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로를 위한 융합”이라는 혐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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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로를 위한 융합”이라는 혐의
  • 김월회 서울대·중문학
  • 승인 2023.05.14 1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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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쿠스]

지난달 27일, 교육부는 첨단 분야 융합인재 양성을 위해 관련 분야의 4년제 대학정원을 2천 명 가까이 늘렸다. 서울대, 고려대, 연세대 등 수도권에서는 817명을, 비수도권에서는 1012명을 늘렸다. 

20여 년 만에 처음으로 수도권 4년제 대학의 입학정원이 늘어났다. 정부는 지난 세기 말부터 수도권 인구 억제를 위해 수도권 대학정원을 엄격하게 통제해왔다. 이는 정권이 바뀌어도 일관되게 유지됐던 몇 안 되는 정책이었다. 그러한 정책이 지역과 지방대 소멸 위기가 가파르게 진척되는 이 시기에 대놓고 깨졌다. ‘융합’이라는 주문(呪文)에 걸려 앞뒤 분간 못하는 형국이 벌어진 셈이다.

하기야 국가 주도로 경제개발이 본격화된 이래 언제나 온 사회를 휘감았던 ‘시대적 주문’이 있었다. 수출 드라이브를 걸며 수출역군의 양성을 부르댔던 지난 세기 7, 80년대는 ‘개근’이 그러한 주문이었다. 학업우수상보다 개근상이 더욱 값지다는 관념이 사회 곳곳에 똬리 틀고 있었다. 학생은 평일에 집에서 아플 자유가 없었고 직장인이 아프다고 출근을 안 하면 도덕적으로 문제시되었다. 그렇게 일상에 ‘근면, 성실’하게 임하는 것이 경쟁력이고 미덕이었으며, 교육의 실제 목표도 “근면, 성실하게 일하는” 근로자를 양성하여 산업현장에 공급하는 데 있었다. 

물론 근면, 성실이 교육목표의 전부는 아니었다. 개성이나 자율성, 창의성 같은 역량도 운위됐다. 하지만 선진국을 열심히 모방해서 추격해야 하는 단계였던지라 그다지 각광받지는 못했다. 그러다 지난 세기 90년대 이래 선진국 진입이 이룰 수 있는 꿈이 되자 ‘벤치 메이킹(bench making)’ 역량이 시급하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렸다. 벤치마킹에 의존한 성장전략으로는 한계가 분명해졌기 때문이다. 이에 ‘창의’라는 새로운 주문이 개근을 대체하며 우리 사회를 주름잡기 시작했다. ‘창의인재’가 미래를 짊어질 새로운 인재상으로 제시되었고, 대학입시도 암기형인 학력고사에서 창의형인 수학능력시험으로 대체되었다. 대학 교육도 창의적 인재를 길러낼 수 있다고 주장되는 내용으로 바뀌어 갔다. 

그런데 그렇게 교육받은 우리가 생업에 종사하며 창의성을 발휘한 적이 얼마나 있었을까? 기업에서든 관공서에서든 직무 처리에 창의성 발휘를 기본으로 요구받은 적은 또 얼마나 될까? 사회생활에서 사람들에게 요구되는 역량이 실질적으로는 무엇이었는지를 짚어보자는 얘기다. 대학에서는 창의력, 창의력 했지만 일터에서 정작 요구된 것은 여전히 “근면, 성실하게 일하는” 데 필요한 역량이 아니었는지를 따져보자는 말이다. 창의적 지성과 감성이, 또 상상력이 요구되었다면 그 수준은 어느 정도인지를 되짚어보자는 것이다. 

근자에 4차 산업혁명 담론과 함께 우리 사회를 휘감은 ‘융합인재’라는 지향은 어떠할까? 주지하듯이 사회에서는 대학 졸업 후 실무에 바로 투입되어 주어진 직무를 너끈히 수행해낼 수 있는 실무역량을 요구한다. 직무에 따라서는 전문역량도 요구한다. 그러니 학생들은 이들 역량을 갖춤과 동시에 융합인재로서의 역량도 겸비해야 한다. 게다가 창의역량도 겸하여 갖춰야 한다. 융합의 목적은 어디까지나 창의적 직무 수행이지 그저 여러 분야의 지식을 두루 갖추는 것이 아니다. 창의역량 없는 융합은, 실무역량이나 전문역량으로 뒷받침되지 못한 융합은 환영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대학은 기본적으로 성숙한 시민으로서의 자질과 소양도 길러야 하는 곳이다. 그런데 대학 재학 기간은 길어야 4년 남짓이다. 이 기간 동안 이 모든 역량을 쓸모 있는 수준 이상으로 기른다는 것은 말 그대로 비현실적이다. 설령 정부가 거액을 들여 체계적으로 지원한다고 해도 학생들을 실무역량과 전문역량, 창의역량을 겸비하고 더불어 인성도 갖춘 융합인재로 길러낸다는 건 그럴싸한 허상일 뿐이다. 물론 그러한 융합인재가 배출되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학생들을 융합의 노예로 만들어 정작 그들에게 더 적합하고 한결 요긴한 역량조차 갖추지 못하게 할 가능성도 작지 않다. 

이것이 우리나라 대학의 현실이기에 융합교육이라 불리며 새로 마련된 교육을 받는다고 하여 학생들이 평균적으로 명실상부한 융합인재가 될 가능성은 무척 낮아 보인다. 수도권 인구 억제 정책을 깨고, 지역과 지방대 소멸을 부추기면서까지 도모되는 융합은 결국 지난날 근면 성실하게 일하는 근로자를 양성해내기 위해 온 사회에 걸었던 개근이란 주문의 21세기적 버전에 불과하게 될 듯싶다.


김월회 서울대·중문학

서울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 주로 고대 중국의 지성사와 중국문학사, 중국문학이론을 입체적으로 재구성하는 연구를 수행하고 있으며, ‘인문적 시민사회’ 구현을 위한 교양교육과 인문교육에 대한 연구와 교육도 병행하고 있다. 『깊음에서 비롯되는 것들』, 『춘추좌전–중국문화의 원형이 담긴 타임캡슐』을 지었고, 서양고전학자와 함께 『무엇이 좋은 삶인가』, 『인문정신이란 무엇인가–동서양 고전과 문명의 본질』, 『고전의 힘, 그 역사를 읽다』 등을 공동 집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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