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 정보가 되다
상태바
생명, 정보가 되다
  • 이현건 기자
  • 승인 2023.05.20 02:3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생명은 어떻게 정보가 되었는가: 정보로서의 생명’개념의 등장과 생명의 분자화, 그리고 신자유주의 | 김동광 지음 | 궁리출판 | 336쪽

 

이 책은 우선 생명을 정보로 보는 관점이 형성된 역사적 및 사회적 맥락을 전체적으로 훒으며 재구성해보고 있으며, 이러한 정보로서의 생명 개념이 이후 생명공학, 인공지능, 신경과학 등으로 이어지는 전개과정에서 어떤 깊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지 밝히고, 그것이 오늘날 신자유주의와 전 지구적 생명 상업화에 어떻게 영향을 미쳤는지를 살펴보고 있다.

저자는 이 책에서 특히 2차 세계대전과 냉전이라는 시대상황 속에서 ‘정보로서의 생명’ 개념의 출현 과정을 조명하면서, 1953년 DNA 이중나선 구조 발견 이후 한층 강력해진 생명 통제의 열망과 이것이 생명에 대한 인식에 미친 영향을 정리하고 있다. 우선 이 시기에 정보 개념이 등장하는 과정을 살피면서, 전쟁이라는 상황 속에서 빠르게 개발된 컴퓨터들이 정보 개념이 발전하는 토대를 마련해주었음을 이야기한다. 또한 DNA가 생명의 암호를 담고 있는 물질로 발견되는 과정은 에르빈 슈뢰딩거의 『생명이란 무엇인가』 출간 후 예견되었다고 할 수 있는데, 생명이 4개의 염기 서열로 해석될 수 있다는 사실은 생명이 곧 암호(code)이고, 생명에 대한 이해가 암호풀이로 가능할 수 있다는 인식으로 나아가게 되었다.

1980년대 이후 생명공학과 신자유주의는 서로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를 유지해 가는데, 탈냉전시대의 거대과학인 인간유전체계획은 점점 커져가는 생의학 시장을 염두에 두고 인간 유전체의 염기서열을 분석하면서 생물학을 거대한 사업으로 만들어버렸다. 유전체를 ACGT의 염기서열 정보로 해석하게 되자, 생명공학은 곧바로 생명을 원하는 방식으로 조작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조작 가능성을 GMO와 유전자가위를 사례로 집중 분석하고 있는데, GMO는 오래된 주제이지만, ‘정보로서의 생명’ 개념이 분자적 패러다임으로 전환되어 구체적인 산물을 낳은 대표적 사례로 보고 있다.

재조합 DNA 실험이 성공하자 해당 연구 분야가 주목을 받기 시작했고, 인체 유해성 등의 안전과 윤리 문제가 충분히 검토될 겨를도 없이 향후 이루어질 시장에 대한 전망으로 GMO가 탄생했으며, 그 과정에서 불확실성은 늘 남아 있었다. 저자는 오늘날까지 GM 식품의 안전성을 둘러싼 불확실성이 해소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신자유주의와 신흥기술의 공(共)구성 과정이 낳은 피할 수 없는 결과로 보고 있다.

마지막으로 인공지능과 신경과학을 함께 살펴보고 있는데, 전쟁과 냉전의 산물인 인공지능과, 뇌과학으로도 불리는 신경과학은 최근 가장 뜨거운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 신경과학도 인간의 정신활동을 뉴런의 연결구조로 밝힐 수 있다는 ‘신경본질주의’를 토대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정보 생명 개념의 확장이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이 책은 2차 세계대전과 냉전 시기에 수립된 정보 및 커뮤니케이션 이론이 컴퓨터 기술과 함께 발전하면서 생명에 대한 ‘정보 담론’으로 자리잡는 과정을 조망하고 있다. 생명을 하나의 정보로 바라보는 일련의 흐름은 특히 신자유주의 이후 가속도를 내며 테크노사이언스의 전개에 깊은 영향을 미쳤다. 단순한 상업주의를 넘어서는 전 지구적 사유화 체제에 의해 분자적 측면에서 생명을 바라보는 시선은 크게 편향되었고, 초국적 자본의 논리에 따라 이윤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생명공학은 전개되며, 생명을 둘러싼 불확실성은 점차 높아지고 있다.

책의 1부는 생명을 정보로 표상할 수 있고, 이 정보를 해석해서 생명이라는 정보체계를 읽을 수 있다는 생각이 수립된 냉전 시기를 중심으로 사이버네틱스, 정보 이론, 컴퓨터 과학, 게임이론 등의 연구에서 나타난 인식적 경향을 토대로 ‘정보로서의 생명’이라는 개념의 출현과정을 고찰한다. 이들 냉전 시대의 전후 테크노사이언스가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던 전제들이 분자생물학을 정보과학으로 만든 중요한 원인이었음을 밝히려는 것이다.

2부는 생명 정보 개념이 확장되면서 오늘날 우리에게 중요한 의미를 가지게 된 여러 과학 분야들로 체화된 과정을 살펴본다. 일차적으로 생명공학이 수립되고 그 실행양식과 산물이 상업화 경향과 결합하면서 보건, 의료를 비롯해서 시민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고찰한다. 또한 1990년대 이후 신경과학과 인공지능 등의 새로운 전개양상 속에서 이러한 개념이 어떻게 심화 발전했는지 살펴본다. 오늘날 과학의 상업화, 또는 과학의 전 지구적 사유화 체제의 심화는 생명 그 자체를 대상화하고 있다. 이러한 상업화와 사유화의 뿌리에서 정보로서의 생명 개념이 어떤 인식적 기반을 제공하는지 밝히려 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