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용 횟수와 연구의 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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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용 횟수와 연구의 가치
  • 조동일 논설고문/서울대학교 명예교수·국문학
  • 승인 2023.05.21 0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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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일 칼럼]

발표한 논문이 인용되는 횟수로 연구의 가치를 평가하는 방식이 널리 통용되고 있다. 이에 따라 국가, 대학, 분야, 개인 등의 등급이 결정되고 있다. 그 내역을 안에 들어가 자세하게 살피려고 하면, 함정에 빠져 노력을 낭비하고 시야를 잃는다. 전체를 크게 보고, 무엇이 문제인지 총괄해서 논의하기로 한다. 

그런 평가는 인용 횟수가 연구의 가치를 입증한다고 전제하고 이루어진다. 이것은 양과 질이 일치한다는 원리인데, 타당하지 않다고 복잡한 논의를 전개하면서 비판하는 수고를 생략해도 된다. 그 반대인 경우가 훨씬 많다. “모래는 엄청나게 많아, 아주 희소한 황금보다 월등한 가치를 가진다”고 하면 누구나 웃을 것이다.  

인용 횟수가 연구의 가치라는 부당한 전제는 학문의 본질을 정면으로 훼손한다. 학문은 지금까지 아무도 모르던 원리를 깨닫고, 새로운 이론을 창조하는 작업이다. 얻은 결과를 알아주는 사람이 거의 없다가, 시간이 한참 지나야 토론자가 나타나는 것이 예사이다. 당장 판단을 내려 인용 횟수가 모자란다는 이유로 평가를 절하하는 것은 용납할 수 없는 횡포이다. “갈릴레오가 지구는 태양 둘레를 돈다고 하는 것은 찬성자가 전무해 전적으로 부당한 헛소리이다.” 이런 것이 한때의 헛소리로 끝나지 않고 지금도 이어진다. 오늘날의 갈릴레오도 배척받고 욕을 먹는다.

인용 횟수가 연구의 가치라고 하는 것은 전연 부당한 헛소리인데, 널리 통용되고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이렇게 받아치면 깨부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저질의 기만술이 든든한 배경이 있어 진실을 누르고 크게 행세하면서 세상을 우롱하는 것을 알고 대처해야 한다. 든든한 배경은 자본주의와 민주주의이다. 역사의 종말을 선언하면서 등장한 이 두 거인이 너무 위대한 탓에, 무력한 사람들을 더욱 초라하게 만드는 배신을 한다.

자본주의나 민주주의는 많은 장점이 있다. 열심히 일해 좋은 상품을 생산하게 한다. 중지를 모아 누구도 가질 수 없는 능력을 발휘한다. 이런 장점은 안에 숨고, 단점이 활개를 치는 것이 예사이다. 사기 치는 광고를 잘하면 좋은 상품이 된다. 거짓말이 뛰어난 술수가 대단한 인기를 만들어낸다. 인용 횟수가 많은 연구물이 훌륭하다는 평가도 이와 같다. 자유경쟁에 내맡겨져 저절로 선택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고, 상당한 정도의 술수가 개재되고 고도의 광고가 작용한다. 그 때문에 진정한 가치는 확인하기 어렵게 된다.

술수와 공고를 움직이는 눈에 보이지 않는 거대한 그물망이 있고, 그것을 미국에서 장악한다. 인용 횟수가 영어로 쓴 논문을 미국에서 내는 학술지에 투고해 그쪽의 심사를 받고 실어야 획기적으로 늘어난다. 다른 언어로 쓴 논문은 등급이 낮을 수밖에 없다. 우리 한국어처럼 외국인은 알기 어려운 말로 쓴 논문은 아무리 훌륭해도 이 시대 갈릴레오 신세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미국의 선행 연구를 받아들이고 따르는 하청업을 해야 의의를 인정하고, 독자적인 창조는 설 자리를 잃고 물러나게 한다. 규격화된 논문 작법을 따르지 않는 글은 연구가 아니라고 한다.

