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테뉴의 이탈리아 여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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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테뉴의 이탈리아 여행기
  • 박아르마 서평위원/건양대·프랑스문학
  • 승인 2023.05.14 1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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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베르타스]

 

‘이국정서exotisme’는 특히 유럽인들이 자국 이외의 지역과 고장에 속한 것, 즉 이국의 풍속과 풍경, 사람, 문화 등에 대한 호기심에서 비롯된 정신적 추구와 꿈을 뜻한다. 유럽에서 문학작품에 이국정서가 나타난 것은 중세부터였는데 이때는 『성배 탐색』에서 보듯이 기사의 모험은 현실이 아닌 신화적 공간에서 펼쳐졌다. 18세기에 이르러 계몽주의 철학자들도 이국을 작품에서 다루었지만 몽테스키외의 『페르시아인의 편지』에 나타나 있듯이 이국은 자국의 문화를 타국의 그것과 비교함으로써 자신을 객관화하여 보려는 시도로 활용되었다. 디드로의 『부갱빌 여행기 부록』 역시 탐험가의 실제 여행기를 기반으로 쓴 글이지만 간접 체험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했다. 작가가 항해와 교통수단을 이용해 실제 이국을 체험과 여행 목적으로 본격적으로 찾은 것은 19세기에 이르러서 가능해졌다.

몽테뉴의 여행기, 더 정확히 말해서 이탈리아 여행기는 16세기 말에 기록되었다. 몽테뉴는 1580년 6월에 자신의 성을 떠나 이탈리아 각지를 여행하고 17개월 8일 만에 돌아왔다. 중세가 지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기에 작가가 실제 외국을 여행하고 그것을 기록으로 남겼다는 사실은 ‘이국정서’를 다룬 문학의 계보에서 보더라도 놀라운 일이다. 『몽테뉴 여행기』(필로소픽)는 작가 사후 200여 년이 지나서야 발견되었기 때문에 그가 『수상록』 말고도 여행기를 썼다는 사실은 상당 기간 알려지지 않았다. 온갖 정신의 궤적과 삶의 세세한 부분까지 기록되어 있는 『수상록』에도 여행기의 존재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언급이 없었으니 말이다. 

몽테뉴의 이탈리아 여행기는 실제 여행을 통해 작가의 직접 체험을 담아낸 기록이라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또한 『수상록』의 작가가 이국의 낯선 풍경과 풍속, 사람을 만나 어떤 인상을 받았고 그것을 어떻게 기록했는지 알려준다는 점에서도 가치가 있다. 순수 ‘여행기’의 관점에서도 16세기 말 고대 로마의 문화유적과 교황청이 어떤 모습으로 남아 있었는지 알려주고, 소소하게는 숙박과 음식, 몽테뉴의 여행자로서의 감상을 보여주고 있어 흥미진진한 기록이 될 것이다.

몽테뉴는 이탈리아를 최종 목적지로 1580년 6월 22일에 성을 떠나 1581년 11월 30일에 집으로 돌아오기까지 프랑스 각지를 거쳐 스위스의 바젤과 독일의 아우크스부르크, 뭰헨을 지나 이탈리아의 베로나와 파도바, 베네치아, 피렌체, 로마, 루카, 토리노 등을 여행하고 자신의 체험을 꼼꼼하게 기록한다. 물론 몽테뉴의 『이탈리아 여행기』로 출간된 원고에는 저자의 기록 말고도 그를 수행한 하인이 주인의 행적을 기록한 글도 다수가 있지만 대부분 주인의 행적과 말을 적은 것이라는 점에서 하나의 여행기로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몽테뉴의 이탈리아 여행기는 여정부터 방문지의 사람과 풍경, 풍속, 음식, 숙박을 위한 흥정에 이르기까지 일반적인 여행기의 특징을 모두 보여주고 있다. 다만 이탈리아의 미술과 건축에 대한 취향과 자연의 아름다움 등에 대한 예찬은 상대적으로 크게 드러나 있지 않다. 반면에 몽테뉴 자신의 사람에 대한 관심과 관찰, 종교 의례와 의식,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들과의 대화 등에 대해서는 책의 여러 장을 할애할 정도로 구체적으로 기록되어 있다. 몽테뉴 일행은 산 피에트로 대성당에서 교황이 집전하는 미사에 참석하고 그레고리오 13세를 직접 알현하기에 이른다. 그밖에도 1,200개의 횃불이 지나가는 예배와 할례 의식이 상세하게 묘사되어 있다.

몽테뉴는 찬란한 고대 로마의 유적에 대해 한 국가가 몰락한 흔적에 불과하고 과거를 지향하는 사람들에게는 경의의 대상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그것은 ‘국가의 무덤’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그다지 높은 평가를 하지 않는다. 또한 로마에는 궁정과 귀족 말고는 아무것도 없고 주변의 땅은 척박하며 외지 사람을 써서 경작한다고 기록한다. 흥미로운 대목은 그는 방문하는 이탈리아의 도시에서마다 여자의 외모를 빼놓지 않고 평가한다는 것이다. 그가 평가하는 이탈리아 여인의 외모는 생각보다 아름답지 못하다는 것인데 다만 로마 여인은 미인은 아니지만 매력적이고 옷을 잘 입는다고 기록한다. 

여행기의 첫 장부터 마지막까지 빠짐없이 언급하는 내용은 신장 결석에 따른 고통이다. 그런 이유에서 여행기에는 고통을 이겨내기 위한 노력과 약의 처방, 온천지에서의 체류 등이 상세히 나타나 있다. 몽테뉴는 『수상록』에서도 밝혔지만 “병은 과거에 누렸던 긴 행복을 상기시켜주는 만큼” 현재의 고통은 견딜 수 있는 것이라고 말하며 자신을 스스로 위로한다. 『몽테뉴 여행기』는 프랑스 최초의 모럴리스트로서 그가 바라보는 사람과 사상, 종교에 관한 관찰기이지만 “로마가 자랑하는 아름다운 풍경 중 하나가 포도밭과 정원”이고, 이 두 곳이 가장 아름다운 계절이 여름이라고 말하며 여행가로서의 풍모도 감추지 않는다.


박아르마 서평위원/건양대·프랑스문학

건양대학교 휴머니티칼리지 교수. 서울대 대학원에서 프랑스 현대문학을 전공하여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건양대 휴머니티칼리지 브리꼴레르 학부 학부장과 박범신 문학콘텐츠 연구소 소장으로 있다. 지은 책으로 『글쓰기란 무엇인가』, 『투르니에 소설의 사실과 신화』가 있고, 번역한 책으로 『살로메』, 『춤추는 휠체어』, 『까미유의 동물 블로그』, 『축구화를 신은 소크라테스』, 『칸트 교수의 정신없는 하루-칸트 편』, 『데카르트의 사악한 정령-데카르트 편』, 『녹색 광선』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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