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 없는 고등교육 개혁, 위기의 원인부터 다시 진단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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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 없는 고등교육 개혁, 위기의 원인부터 다시 진단해야
  • 김일규 강원대학교 글로벌인재학부 영어전공
  • 승인 2023.05.15 11: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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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논평]

국가의 3대 개혁 과제 중 하나로 교육 분야를 내세울 만큼 현 정부는 그 어느 때보다 강력한 의지로 고등교육 개혁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대학사회에 희망의 불씨가 살아난다는 느낌은 전혀 받을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많은 대학이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정부 정책에 따르거나, 심지어 그럴 여력도 없어 자포자기 상태에 빠지는 대학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 그렇다면 정부의 고등교육 정책은 왜 수많은 대학에 희망이 아닌 절망으로 다가오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정부는 학령인구 감소로 인한 입학자원 고갈을 대학이 처한 위기의 본질로 규정한다. 그리고 이 위기에 대한 해결책으로 학과 간, 대학 간 통폐합을 유도하는 강력한 구조조정, 그리고 그걸 가능케 하는 과감한 규제 철폐를 제시하고 있다. 언뜻 보면 그럴듯한 진단이고 꼭 필요한 대응책이다. 하지만 초중등교육 상황을 고려해 보면 정부의 진단과 해결책은 전혀 설득력이 없다는 것이 금방 드러난다. 출산율 저하로 인한 학령인구 감소는 초중등학교 입학생 수 감소와도 직결된다. 하지만 그렇다고 초중등교육이 위기에 처했다고 주장하는 교육 관련 전문가는 찾아보기 힘들다. 오히려 교원 1인당 학생 수가 크게 줄어 교육의 질은 과거에 비해 훨씬 더 좋아졌다.

대학의 상황은 어떠한가. 2019년 기준 우리나라 전체 고등교육기관 교원 1인당 학생 수는 26.4명인데, 이는 OECD 평균인 15명보다 훨씬 많다. 초중등교육과 마찬가지로 학령인구 감소는 대학이 처한 위기의 근본 원인이 아닌 교원 1인당 학생 수를 줄여 대학교육의 질을 획기적으로 향상시킬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인 것이다. 따라서 학령인구 감소가 대학 위기의 근본 원인이라는 정부의 판단은 틀렸다. 

학령인구 감소가 아니라면 대학 위기의 원인은 도대체 무엇인가. 대학의 본질이 교육과 연구임을 고려할 때 교육과 연구의 발전을 저해하는 요인이 바로 대학 위기의 원인이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 고등교육은 분명히 위기에 처해 있고, 위기의 핵심 원인은 크게 다섯 가지다. 

첫째, 교원 1인당 학생 수가 지나치게 많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교원 1인당 학생 수를 최소한 OECD 평균 정도로 줄여야 한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학령인구 감소는 이 문제의 해결책이 될 수 있다. 그런데도 정부는 이 기회를 살리기는커녕 오히려 교원 1인당 학생 수가 지금보다 늘어날 수도 있을 정도의 무차별적인 구조조정을 강요하고 있다. 

둘째, 사학의 부정과 비리이다. 대학을 돈벌이 수단으로 여기는 사립대학 운영자들에 의해 교권과 학습권이 얼마나 처참히 망가질 수 있는지를 우리는 지난 수십 년간 수없이 확인해 왔다. 교수들의 교권과 학생들의 학습권이 온전히 보장되지 않는 대학에서 질 좋은 연구와 교육이 이루어지기를 기대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 정부가 내놓은 고등교육 정책 중 사학의 부정과 비리 척결을 위한 정책은 전무하다.

셋째, 서울 중심의 수도권 대학과 비수도권 대학 간의 양극화로 인해 수많은 지역대학이 대학으로서의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있는 문제 또한 고등교육 위기의 핵심 원인이다. 현재 정부가 지역대학을 살리겠다며 추진 중인 라이즈(RISE) 사업이나 글로컬대학 사업은 안 그래도 기울어진 운동장을 더욱 기울게 해 대학 간 양극화를 해결하기는커녕 더욱 심화시킬 것이라는 예측이 지배적이다. 게다가 최근 교육부가 발표한 '2024학년도 일반대학 첨단분야 및 보건의료분야 정원 조정' 심의 결과에 따르면 반도체·인공지능(AI) 등 일반대학 첨단분야 학과 정원이 수도권 소재 대학에서 817명이 증원된다. 지역대학을 살리겠다는 정부의 약속이 말뿐임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넷째, 전임교원과 비전임교원, 정년트랙 전임교원과 비정년트랙 전임교원 사이의 차별로 인한 대학 내 양극화 현상 또한 대학 교육과 연구의 질을 끝없이 하락시킨다. 전체 전임교원의 절반 가까이 차지하는 비정년트랙 전임교원은 정년트랙 전임교원에 비교해 터무니없이 높은 수준의 강의시수와 연구업적에 대한 압박으로 제대로 된 교육과 연구를 수행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이다. 전체 대학 강의의 20% 이상을 담당하는 비전임교원인 강사의 경우, 정부는 올해 배정된 강사 처우 개선 예산을 전액 삭감했다. 이들의 생존권을 짓밟음으로써 얻을 수 있는 것은 고등교육의 황폐화뿐이다. 

마지막으로, 위에 열거된 네 가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이 충분한 고등교육재정인데, 현재 정부가 책임지는 고등교육재정은 OECD 평균에도 훨씬 미치지 못한다는 사실이야말로 고등교육 위기의 가장 중요한 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정부는 고등교육재정의 안정적이고 충분한 확충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고등교육재정교부금법」 제정을 위해 그 어떠한 노력도 하고 있지 않다. 

정부의 고등교육 개혁이 우리에게 희망을 주지 못하는 이유가 명확해졌다. 대학이 직면한 위기의 진짜 원인들은 그대로 둔 채 잘못된 진단에 근거해 엉뚱한 대책만 내놓고 있는 것이다. 위의 문제들을 해결하는 유일한 방법은 정부가 지금과는 반대의 길을 가는 것이다. 현재 정부는 대학 문제를 지자체와 개별 대학에 떠넘기고 있다. 하지만 위의 다섯 가지 문제 중 지자체나 개별 대학 차원에서 해결 가능한 문제는 단 하나도 없다. 모두 중앙정부가 책임을 지고 국가 차원에서 해결해야 하는 문제들이다. 우리나라는 경제 규모면에서 세계 10위이며, 1인당 소득으로는 OECD 중 18위인 고소득 국가이다. 그리고 2020년 기준 전국 일반고 졸업자의 대학 진학률은 79.4%이다. 고등학교 졸업생 10명 중 8명이 대학에 진학하는 경제대국에서 초중등교육뿐만 아니라 고등교육도 국민의 기본권으로 인정하고 국가가 완전히 책임지지 못할 이유는 없다. 정부의 의지만 없을 뿐이다.


김일규 강원대학교 글로벌인재학부 영어전공

• (현) 위원장/강원대학교
• (전) 전국교수노동조합 강원지부장
• (전) 민교협 대외협력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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