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줌마’와 ‘할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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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줌마’와 ‘할머니’
  • 조원형 편집기획위원/서울대·언어학
  • 승인 2023.05.15 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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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원형 칼럼]

한국 사회에서 호칭과 칭호는 늘 민감한 문제로 여겨져 왔다. 그중에서도 ‘아줌마’는 지난 몇십 년 동안 논란이 되지 않은 적이 과연 있었던가 싶을 만큼 지극히 민감한 단어로 손꼽힌다. 최근에도 열차 안에서 ‘아줌마’라는 말을 듣고 격분해서 물의를 빚은 사람이 있었다는 이야기가 언론에 보도된 바 있다.

‘아줌마’라는 단어는 어원적 뜻이 어찌 되었든 간에 오늘날 한국 사회 구성원들 사이에서 그다지 좋은 뜻으로 쓰이는 말이라 하기 어렵다. 심지어 표준국어대사전에도 “그녀는 아줌마라는 칭호로 불리는 것이 싫었다.”라는 예문이 실려 있을 정도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어느 누군가가 자기 자신을 ‘아줌마’로 일컬을 수도 있겠지만 이는 사실상 겸양의 표현에 가깝다.

그런데 한국어 단어 중에는 ‘아줌마’와 비슷한 문제를 안고 있는 말인데도 ‘아줌마’ 논란과 달리 공론화가 잘 되지 않고 있는 칭호가 하나 더 있다. 그것은 바로 ‘할머니’이다. 특히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을 지칭할 때면 ‘○○○ 할머니’라는 말이 거의 공식적인 호칭처럼 쓰이고 있다. 하지만 ‘할머니’ 역시 ‘아줌마’와 동일하게 한 사람의 성별과 연령대를 부각하는 표현이다. 아무리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이 통상적으로 ‘할머니’라 불릴 나이가 되었다 하더라도, 이러한 말을 쓰는 것은 그보다 젊은 나이의 여성을 기어코 ‘아줌마’라고 부르겠다는 것과 마찬가지로 부적절한 처사다. 똑같이 노년층에 속하는 남성들을 일컬을 때 ‘○○○ 할아버지’라고 하는 일이 많지 않다는 점 또한 ‘할머니’라는 칭호가 부당하다는 점을 암시해 준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일컫는 ‘할머니’는 지칭에 해당하는 반면 ‘아줌마’는 면전에서 호칭으로 쓰이는 일이 많으니 이 둘은 성격이 서로 다르지 않은가 하고 반문할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지칭과 호칭은 서로 다른 면이 있다. 하지만 ‘할머니’ 또한 호칭으로 쓰기에 좋은 표현이 아니기는 매한가지다. 조금이라도 젊게 사는 것을 선호하는 것이 오늘날의 사회 통념인데 이를 거스르면서 굳이 상대방을 나이 많은 사람으로 자리매김할 이유가 있겠는가. ‘아줌마’라는 말이 비하적인 의미를 가지게 된 것도 결국은 이 문제 때문이니 ‘할머니’라는 표현 또한 낯선 사람을 부르는 말로는 삼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렇다면 아직 호칭이 합의되지 않은 대화 상대방을 초면에 부를 때는 어떤 호칭을 쓰는 것이 가장 좋을까. 여러 대안들이 있겠지만 무엇보다 ‘선생님’으로 부르는 것이 제일 좋지 않을까 싶다. 이는 사실 이미 많은 곳에서 예전부터 써 왔던 말이라 그리 낯선 말도 아니다. 더구나 ‘선생님’이라는 말은 상대방의 좋은 점을 배우겠다는 뜻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마침 이 글을 쓰고 있는 5월 15일은 스승의 날이다. 꼭 강단에 서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사람만이 스승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는 모든 사람들이 알고 보면 나 자신의, 그리고 우리 자신의 스승이다. 그뿐만 아니라 우리 각자도 일상을 살면서 다른 사람에게 좋은 영향을 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우리 모두는 ‘선생님’이라고 불릴 자격이 있다. 그리스도교 성서에 “너희는 선생이라고 불리지 않도록 하여라.”(마태오 복음서 23장 10절)라는 말이 쓰여 있기는 하지만, 이는 겸허함의 미덕을 강조하는 과정에서 나온 말로서 지금 이 글에서 이야기하는 호칭 문제와는 그 맥락이 서로 다르다는 점을 감안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지칭 또한 마찬가지다. 예컨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예우해서 지칭하고자 한다면 ‘○○○ 할머니’보다 ‘○○○ 선생’ 또는 ‘○○○ 선생님’이라고 불렀으면 한다. 지칭을 할 때는 호칭과 달리 예우 표현을 생략해야 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때는 성별과 연령에 관계없이 간단하게 ‘○○○ 씨’라고 하면 될 것이다. 물론 ‘할아버지, 할머니’ 등이 주로 격식 없는 자리에서 친근감을 담은 표현으로 쓰이는 사례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김수환 추기경은 ‘추기경 할아버지’, ‘혜화동 할아버지’ 등으로 지칭되곤 했었다.) 적어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공식 석상이나 언론 매체 등에서 언급할 때 그런 친근감 표시가 과연 필요할지 의문이다.

혹자는 ‘선생님’이라는 표현이 호칭 인플레이션을 부추기는 것은 아니냐고 또 반문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서로가 서로를 선생님으로 부르는 것이 좋으면 좋았지 적어도 문제가 될 일은 없을 것이다. 이는 다른 언어들을 살펴보더라도 확인할 수 있다. 영어의 ‘Mr.’에 대응되는 독일어 ‘Herr’와 프랑스어 ‘monsieur’ 등은 본래 ‘주인’을 일컫는 단어에서 유래한 말이다. 이 말이 오늘날 일상 용어로 쓰이는 것 또한 일종의 호칭 인플레이션이라 할 수 있겠지만 이것이 문제가 되었다는 말은 들어 본 적이 없다. 게다가 ‘선생님’은 ‘아줌마, 할머니’ 등과 달리 성별과 연령을 막론하고 쓸 수 있는 표현이기도 하니 한국어에서 이보다 좋은 호칭과 칭호도 찾기 쉽지 않을 것이다. 이 말은 앞서도 이야기했듯이 이미 우리 주변에서 많이 쓰이고 있었던 만큼 앞으로 더욱 잘 살려 썼으면 한다. 애당초 우리 모두는 서로의 선생님이 될 수 있는 사람들이니 말이다.


조원형 편집기획위원/서울대·언어학

서울대학교 언어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과 대학원에서 언어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만하임 라이프니츠 독일어연구원 방문학자, 국립국어원 학예연구사 등을 거쳐 현재 서울대학교 기초교육원 강의교수로 일하고 있다. 주요 논문으로 “천주가사에 대한 텍스트언어학적 연구”, “텍스트언어학에 기반한 ‘쉬운 언어(Leichte Sprache)’ 텍스트 구성 시안”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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