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금 시대로 살펴본 부패의 역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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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금 시대로 살펴본 부패의 역설
  • 이명아 기자
  • 승인 2023.05.13 2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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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패한 중국은 왜 성장하는가: 부패의 역설이 완성한 중국의 도금 시대 | 위엔위엔 앙 지음 | 양영빈 옮김 | 한겨레출판 | 372쪽

 

일반적으로 부패는 경제 성장을 저해한다고 여겨진다. 그래서 부패 근절은 경제 발전을 위한 조건이라고 강조된다. 많은 연구자가 중국은 1990년 이후 광범위한 부정부패 때문에 붕괴에 가까운 실패를 경험할 것이라고 예언했다. 하지만 현실은? 중국은 1978년 개혁 개방 이후 만연한 부패에도 불구하고 역사상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초고속 성장을 이룩했고 이제 미국과 어깨를 견주는 초강대국으로 우뚝 섰다. 또한 시진핑의 부패 척결 노력은 오히려 성장률 둔화의 원인으로 지목되었다. 이러한 부패와 성장의 역설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중국이 만연한 부패에도 불구하고 크게 성장할 수 있었던 이유를 알기 위해서는 ‘부패는 무조건 나쁘다’는 착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저자는 그 방법으로 ‘부패 세분화’를 제시하고 있다. 저자는 부패를 다음과 같이 세분화했다. 정부의 혜택과 서비스를 받기 위한 대가성 뇌물과 어떤 교환도 없는 횡령 및 갈취(도둑질), 고위 공무원이 벌이는 거대한 부패와 하위 공무원이 벌이는 사소한 부패. 이를 기준으로 부패를 분류하면 4가지 유형으로 정의할 수 있는데 저자는 각각 ‘바늘도둑, 소도둑, 급행료, 인허가료’라고 부른다.

바늘도둑은 시민을 대상으로 횡령, 갈취하는 일선 하위 공무원의 부패를 말한다. 반면 소도둑은 공공 재원을 횡령하거나 유용하는 고위 공무원의 행위다. 급행료는 소상공인이 영업 허가를 빨리 받기 위해 해당 공무원에게 바치는 뇌물 같은 부패를 뜻한다. 인허가료는 대규모 건설 사업이나 재건축 프로젝트 계약을 따내기 위해 막강한 권한을 가진 고위 관료에게 뇌물을 바치는 행위다.

모든 유형의 부패가 부정적인 것은 사실이지만 경제에 동일하게 악영향을 미치는 건 아니다. 저자는 이를 약물에 비유한다. 공공 재산과 사유 재산을 소진하는 특징을 가진 바늘도둑과 소도둑은 건강을 갉아먹고 성장을 방해하는 유해 약물이나 마찬가지다. 급행료는 일종의 진통제라고 할 수 있다. 적은 뇌물을 이용하면 행정상 문제를 극복할 수 있기 때문에 당장의 비즈니스에는 도움이 된다. 하지만 이 또한 시민과 업계에 부담이 되기 때문에 장기적으로는 성장에 해를 끼친다. 인허가료는 자본주의의 성장 촉진제, 스테로이드다. 바늘도둑, 소도둑, 급행료는 기업 활동을 위축시키지만 인허가료는 활발한 사업과 투자를 불러오기 때문에 경제 성장에도 일조한다. 하지만 스테로이드가 우리 몸에 심각한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는 것처럼 인허가료는 불만과 불평등을 고조시키는 폐해가 있다.

잘사는 나라든 못사는 나라든 개발도상국이든 모든 나라가 이 4가지 유형의 부패를 모두 가지고 있다. 다만 각 유형의 비중 차이가 있을 뿐이다. 그리고 이를 통해 그 나라에서 어느 부패 유형이 지배적인지 알 수 있다. 이것은 한 나라의 부패 구조를 이해하고 성장 과정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파악하는 데 필수적이다. 부패를 세분화해서 살펴봐야 하는 또 다른 이유는 그 나라의 부패 구조가 부패 수준보다 정치, 경제, 사회에 더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부패가 성장에 미치는 영향을 보다 분명하게 파악하기 위해서는, 그리고 중국의 부패 구조가 다른 나라와 어떻게 다른지 알기 위해서는 어떤 유형의 부패가 지배적인지 알아야 한다. 

중국에서 가장 두드러진 부패 유형은 인허가료였다. 중국처럼 인허가료가 지배적인 나라로 한국, 미국, 일본, 싱가포르, 대만이 있다. 이들의 공통점은 고소득 국가라는 점이다. 반면 방글라데시와 가나에서는 급행료가, 나이지리아에서는 소도둑이, 태국에서는 바늘도둑이 지배적이었다. 중국이 광범위한 부패 속에서도 다른 저소득 국가보다 빠르고 거대하게 성장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바로 부패 구조의 차이가 있다.

하지만 인허가료 유형이 지배적이라는 사실만으로 중국의 고속 성장을 온전히 설명하기는 충분하지 않다. 저자는 경제 발전의 또 다른 동력으로 중국식 이익 공유 모델을 꼽는다. 중국의 지방 리더들은 자기 지역이 성장해야 더 큰 정치적 성공, 금전적 이익, 승진 기회를 얻을 수 있다. 그리고 일선 하위 공무원들의 중요한 수입원은 지방 정부의 세수와 비과세 징수 수입을 나눠 가지는 부가적 보상이다. 그러므로 지도자부터 말단 부하 직원까지 모두 지역 발전을 위해 최선을 다하게 되는 것이다. 게다가 다른 지역과의 치열한 경쟁도 궁극적으로 중국의 경제 발전에 한몫했다. 실력 넘치고 야망 가득한 리더들은 자기 지역을 비즈니스에 적합한 환경으로 만들기 위해 약탈적 부정부패를 억제하고 다방면으로 노력한 것이다.

