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단 지성은 왜 집단 무지성으로 전락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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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단 지성은 왜 집단 무지성으로 전락하는가”
  • 이명아 기자
  • 승인 2023.05.20 0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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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단 착각: 인간 본능이 빚어낸 집단사고의 오류와 광기에 대하여 | 토드 로즈 지음 | 노정태 옮김 | 21세기북스 | 420쪽

 

최근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불러일으킨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나는 신이다〉에서는 대중의 심리를 이용해 자신의 쾌락과 권력, 경제적 이익을 추구하는 선동가가 등장한다. 이전에도 우리는 극단적 집단사고를 통해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한 사례를 접할 수 있었다. 분명 자신에게 해가 되는 결정인데도 왜 우리는 다수의 선택을 따라 이런 비이성적인 행동을 하게 되는 걸까?

저자 토드 로즈는 이 질문에 간단한 해답을 내놓는다. 바로 인간의 본능 때문이라는 것이다. 사회적 동물로서 인간은 다른 이의 생각과 시선에 따라 행태를 바꾼다. 당신이 실제로 좋아하지는 않지만, 다수가 좋다고 하면 괜찮은 듯한 착각이 들거나, 모두가 ‘그렇다’고 말할 때 ‘아니오’라고 답을 하지 못하는 경우를 떠올려보라. 다른 이들과 행동을 조율하고 싶은 충동, 사회학자들이 흔히 ‘순응 편향Conformity Bias’이라 부르는 이 현상은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소속감을 위해 거짓말을 하거나 침묵하고 방관하는 것은 인간의 생물학적 본능이다. 저자는 이러한 현상을 ‘집단 착각Collective Illusion’이라고 명명했다.

인류는 집단에 영향받는 사회적 동물이기에 집단의 선택이나 가치관에 대해 무비판적으로 믿고 따르는 경향이 있다. 특히 '다수'의 선택에 편향될 때 안정감을 느끼고, 사회적으로 인정받고 있는 것에 대해 쉽게 신뢰를 보낸다. 현대에 와서는 이것을 집단 지성이라 부르며 ‘집단’이 함께하는 ‘지성’이라면 언제나 더욱 좋은 결과를 도출할 것이라 굳게 믿는다. 그러나 저자는 집단 지성의 부작용으로서 ‘집단 착각’을 짚어내며 집요하게 파고들어 분석한다.

'집단 착각'은 정치, 종교, 경제 등 우리 일상의 거의 모든 분야에서 공통적으로 목격된다. 언론과 인터넷 토론방, 심지어 법정에서까지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집단사고의 오류를 키운다. 이것이 개개인의 생각을 좀먹으며 개인이 생각하고 행동하는 방식을 조작할 수 있다. 사회, 정치, 경제 시스템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는 집단 착각은 집단사고의 오류 중 하나로서 미디어, 정치적 선전, 문화적 규범, 사회적 압력과 같은 다양한 메커니즘을 통해 형성되고 강화되기도 한다.

현대사회에서 개인은 크든 작든 집단에 소속되어 있으며 아무리 주체적인 인간이라도 집단의 무의식적인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우리는 주체적인 선택을 내리는 존재라고 스스로 착각하지만 집단이 내린 올바르지 못한 결정을 아무런 비판 없이 습득한다. 이것은 특정 개인의 문제가 아니며 집단에 소속된 순간 진실 여부는 상관없이 믿음을 강화하는 사고방식과 연결된다. 집단은 위로부터의 특정한 의견을 피력하지도 않는다. 그러니 개인은 맞서 싸울 또는 저항하여 극복할 권력을 지닌 체계가 존재하지도 않는다. 우리는 실제 하지도 않는 집단을 스스로 있다고 판단하여 우리의 취향과 가치관을 버리고 ‘남이 생각할 법한 결정’을 상상하여 정반대의 생각을 습득한다. 집단 착각의 무서운 점은 바로 이것이다. 집단이라는 막연한 영역이 우리를 조종하는 것이다. 존재하지 않는 강력한 착각이 우리의 주변을 배회하고 있다. 이것을 인지하고 구별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집단 착각이 만들어낸 오류에 가장 부합하는 사고방식이란 자신은 올바른 결정을 내리는 존재라고 여기면서 타인은 모두 편견과 아집, 잘못된 가치관을 맹신하는 부정적인 존재라고 믿는 것이다. 여성 정치인도 남성 정치인과 마찬가지로 훌륭한 자질을 보유하고 있습니까? 여기에 반대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 질문을 조금 뒤집어서, 선거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어떤 후보를 공천해야 합니까? 묻는다면 모두 이전과는 달리 여성 정치인보다는 남성 정치인이 유리하다고 답하는 경향을 보인다. 이 질문은 자연스럽게 당이 승리하기 위해서는 백인 남성 정치인을 우선으로 공천하자는 주장으로 연결되며 집단 착각은 이를 당연하게 생각하게끔 만든다.

이는 저자가 우려하는 집단 착각의 가장 심각한 문제점과도 맞닿아 있다. 집단 착각은 단순하게 개인의 엉뚱한 결정을 의미하지 않는다. 집단 착각은 공공선에 반하는 결과를 도출한다는 위험을 지닌다. 우리는 결국 모든 타인이 ‘그렇게’ 믿는다고 착각하여 본인도 따르고 싶지 않은 ‘엉뚱한 선택’을 맹목적으로 좇아간다. 맹목적인 믿음으로 사회는 유능한 여성 정치인을 잃고 더 나아가 공공의 이익에 해가 되는 결정을 반복한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로서 끊임없이 주변과 상호작용하며 집단을 꾸리면서 살아간다. 이것이 필연적인 삶의 형태인 만큼 집단 착각이 주는 충격은 상상 이상이다. 기대고 뭉치고 함께하면 언제나 좋은 결과를 낼 것이라고 자부했는데 우리는 함께 뭉쳐서 더욱 형편없는 결과를 마주하고 이를 판별하지 못한다. 집단 착각에 빠져 원하지 않는 결정을 내리며 공공선에 반한다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저자는 집단 착각에 휘몰리지 말고 끊임없이 자신의 위치를 자각하고 의심하며 당연하다고 여긴 것들을 성찰하라고 조언한다. 이러한 조언으로 ‘집단’이 만든 보이지 않는 거대한 ‘착각’의 뿌연 안개를 조금은 걷어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쉽지는 않을 것이다. 그동안 보지 못했던 보이지 않는 손이 우리의 눈을 가리고 있었던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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