케치하기」). 퍼세이크 폭포는 그것을 보며 ‘가치’를 부여하는 주인공 패터슨에 의해 장소성을 획득한다. 그리고 퍼세이크 폭포를 품고 있는 패터슨 역시 그곳에 ‘가치’를 부여하는 주인공 패터슨 덕분에 장소성을 획득한다.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고, 사람과 사물을 연결하고, 그래서 ‘가치’를 부여하는 곳.

   풀어야 할 공통 언어는 무엇인가?/ 폭포는 바위 가장자리의 서까래에서/ 일직선들로 빗질된다./ 때려 넣어라! 정곡을 찌르는// 어떤 구와, 야무지게 채워진/ 어떤 절 한가운데로. 그러고는····/ 이것은 나의 계획, 네 개의 섹션 : 우선,/ 드라마의 고통스러운 인물들.// 새와 덤불의 영원,/ 결정되고. 풀어냄 :/ 옆으로 늘어선 혼탁한 흐름,/ 나란히, 말하며! 힘과// 결합한 소리, 하강하는/ 힘 ― 높이에서! 경쟁하는/ 셔츠 소매 전도사의 거친/ 목소리, 내 말// 들으시오! 나는 부활이고/ 생명이오! 바르바도스,/ 사르가소 바다에서 온 농어와/ 강꼬치고기, 뱀장어들 속에서// 계속 외치며, 해안으로 올라가 일하네/ 그 너른 곳, 연못, 거친 개울까지―/ 세 번째, 구시가지 : 앨릭잰더 해밀턴은/ 세인트크록스, 그 바다에서// 일하고! 그리고 더 깊은, 그때/ 그가 왔다! 추위가 그쳤다./그 굳건한 포효로, 저기서/ 멈추었고 : 바위는 조용해// 그러나 물은, 돌과 결혼했기에,/ 얼었지만, 웅성웅성; 물은/ 얼었을 때에도 얼더라도/ 여전한 속삭임과 신음 소리 ―// 그리고 쌀쌀한 대기 속에서/ 공장의 종이 새벽마다 울리고,/ 논은 그이들 발밑에서 징징대고. 네 번째,/ 현대 도시는 일종의/ 육신이 없는 포효! 그 폭포와/ 그 산산이 부서진 아우성 ― 그래서/ 모든 배움으로부터, 안에서/ 부딪치는 그 텅 빈 귀, 포효하고····

   - 「패터슨 : 그 폭포」

 

   주인공 패터슨이 점심을 먹으면서 시를 쓰거나 상념에 잠길 때 찾아가는 폭포는 그의 시성을 집약하는 장소이다. 그래서 작품 곳곳에서 폭포의 물줄기와 물살은 오버랩되어 흐른다. 그의 사랑하는 아내 로라의 얼굴 위로도 흘러 넘친다. 퍼세이크 폭포는 작품의 배경이자 전경으로 작동하는 것이다. 여기서 ‘시적인 것’에 대한 물음은 이곳저곳에서 피어난다. 특히 작품 후반부에, 상심 가득한 패터슨이 폭포를 찾았을 때 절정을 이룬다. 
   시 창작 노트를 반려견 마빈이 갈기갈기 찢은 후 그 상심을 이기지 못하고 패터슨은 폭포를 찾아 마주하고 앉는다. 그때 ‘위대한 시인’ 윌리엄스의 흔적을 찾으러 온 일본인 관광객과 나눈 대화에서 ‘시적인 것’의 실체를 만난다. “당신도 뉴저지 패터슨의 시인인가요?” “전 버스 운전사예요. 그냥 버스 기사.” “패터슨의 버스 기사라…아아, 아주 시적이군요. … 윌리엄스의 시가 됐을 수도 있잖아요.” 
  거창하거나 대단한 담론에서 촉발되진 않더라도, 남들과는 다르게 특출나진 않더라도, 그저 사소하더라도, 그러한 일상 속에서 ‘가치’를 부여하고 끊임없이 나름의 의미망을 만들어 나간다면? “― 말하자면, 관념이 아니라 사물 그 자체로 ―”(「거인들 스케치하기」. 사람과 사람이 엮이고 사람과 풍경이 엮이고 사람과 사물이 엮이고. 의사로서 환자들을 만나면서 그 모든 것이 시가 되었던 윌리엄스처럼, 버스 기사로서 패터슨 시를 운행하면서 하루하루 만나는 사람들과 풍광들 그 모든 것이 시가 되었던 패터슨처럼. “풀어야 할 공통 언어는 무엇인가?”(「패터슨: 그 폭포」) 이때 환대와 공존의 마음자리를 만난다. 일상과 시를 마주하는 윌리엄스와 패터슨의 태도가 환대와 공존이 아닐까 하는 생각. 마주하는 그 모든 것을 진솔하고도 기껍게 만나고 받아들이는 마음자리가 환대와 공존이 아닐까 하는 생각. ‘시적인 것’에 대한 실마리를 만나는 순간.

그것은 전부
소리 안에 있다. 하나의 노래.
노래라 하기도 힘든. 그것은

노래여야만 하는 것 ― 세세한
것들, 말벌들,
용담꽃으로 이루어진 ― 어떤
긴박한 것, 벌어진

가위, 숙녀의 
눈 ― 깨어나는
벗어나면서, 당기면서.

   - 「시」

   윌리엄 칼로스 윌리엄스가 나에게 준엄하면서도 따뜻한 조언을 내미는 듯하다. 마치 영화 후반부에서 관광객이 패터슨에게 빈 노트 한 권을 내밀면서 “때론 텅 빈 페이지가 가장 많은 가능성을 선사하죠.” 하는 것처럼.
   “들장미들의 특징이/ 살을 찢는 것이듯,/ 나는 계속해 왔다”(「담쟁이 덩굴 왕관」)라고 말하는 윌리엄스처럼, 나도 그럴 수 있을까. “우리의 별 볼 일 없는 이들/ 그 끔찍한 얼굴의 아름다움이”(「사과」) 윌리엄스를 흔들었듯, 나도 그리 될 수 있을까. 삶의 모든 것을 시로 엮어내는 패터슨처럼, 나도 그럴 수 있을까. 아, 저도 시로 숨을 쉬고 싶습니다!

   “아름다움의 엄밀함은 바로 탐구다. 하지만 아름다움이 마음속 지난날 모든 불만에 갇혀 있다면, 당신은 어떻게 아름다움을 찾을 수 있겠는가?”// 개별적인 것에서부터/ 시작할 것,/ 그리고 그것들을 흠 있는 방식으로/ 총계를 내어 일반화하라 ―/ 나무에다 킁킁거리며,/ 많은 개들 중에서/ 다만 다른 개. 그밖에/ 뭐가 있나? 또 무얼 하나?/ 나머지는 다 바닥났다 ―/ 토끼를 쫓아./ 다만 절름발이만 서 있다 ―/ 세 발로. 앞뒤로 긁어라./ 속이고 또 먹어라. 파라/ 곰팡이 핀 뼈를(『패터슨』 제1권 서문).

 

문선영 서평위원/동아대·국문학

동아대학교 기초교양대학 교수. 시인·문학비평가. 부산대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국문학(현대시)을 전공하였다. 1990년 『문학예술』 제1회 신인상 시 부문 당선, 1991년 『심상』에 평론으로 등단했다. 지은 책으로는 『익숙한 소리』(시집), 『현대시와 문화의식』, 『한국전쟁과 시』 등이 있으며, 그 외 공저로 『한국 현대시와 패러디』, 『한국 서술시의 시학』, 『한국 현대문학의 성과 매춘』, 『몸의 역사와 문학』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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