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도시공동체를 말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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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도시공동체를 말하는가?
  • 이현건 기자
  • 승인 2023.05.20 0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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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좌절의 시대, 분노와 혐오의 공간: 도시 현상학 | 황희숙·심재휘·최경숙·김덕삼·전병권·박재현 지음 | 한국문화사 | 308쪽

 

공동체는 국가, 시장과 더불어 인류사회에 ‘세 번째의 기둥(third pillar)’ 역할을 한다고 흔히 말해진다. 전 세계가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위기에 빠졌을 때 사람들은 공포에 사로잡혀 안전판과 보호막을 찾고, 더욱 강력한 정부에 의지하려 한다. 그렇지만 그런 불안과 혼란의 시기를 헤쳐나갈 때 필요한 것은, ‘리바이어던’ 같이 견제받지 않는 권력보다는, 시민사회와 공동체의 역량 발휘를 통한 대응과 조정 역할일 것이다. 사회적·경제적 위기의 순간, 국가의 영역 확대도 중요하겠지만 동시에, 사회의 여러 단위와 수준에서 실재하는 공동체의 개입이 중요하다. 그래야 자칫 비효율적으로 작동하기 쉬운 국가권력을 견제할 수 있고, 시민이 전통과 규범에 억눌리지 않으면서 자유를 누릴 수 있게 된다.

폴 콜리어(P. Collier) 같은 학자는 현재 자본주의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하면서, 그 원인으로 공동체의 실패를 들고 있다. 가족과 기업 그리고 국가 단위 모두가, 공동체보다는 개인 쪽으로 중심이 쏠리며 자본주의가 고장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나락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시민들이 공유한 정체성을 바탕으로 호혜적 의무를 발휘해 함께 생산성을 끌어올리고, 다시 자본주의가 잘 작동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사회학자 로버트 퍼트남(R. Putnam)이 2000년 『나홀로 볼링』에서 묘사한 것과 같이, 사회적 자본이 축소되고, 우리는 이제 공동체 활동 대신 혼자 고스톱을 치고, 가정의 식탁에서 밥을 나눠 먹는 대신 혼자 밥을 먹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 “같이 빵을 나눈다”는 의미의 ‘공동체’가 잘 유지되고 있는지 의문이다. 물론 팬데믹 이전부터 시민의 공동체 활동은 감소해 왔지만, 최근 2~3년간 그것은 거의 소멸 상태가 된 것이 아닌가 우려한다.

국내에서는 ‘절망의 죽음’이라 불리는 자살이 증가하고 있고 자산의 양극화가 심해짐에 따라 부자는 더 부자로, 빈자는 더 빈자로 바뀌어 가고 있다. 경제적 약자의 고용불안과 소득감소와 같은 심각한 경제 현상과 더불어, 사회적 불안과 공포가 확산되고, 가족 공동체 내에서도 구성원 사이에 불화가 빚어지고 우울증을 겪는 사례가 증가했다고 보도되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도 특정 인종과 종교 단체를 비롯한 사회 집단에 대한 편가르기 및 차별과 혐오 같은 사회현상이 여러 지역에서 심화되고 있다. 이런 모든 것이 우리 시대가 직면한 공동체의 위기이다.

이 공동체의 위기에 주목하기 위해서, 도시와 공동체 문제를 결합해 연구할 필요가 있다. 인구와 경제활동이 도시로 집중되어 산업혁명과 함께 ‘도시세(都市世, urbanocene)’가 시작되었다고 말해지기 때문이다. UN은 2018년에 세계 인구의 55퍼센트가 도시 지역에 살고 있고 이 비율이 급증하리라 추정했는데, 다른 통계에 의하면 이미 2015년 세계의 84퍼센트가 도시화했다고 한다. 도시에서 자본, 전문가들, 일부 계층만이 중요시되고, 인간적인 유대관계를 나눌 공간이 점차 부족해지고 있다. 도시문제를 개선하는 데 기초가 되는 것은 훌륭한 공간 설계, 특히 공공공간이다. 공동체 문제를 해결하는 한 가지 방안으로, 네트워크 교점으로서의 도시 기능을 살리고 커뮤니티 교류가 느껴지는 도시 구축방안을 연구할 필요가 있다.

도시와 공동체는 분과학문 연구자들이 독립영역에서만 다루기에 너무나 복합적인 일이 벌어지는 공간이다. 이제까지 공동체 연구와 도시 연구는 융합되지 못했다. 공동체는 철학, 정치경제, 환경문제, 지역문제 또는 민속연구 등의 차원에서 논의되었고, 도시는 정치경제, 사회문제, 건축과 도시개발 맥락에서 각각 별도로 조명되어 왔다. 

이 책의 필자들이 기획한 연구과제는 도시공동체 문제가 개별 분과의 학문적 접근법, 진단과 분석법, 방향과 대안 제시로는 부족하다는 인식에서 출발한다. 도시공동체 구성원들이 겪는 양극화와 분열, 좌절과 분노는 어떤 한 전공 분야의 연구로 해결책을 모색하기 어렵기에 여섯 분야의 전공자들이 모인 것이다. 이 책을 통해 필자들은 ‘도시공동체’의 문제를 기술하며 그 원인을 분석하고, 사회적 연대성이 회복되고 연결된 ‘열린 공동체’라는 대안과 그 구축의 방법론을 제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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