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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상룡 논설위원/부산대학교·철학
  • 승인 2023.05.21 0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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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룡 칼럼]

0.78. 한국의 합계출산율이다. 이 숫자가 의미하는 것을 곧바로 알기는 쉽지 않은데, 일단 이는 OECD 평균이 1.58명이고, 우리 바로 위인 스페인조차 1.19명이니, 압도적 꼴찌다. 2018년 최초로 0점대 출산율을 기록했고, 지금도 한국이 유일한데, 더 심각한 것은 이것이 바닥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쯤 되면 나라가 난리가 나야 하는데 어쩐 일인지 잠잠하다.

무슨 믿는 구석이라도 있는 걸까? 혹시 국난 극복의 자랑스러운 역사를 믿고? 나라가 위기에 빠지면 온 국민이 나서서 구할 것이다? 글쎄, 자랑스러운 국난 극복이라는 것은 사실 지배층이 아무리 나라를 말아먹어도 이 땅에서 살아야 할 사람들이 나서서 싸운 것인데, 작금의 저출생 현상은 나라를 구할 것이라고 기대되는 바로 그 만백성이 아이를 낳지 않아서 생긴 것 아닌가? 그렇다면 이는 백성들이 나라를 버리고 있다는 것이고, 작금의 저출생은 민란이기도 하다.

일반적으로 선진국일수록 출산율이 낮아지는 경향이 있다고 하지만, 유럽의 국가들과 달리 한국의 경우 출산율을 회복하기 어려운 이유로 꼽히는 것이 비혼이다. 91년 이후 합계출산율 저하의 주된 원인은 유배우자 출산율의 감소였고, 출산과 육아 비용을 지원하여 유배우자 출산율을 높이는 것이 정책의 주된 목표였다. 그런데 지금은 유배우자 출산율이 하락했을 뿐 아니라 비혼과 무자녀의 증가가 중요한 원인이 되었다. 게다가 프랑스의 신생아 중 62%는 혼외 출산이지만, 한국의 혼외 출산율은 2.9%로 세계에서 가장 낮은 수준이다. 출산율 반등을 위해서는 혼외 출산을 터부시해서는 안 된다는 제안이 일찍이 나왔지만, 그 제안을 한 교수는 당신 딸한테나 그렇게 하라는 비난에 시달렸다.

한국의 젊은이들은 출산과 육아 부담이 아니라 아예 사는 것 자체가 부담스럽다. 자기 한 몸 건사하기도 힘든데, 결혼은 무엇이고 출산이 무엇이랴. 사정이 이러한데 출산장려금 주고, 양육 수당 주고, 출산 휴가 주고, 아동 보육 서비스를 제공하면 얼씨구나 하면서 결혼해서 아이를 낳을까? 소득이 올랐다고 하지만 먹고 사는 건 여전히 팍팍하니, 애를 낳아 기르는 것은 제 발로 지옥의 불구덩이로 들어가는 것이다. 젊은이들이 왜 결혼을 안 하고 애를 낳지 않는지, 사실 우리 모두 너무나 잘 안다. 삶의 조건이 악화하면 출생률도 급격히 떨어진다.

그런데 우리는 여전하다. 일하는 시간을 줄여야 하는데 대통령까지 나서서 주 68시간제를 도입하자고 한다. 최저임금은 말 그대로 임금의 최저선인데 그 인상을 반대한다. 직장 상사는 젊은 부하 직원이 출산 휴가 가고, 육아 휴직 쓰고, 애 보러 일찍 퇴근하는 것이 마냥 못마땅하다. 세상은 경쟁을 통해 성장하고, 자원이 빈약한 우리나라는 믿을 건 사람밖에 없으니, 사람을 갈아 넣어서 살아남아야 한다. 일할 사람이 너밖에 없는 줄 아냐? 너 말고도 할 놈 많다. 기성세대는 약해 빠진 이기적인 젊은이들이 싫은데, 젊은이들은 “저출산으로 망하는 게 아니라, 망할 세상이라 저출산이다”라고 대꾸한다. 저출생은 경쟁 지상주의와 이로 인한 극심한 양극화의 산물이다.

저출생은 대학을 비켜 가지 않는다. 학령인구는 감소하고, 지방대에는 학생들이 들어오지 않는다. 지방대의 연구와 교육은 침체하고, 학술생태계가 파괴된다. 지역의 대학들에는 강사가 사라졌고, 대학원은 비어간다. 남아 있는 교수들은 학문 동료가 없으니 연구할 의욕이 없고, 강사들이 맡던 수업까지 하느라 연구할 시간조차 없다. 그런 대학에 무슨 희망이 없으니 젊은이들이 사라진 지역은 소멸하고 있다. 그로 인해 수도권은 부동산과 에너지, 교통의 문제로 점점 살기 힘들어지고, 서울의 출산율은 전국에서 가장 낮다.

