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의 실체와 그 기원…『혈의 누』로부터 『파친코』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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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의 실체와 그 기원…『혈의 누』로부터 『파친코』까지
  • 이현건 기자
  • 승인 2023.05.20 0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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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현대문학과 민족의 만화경 | 이경재 지음 | 소명출판 | 462쪽

 

한국 현대문학에서 가장 중요하게 다루어진 주제 중 하나는 민족이다. 민족은 19세기 중반 이후 사람들의 삶을 결정짓는 핵심적 요인으로 부각됐고, 한국의 현대문학도 민족에 대한 성찰 속에서 전개되어 왔다. 20세기 내내 침략적 민족주의와는 무관한 저항적 민족주의로 일관할 수밖에 없었던 우리의 처지를 생각한다면, 민족에 대한 강조는 더욱 자연스러운 일일 수밖에 없었다. 더군다나 분단국가로서 통일을 절대적인 과제로 삼고 살아가야 하는 우리에게 민족의 통일과 독립, 안녕과 번영을 최고의 목표로 여기는 민족주의는 누구도 그 가치를 부인하기 어려운 이데올로기였음이 분명하다.

하지만 21세기에 들어 민족주의에 대한 우리의 생각에 변화가 찾아왔다. 국력이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해지면서, 민족주의에 내재된 근원적 부작용에 대한 인식이 드러나기 시작한 것이다. 

이 책은 민족주의가 한국인의 삶과 한국 현대문학의 핵심적인 결정요인이었다는 사실을 인정한 바탕 위에서, 그것을 둘러싼 여러 문인들의 대응양식을 가능한 객관적으로 살핀다. 제목의 '만화경'이라는 단어가 시사하듯이, 민족(주의)에 대한 다양한 사유를 보여주는 여러 갈래의 문학담론을 있는 그대로 성찰한다.

제1부 ‘근대문학 형성기의 민족’은 근대문학 형성기에 민족을 둘러싸고 이질적인 모습을 보여준 신채호, 이인직, 이광수, 임화 등을 살펴본다. 제1장 「왜곡된 문명을 향한 청맹과니의 질주」는 최초의 신소설이라 일컬어지는 이인직의 「혈의 누」를 만국공법의 틀로 새롭게 바라본 글이다. 제2장 「이순신 서사에 나타난 민족정신의 양극」은 한민족의 구심력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는 이순신이라는 민족 영웅을 신채호와 이광수가 전유하는 양상에 대해 살펴보았다. 제3장 「사회주의자의 프리즘을 통해 바라본 이광수」는 사회주의 문학을 대표하는 임화가 이광수를 이해하고 평가하는 방식의 변천을 살펴본 글이다. 

제2부 ‘민족과 평양’은 평양이라는 공간을 통해 드러난 민족(주의)의 양상을 고찰한 글들로 이루어져 있다. 제1장 「‘오래된 미래로서의 과거’이자 박진사의 영혼이 숨 쉬는 성지」는 『무정』에서 평양이 민족계몽주의자인 박진사의 무덤이 있는 성지로서, 작품의 핵심적인 주제의식을 구현한 곳이라는 사실을 새롭게 밝혀보고자 하였다. 제2장 「평양 표상에 나타난 김사량 문학의 정치성」은 평양 출신의 대표적인 문인인 김사량의 소설에서 평양이 어떠한 정치적 의미를 지니는지 살펴보았다. 제3장 「평양 표상에 나타난 제국 담론의 균열 양상」은 김사량의 일제 말기 장편소설인 『바다의 노래』를 평양 표상이라는 관점에서 살펴보았다. 

제3부 ‘외국(인)이라는 거울에 비친 민족의 초상’은 제목처럼 한국 현대문학에 나타난 외국(인)의 모습과 그에 대한 인식에 대해서 살펴본 글들이다. 본래 민족이란 것이 나와는 다른 문화나 정서를 가진 사람들이 있다는 의식에 의해서만 대타적으로 성립할 수 있는 것이라면, 외국(인)에 대한 인식은 한국의 민족(주의)를 이해하는 첩경이 될 수도 있다고 판단된다.

제1장 「소년이 보여준 반식민주의적 탈민족주의의 양상」은 채만식의 「소년은 자란다」를 살펴본 글이다. 제2장 「20세기 우리에게 미국은 무엇이었나?」는 아직 일반에 널리 알려지지 못한 한흑구 소설에 나타난 미국 표상을 통시적으로 살펴보았다. 제3장 「재일조선인의 삶과 손창섭이라는 문제적 개인」은 손창섭이 도일한 후에 발표한 『유맹』을 살펴본 연구이다. 제4장 「한국 비평의 두 가지 내면풍경」은 국문학자이자 평론가인 이어령과 김윤식이 일본을 받아들이고 사유하는 방식에 대해 살펴보았다. 

제4부 ‘민족과 여성’에서는 민족주의의 맥락에서 여성이 표상되는 방식에 대해 살펴본다. 제1장 「민족주의와 여성 표상」은 한국문학에서 민족주의를 대표하는 원로작가 조정래의 작품에서 여성이 차지하는 위상에 대해 살펴본 글이다. 제2장 「이민진의 『파친코』에 대한 젠더지리학적 고찰」은 이민진의 『파친코』를 젠더적 관점에서 살펴본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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