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려진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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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려진 것들
  • 고영남 논설위원/인제대·법학
  • 승인 2023.05.14 1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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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영남 칼럼]

윤석열 정부는 ‘대학혁신’이라는 이름을 내걸면서 대학 운영의 규제를 풀고 국가 대신 지방자치단체가 고등교육을 주도하며 고등교육을 수요자 중심의 구조로 개편하고자 한다. 하지만 규제 완화는 국회 차원에서 법률을 개정하는 수준의 변화를 이끌어야 하므로 현 정부로서는 정치적 부담을 질 수밖에 없다. 또한 대학 주도의 자율적 혁신을 외치는 마당에 국가가 일방적으로 수요자 중심의 유연한 학사구조를 만들어낼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렇기에 윤석열 정부의 고등교육 정책에서 시도 가능한 ‘혁신’ 놀이는 그동안 대학을 지원하는 데 워낙 소극적이었다고 판단되는 지방자치단체를 고등교육의 책임자로 재구조화하는 데 핵심이 있다. ‘라이즈’ 생태계를 구축하여 몇몇 대학을 ‘글로컬대학’으로 육성하는 것이 그 골격이다. 역시 이번에도 혁신은 ‘사탕발림’에 불과한데 이를 통해 도대체 무엇이 가려질까? 또는 무엇을 가리고자 하는가?

먼저, 윤석열 정부의 고등교육 정책은 학령인구의 감소라는 현상을 가리고 그 위기를 극복할 방안의 모색 또한 가린다. 최소한 이전 정부는 그 현상을 공론장 위에 올려놓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비록 국가에 의한 일방적 입학정원 감축이라는 폭력적 방안이 이어졌고 학령인구의 감소라는 미증유의 현상을 그 방안의 논거로 활용하는 데 주저하지 않았었지만, 지난 90년대 중반 이후 비대해진 한국의 고등교육체제를 조정하여야 한다는 문제의식은 언제나 분명하였다. 그 덕분에 국가 주도의 방안에 대한 비판적 사고와 실천 역시 공론장 위에서 살아 있었다. 특히 윤석열 정부가 글로컬대학이 필요한 이유를 ‘대한민국의 미래를 이끌 혁신 경쟁력’에서 찾다 보니, 마치 한국 고등교육의 문제가 현실에 부합하지 않는 입학정원의 크기가 아닌 질 낮은 고등교육의 수준에 있는 것처럼 본질이 과도하게 단순화되고 있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의 노림수 역시 입학정원의 감축에 있음은 너무나도 분명하다. 학령인구 감소의 현상을 가린 채 진행되는 ‘대학혁신’은 어쩌면 가장 잔인한 방식의 구조조정으로 이어질 수 있다. 따라서 경쟁력 담론에 가려진 학령인구의 감소라는 현상을 다시 드러내고 이를 극복하는 데 필요한 공공성과 민주성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지를 둘러싼 논의를 적극적으로 이어가야 한다.

다음으로, 몇몇 대학에만 천억 원의 사업비를 뿌려대는 글로컬대학 육성사업의 유혹이 강하면 강할수록 고등교육을 구현할 국민의 공정한 기회는 급속도로 차단될 것이다. 대한민국헌법에 따르면 ‘능력에 따라 균등하게 교육을 받은 권리’의 주체는 ‘국민’이다. 대학 자체가 아니란 말이다. 마찬가지로 1990년 7월부터 한국에도 발효된 국제연합의 ‘경제적 사회적 및 문화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에서도 ‘고등교육은 능력에 기초하여 모든 사람에게 동등하게 개방된다.’ 이렇듯 고등교육의 주체는 대학이 아니라 국민이다. 따라서 몇몇 대학이 일정한 평가 결과에 따라 천억 원의 사업비를 받는 글로컬대학으로 선정되는지보다 모든 국민이 이 고등교육의 권리를 누릴 수 있도록 위 국제규약의 언급처럼 ‘점진적으로 무상교육을 도입하는’ 정책이 우선되어야 한다. 글로컬대학이라는 간판을 달고 매년 뿌릴 총 3천억 원으로 고등교육의 책무를 완수하였다고 주장하기엔 낯부끄러운 일이다. 따라서 글로컬대학 육성사업비라는 사탕발림에 대항하여 무상교육의 필요성과 정당성을 쉬지 않고 외쳐야 한다.

마지막으로, 윤석열 정부는 글로컬대학 육성사업이라는 경기를 매년 개최함으로써 사립대학에서 시도되는 민주적 체제를 완벽하게 가릴뿐더러 이제 그 싹마저 자르려 한다. 한국 고등교육의 85%를 담당하는 사립대학이 자기 역할을 다하려면 무엇보다도 학교법인의 개방성, 대학의 자율성과 민주성, 그리고 대학구성원 노동의 위계 타파가 이루어져야 한다. 법률과 제도를 통해 구축되고 다듬어져야 할 내용도 있고 문화의 형성과 연대의 실천을 통해 꾸준히 구축될 내용도 있다. 하지만 매년 개최되는 저 육성사업이라는 경기로 인하여 학교법인의 책무성이 가려지고, 민주적 총장선출제도 등 주요한 대학 내 민주적 소통과정이 유보되며 시간이 지남에 따라 대학구성원 노동의 위계와 갈등 또한 더욱더 선명해질 것이다. 특히 사립대학 위기의 본질은 학령인구의 감소도, 등록금 인상의 봉쇄도 아닌, 대학다운 대학의 실종, 즉 대학 안의 민주주의가 급격하게 무너지는 데에서 시작한다. 엄청난 정치적 힘이 모였던 ‘공영형 사립대학 육성사업’의 가능성조차 실종되어버리는 수준이라면 무엇을 더 말하겠는가. 

교육은 실험이 아니며, 대학 역시 실험실이 아니다. 오류와 실패는 상처를, 특히 교육에서의 차별을 낳는 토대가 된다. 따라서 고등교육과 대학을 둘러싼 정책은 그 발화에서 실천에 이르기까지 깊은 호흡과 고민 속에서 신중하게 전개되어야 한다. 대학정책은 무엇보다 가능한 ‘모두’의 지혜와 용기가 필요하다. 고등교육은 결코 어느 한 측면에 의해 구현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고영남 논설위원/인제대·법학

인제대학교 법학과 교수로 『민주법학』 편집위원이며, 전공은 계약법인데 교육법, 인권법, 법여성학, 사회철학, 사회과학방법론, 법인류학 등에 관심이 많다. 저서로 『경남 근현대사: 사건, 공간, 운동』(공저, 2023), 『여성과 몸』(공저, 2019), 『대학정책, 어떻게 바꿀 것인가』(공저, 2017), 『민법사례연습』(2016)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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