그런데도 이러한 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고영선 KDI 연구부원장은 학생이 외면하는 대학은 스스로 문을 닫도록 하는 대학 구조개혁이 필요하다고 외친다. 이를 위해 졸업생 연봉, 대학과 학과별 취업률의 전국 순위를 제시하여 학생들의 선택을 유도하자고 소리 높인다. 이들의 머릿속에는 전체 대학의 입학 정원을 줄인다거나, 수도권 대학의 정원을 줄여서 지역대학을 살리자거나, 15,000명 이상의 대규모 대학의 입학 정원을 줄여서 상생하자거나 하는 생각이 들어설 자리가 없다. 이들은 학문의 발전도, 학술생태계의 유지도, 지역 균형발전도, 학문의 다양성 확보도 경쟁에 의해서 조정될 것이라고 믿는다. 이들에게 교육정책은 필요가 없다. 교육부가 시장 중심적 정책으로 교육을 망치는 것을 보다 못해서 교육부 폐지론이 나왔는데, 이들 시장 지상주의자 역시 교육부 무용론을 펼치고 있는 것이고, 현 정부의 라이즈 정책도 이런 시장주의에서 나왔다. 교육부는 고등교육정책과를 없앴고, 그 권한을 지자체로 이관하겠다고 한다.

그런데 지역 산업의 활성화는 대학의 일이 아니다. 대학은 대학의 일이 있다. 대학은 산업에 종속되지 않는다. 지역 소멸을 막기 위해서는 일자리가 있어야 한다고 하지만, 사람 사는 곳은 또한 동시에 인문사회예술이 있는 곳이어야 한다. 그런데 지금과 같은 고등교육 정책하에서는 지역의 대학은 취업 기관으로 전락할 것이고, 지역의 인문사회예술은 황폐해질 것이다. 서울 중심주의는 더 강화될 것이고, 지역 차별과 그에 따른 열등의식도 강화될 것이다. 수도권 대학으로 진학하기 위한 경쟁은 격화되고, 그 폐해는 깊어질 것이다.

각자도생을 끝장내고, 지역 공동체를 복원해야 한다. 지역의 청년들이 "그래, 너희들은 거기서 빡시게 살아라. 우리는 여기서 널널하게 살란다"라고 호기롭게 말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우리에게 부족한 것은 저출생의 원인에 대한 지식이 아니다. 해결방안을 모르는 것도 아니다. 없는 것은 정책 결정 집단의 의지다. 시키는 일만 해 온 사람들이 시키는 자리에 가니 그들이 시키는 일은 그들이 그동안 해왔던 일일 수밖에 없다. 그들은 새로운 일을 할 능력이 없고, 그러니 의지도 없다. 자칫 어설프게 의지를 가졌다 무슨 낭패를 당할지 두렵기도 하다. 그들은 변하는 세상에 대처할 능력이 없다. 그러니 그들이 내놓을 수 있는 대책은 돈을 줄 테니 애를 낳으라는 것이고, 글로컬 사업이다. 그렇게 우리는 실패하고 있다.

정부는 96년에 학령인구 감소의 도래를 알았으면서도 대학설립준칙주의를 도입하여 수도권 대학의 정원을 확대하는 정책을 시행했다. 그 결과가 지금의 지방대 붕괴다. 대학설립준칙주의로 실패했듯이 지금은 글로컬로 실패하고 있다. 그들은 체제를 바꾸고 싶은 생각이 없다. 조선의 유학자들이 성리학적 질서를 바꾸고 싶어 하지 않았듯이. 조선은 그렇게 망국의 길로 갔다.

기후 위기를 생각한다면, 지금은 멈춰야 할 때다. 기후 위기를 자초한 삶의 방식을 버려야 한다. 성장의 시대가 아니다. 선택과 집중을 버려야 한다. 더 열심히 일해서 더 잘 사는 나라를 만들자고 할수록 젊은이들은 결혼도 출산도 하지 않을 것이다. 지방대 위기 극복 방안은 지역의 산업이 아니라 지역 공동체를 살리는 데 있으며, 이는 기후 위기 대응과 따로 갈 수 없다. 세계가 변하고 있다는 것쯤은 다들 알고 있다. 그러나 지금의 체제와 헤어질 결심은 하지 못한다. 교수(professor)는 앞에서 말하는 자다. 시대를 쫓아가는 자가 아니다. 삶의 방식을 변혁하자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이상룡 논설위원/부산대학교·철학

부산대학교 교양교육원 강사. 부산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비트겐슈타인의 철학을 연구하고 있다. 대학 개혁, 특히 비정규교수의 노동에 관심을 갖고 있으며, 비정규교수노조에서 활동하고 있다. 「의사소통과 일치」, 「해명·치료·언어투쟁」, 「비트겐슈타인 삶의 방식의 변경」, 「대학 구조개혁 어떻게 할 것인가」, 「벼랑 끝 비정규교수」, 「대학의 신자유주의적 고용구조」 등의 논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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