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위 ‘글로컬 대학’ 구상의 허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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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위 ‘글로컬 대학’ 구상의 허구성
  • 남송우 논설고문/부경대 명예교수
  • 승인 2023.05.21 0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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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송우 칼럼]

소위 글로컬 대학 프로그램 응모 마감 시간이 임박해졌다. 그래서 이에 응하기 위해 모든 지역의 대학들이 마지막 안간힘을 다해 지혜를 짜내고 있다. 그 모습들은 처절할 정도이다. 글로컬 대학에 선정되지 못하면, 그 대학은 그 지역에서 소멸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절박감 때문이다. 이런 모습을 바라보고 있는 필자의 심정도 참으로 참담함을 느낀다. 학령인구의 감소로 인한 현 상황의 도래는 이미 예견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사태에 이르기까지의 결과에 대한 책임을 그 누구도 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소위 글로컬 대학 공모기획서에 담을 5장짜리의 모델로 교육부는 세계의 몇 개 대학들을 소개하고 있다. 미국 올린공과대학, 텔아비브대학, 캘리포니아 주립대학, 미국 브라운대학, 일본 리츠메이칸 아시아태평양대학, 애리조나대학 등이다.

미국 올린공과대학은 대학이 지역기업별 1대1 연구실 및 연구원(교수·학생)을 제공하고, 기업 연구개발 및 문제해결을 위한 프로젝트 중심 교수학습(PBL)으로 전면 개편했다는 점에서, 텔아비브대학은 모든 학생에게 전 교육과정에서 창업과 기업가정신을 교육하고, 대학 내 연구개발재단과 기술연구소는 창업 아이디어만 있으면 연구, 자금조달, 마케팅, 계약관리 등 전반에 관한 것을 지원하며, 교수진을 실제 경영인(CEO)으로 구성했다는 점에서, 캘리포니아 주립대학은 시도내 대학 간 통합을 통하여 캠퍼스 간 자원 공유, 유사 학과 통합 및 중복 업무 재배치, 캠퍼스별 기능 특화를 시도했다는 점에서, 미국 브라운 대학은 학부생 전원을 무(無)학과 단일계열로 선발하고 학생은 성적에 대한 부담 없이 자신의 학업 적성을 탐색하며, 학생(수요자) 중심의 전공 선택권 보장을 위해 학과별 정원을 폐지하고, 학과에서 설계한 교육과정이 아닌 학생이 관심 있는 분야에 맞추어 스스로 교육과정 설계했다는 점에서, 일본 리츠메이칸 아시아태평양대학은 다국가에서 국제학생을 전체 학생의 50% 이상으로 유치하고, 전 과목을 한국어·영어 이중 수업으로 진행하고, 전학생 100% 해외경험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애리조나대학은 지역기업과 연계하여 재직자의 재교육(upskill 또는 reskill)을 위한 학부 및 교육과정을 신설·운영한다는 점에서 글로컬 대학이 지향할 모델들이라고 보고 있다.

이러한 예시는 소위 글로컬 대학 공모에 참여하려고 준비하는 지역대학들에게 일종의 지침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교육부가 제시한 계획대로 5년 동안 예산만 지원하면 예시된 대학들처럼 될 수 있을까 하는 점이다. 이 점을 우리는 심각하게 고려해 보아야 한다. 이미 예시된 세계의 유수한 대학들은 그들 나름의 특화되고 유력한 대학으로 성장하기까지 우리와는 다른 문화적 토양과 바탕 위에서 상당한 시간 동안 전력투구한 결과이다. 특히 대학의 자율성과 그 대학이 위치한 지역민들과 산업체 운영자들의 집단적 지혜가 하나로 모여서 이룬 결과들이다. 

이에 비해 우리의 지역대학과 지역민들은 이러한 자발성과 자율성이 거의 작동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란 점이다. 이 근본적인 힘이 능동적으로 작동하지 않으면 아무리 많은 예산이 지원되더라도 이는 모래성을 쌓는 것에 불과할 수가 있다. 제대로 세계적인 대학을 세워나갈 수 있는 든든한 토대가 마련되어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세계적인 대학을 모델로 내세우는 이 자체가 우리에게는 허구일 수밖에 없다. 우리 지역대학의 새로운 모델은 우리 스스로가 만들어 나가야 할 과제이고, 다른 세계 대학과는 변별되는 고유성과 차별성을 지니는 정체성을 바탕으로 해야 한다. 다른 대학의 모델을 그대로 가져오는 식의 대학 개혁은 결국 늘 남 뒤따라가는 형국을 면하지 못한다.

지금까지 교육부는 수없이 많은 공모사업을 통해 대학의 체질을 바꾸어, 소위 세계적인 대학으로 발돋움하기 위한 프로그램을 시행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어떤 결과가 남았는지를 냉정하게 되돌아보면, 대학과 교육부는 국민에게 깊이 사죄해야 한다. 그 아까운 국민들의 세금만 날린 사업들이 너무나 많았기 때문이다. 자력에 바탕을 두지 않은 모든 일들은 자생력이 없기에 쉽게 허물어지도록 되어 있다.

10년 이상을 지속하고 있는 HK 사업을 한번 돌아보자. 아직도 스스로 인문학 연구소로서의 기능을 제대로 해나갈 수 있는 역량을 스스로 지니지 못하고 정부 지원에 의존하고 있으며. 계속적인 지원에서 탈락한 대학은 연구소 조직도 와해된 수준이고 연구 활동도 다 사라지고 없다. 이러한 대학의 체질을 근본적으로 완전히 바꾸지 않는 한 글로컬 대학 공모사업도 기존 공모사업의 전철을 밟을 가능성은 여전하다. 지나온 시절과는 상황이 급변하지 않았느냐고 반론을 제기할 수도 있겠지만, 대학 스스로의 자발성과 자율성이 담보되지 않은 대학의 개혁은 연목구어에 불과하다. 교육부는 5년 지원 이후에도 대학이 스스로 지역의 산업·사회와 연계하여 지속가능한 혁신과 성장을 추진할 수 있는 중장기전략 수립을 원하고 있지만, 현재 우리 대학들의 체질로는 이는 불가능하다고 본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지금까지 실패한 공모방식의 대학개혁 프로그램은 없어져야 한다. 이제 모든 것을 대학 스스로가 자율적으로 기획하고 실천하는 길을 완전히 열어주어야 한다. 그래서 자생력을 키워나가면서 지역민들과 함께 지역대학이 생존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나가는 길밖에 없다.


남송우 논설고문/부경대 명예교수·고신대 석좌교수

부경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명예교수 및 고신대 석좌교수. 1981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평론 부분에 「윤동주 시에 나타난 자기의 문제」로 당선, 평단에 나왔다. 평론집 『전환기의 삶과 비평』, 『다원적 세상보기』, 『생명과 정신의 시학』, 『대화적 비평론의 모색』, 『비평의 자리 만들기』, 『이것저것 그리고 군더더기』 등이 있다. 부산작가회의 회장, 부산문화재단 대표이사를 역임했으며, 현재 인본사회연구소 이사장으로 활동 중이다. 2019 부산시 문화상 문학 부문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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