이런 사태를, 각국의 정부는 해결하려고 하지 않고 더욱 악화시킨다. 인용 횟수를 높이는 대학이나 분야를 특별하게 지원하는 방법으로 국가의 등급을 높이려다가, 학문 판도를 왜곡시켜 경쟁력을 떨어뜨리고 미국과의 차등을 더 벌여놓는다. 자기 길을 굳건하게 걷는 본보기를 보여주리라고 기대했던 중국이 남의 장단에 춤을 추는 경쟁에서 앞서려고 하는 것이 가관이다. 일본이 차지하고 있는 미국 다음의 자리를 빼앗으려고 국력을 기울인다.

잘못되고 있다고 개탄하기만 하지 말고 나서서 싸워야 한다. 유럽문명권이 주도해서 이룩한 근대학문의 폐해를 시정하고 다음 시대의 학문을 이룩하기 위해 나는 분투한다. 지나치게 나누어져 있는 학문을 통합해 인문학문이 하나이게 하고, 사회학문과 자연학문까지 포괄하는 학문 총론을 이룩한다. 학문을 하는 근본원리를 차등론에서 대등론으로 바꾸어놓는 것을 그 핵심 과업으로 삼는다. 이런 작업을 논문 작법을 거부하고 글쓰기를 자유롭게 하면서 한다.

전에도 인용 횟수가 많지 않았는데, 근래에 내놓는 연구물은 밑바닥 이하라는 평가를 면할 수 없다. 새로운 학문을 하겠다고 나서니, 소속 학회가 있을 수 없고 투고할 학술지도 없어져 자격이 공인된 대화상대는 찾지 못한다. 논문을 서로 인용해주는 품앗이를 하면서 정답게들 사는 마을을 떠나, 광야에 나가 소리친다. 업적이 모자란다고 대학에서 쫓겨날 판인데, 정년을 하고 한참 지나 다행이다. 지금 쓰고 있는 글이 인용 횟수가 아주 많은 논문보다 학문을 위해 더 큰 기여를 한다고 평가될 날이 온다는 희망을 가진다.  

광야에서 외로움을 위안으로 삼는 것은 아니다. 아직 학문의 길에 들어서지 않은 초심자들과 작당해서, 학문을 근본적으로 바꾸어놓는 커다란 혁명을 가까이서 일으키고 멀리까지 나아가려고 한다. 논문을 발표하는 과정을 거치지 않고 책을 바로 내는 것으로도 속이 차지 않아 새로운 시도를 한다. 가장 앞서나가는 발언을 유튜브 방송에다 하면서, 미래의 역군들과 직거래를 하고자 한다.

세상에 없던 책을 써서 석실에 감추어두고 후대에 알아줄 사람을 기다린다. 옛사람은 이렇게 말했다. 석실은 침해는 막을 수 있어도 부식은 막을 수 없어, 감추어둔다는 책이 거의 다 없어졌다. 오늘날에는 웬만하면 출판이 가능하고, 인터넷에는 더 쉽게 올릴 수 있다. 유튜브 방송도 그리 큰 힘을 들이지 않고 할 수 있다. 너무 많은 데 함몰된다고 염려하지 말자. 인연이 있으면 알아줄 사람들과 만난다. 

 

조동일 논설고문/서울대학교 명예교수·국문학

서울대학교 불어불문학과와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으며 같은 대학 대학원 국어국문학과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계명대학교, 영남대학교, 한국학대학원 교수를 거쳐 서울대학교 교수를 지냈다. 서울대 명예교수이자 학술원 회원으로 계명대학교 석좌교수를 역임했으며 현재 중국 연변대학 명예교수이기도 하다. 주요 저서로 <서사민요연구>, <한국문학통사>(전6권), <우리 학문의 길>, <인문학문의 사명>, <소설의 사회사 비교론>(전3권), <대등한 화합: 동아시아문명의 심층> 등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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