이처럼 중국은 인허가료와 이익 공유제라는 스테로이드의 효과를 톡톡히 보았다. 하지만 이 성장 촉진제의 부작용 또한 만만치 않다. 사회에 팽배해진 불만과 불평등은 새로운 시대를 요구하고 있다. 마치 미국이 도금 시대를 넘어 진보 시대로 나아간 것처럼 말이다.

만연한 부패 속에서 거대한 성장을 이룩한 중국의 사례는 사실 세계사적으로 이례적이지 않다. 비교 역사학적 관점에서 살폈을 때 가장 비슷한 대상은 바로 미국의 도금 시대(1870~1900년)다. 도금 시대란 남북 전쟁 이후 자본주의가 발전하면서 미국의 정치, 사회, 경제가 급속도로 성장한 시기를 말한다. 이때의 미국은 부정부패가 만연하고 불평등도 심해졌지만 영국을 넘어 세계의 공장으로 발돋움할 수 있었다. 이후 과도한 부패와 불평등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다양한 정치, 행정 개혁을 추진했고 사회 안정을 이루며 진보 시대(1890~1920년)로 넘어갈 수 있었다.

오늘날 중국은 만연한 부패, 초고속 성장, 구조적 변화 등 미국이 도금 시대에 겪었던 것들을 비슷하게 경험하고 있다. 1인당 GDP를 기준으로 비교했을 때 미국이 1870년부터 1940년까지 성취한 것을 중국은 1996년부터 2016년까지 해냈다. 중국의 도금 시대는 미국의 도금 시대보다 훨씬 빠른 압축적 경제 발전을 이룬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부작용 또한 빠르고 강력하게 성장할 것임을 의미한다.

‘세분화한 부패 지수’로 비교하면 중국과 미국은 동일하게 인허가료 유형의 부패가 지배적이다. 차이가 있다면 미국에서는 뇌물과 횡령 같은 부패를 방지하기 위해 인허가료가 제도화, 합법화되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중국식 인허가료는 비교적 조악하고 대부분 개인적 뇌물과 불법 행위와 얽혀 있다. 또 미국은 선거, 투표, 정책 등 민주적 수단을 통해 불법적 부패를 억제했지만 중국은 위에서 아래로 규율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부패 정치인과 자본가를 색출하고 있다. 시진핑의 반부패 운동이 바로 그것이다.

그렇다면 시진핑의 반부패 운동은 중국 경제를 어디로 이끌 것인가? 과연 중국은 미국처럼 도금 시대의 함정에서 벗어나 새로운 진보의 시대를 열 수 있을까? 2012년 집권한 시진핑은 부패와의 전쟁을 행정부의 핵심 과제로 삼고 공산당 역사상 가장 강력한 부패 청산 운동을 시작했다. 이로 인해 150만 명 이상의 관료가 문책을 당했다. 시진핑의 반부패 운동은 일반적인 캠페인처럼 “짧고 굵은” 방식이 아니라 “길고 넓고 깊은” 방식으로 펼쳐지고 있다. 게다가 시진핑이 3연임에 성공함으로써 반부패 운동은 이제 중국의 ‘뉴 노멀’이 되었다는 평가도 있다. 하지만 이런 강력한 단속이 경제 성장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던 관료들을 위축시킬 것이라는 우려가 있다. 과연 부패와의 전쟁은 중국 경제를 질식시킬까?

저자는 시진핑의 반부패 운동의 효과를 단기와 장기로 구분해서 예측했다. 단기적으로는 많은 사업가와 지방 리더가 위험을 피하기 위해 비즈니스 활동을 줄일 것이고 기업들은 해외로 도피할 것이다. 고위 공직자들도 새로운 계획을 밀어붙이기보다 차라리 복지부동을 취하게 될 것이다. 이는 당연히 성장률 저하로 이어진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본다면 부정부패와 정실 자본주의를 뿌리 뽑을 수 있으므로 보다 건강한 경제 체제와 규율 있는 행정부가 마련될 것이다. 이는 국가 발전의 새로운 국면으로 이어진다.

하지만 장기적 효과를 기대하기 위해서는 우선 정치 체제의 안정이 필수다. 중국의 정치 시스템을 두고 한쪽에서는 부패와 정실주의의 폐해로 인해 곧 붕괴에 직면할 것이라고 예측하는가 하면, 다른 한편에서는 서양의 민주주의 체제와 달리 역량과 덕을 갖춘 관료를 선발하는 유교적 능력주의가 올바르게 작동해 중국의 앞날이 밝을 것으로 본다. 저자는 독자들에게 부패가 경제 성장에 ‘좋다’ 혹은 ‘나쁘다’라고 하는 이분법을 넘어서야 하며, 중국을 찬양하거나 폄하하는 모든 주장을 회의적으로 바라보라고 조언한다. 부패와 성장의 관계를 새롭게 볼 때 중국의 작동 방식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나아가 중국의 미래는 물론 글로벌 패권의 향방까지 점칠 수 있는 인사이트를 얻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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