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학이 파헤쳐야 할 연구 대상은 ‘총체적 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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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학이 파헤쳐야 할 연구 대상은 ‘총체적 인간’
  • 이현건 기자
  • 승인 2023.05.13 2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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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몸 테크닉 | 마르셀 모스 지음 | 박정호 옮김 | 파이돈 | 248쪽

 

이 책은 마르셀 모스가 프랑스 심리학회에서 강연할 목적으로 작성한 네 편의 글을 우리말로 옮긴 것이다. 세 편은 인간의 몸에 관한 사회학과 인류학의 원류에 속하는 「감정 표현의 의무」, 「집단이 암시하는 죽음 관념이 개인에게 미치는 신체적 영향」, 「몸 테크닉」이며, 나머지 한 편은 심리학과 사회학의 성과를 검토하고 두 학문의 협력 관계를 모색한 「심리학과 사회학의 실질적이고 실천적인 관계」이다

모스는 이들 강연문을 통해서 궁극적으로 사회학이 파헤쳐야 할 연구 대상이 ‘총체적 인간’임을 강조한다. 뒤르켐과 달리 모스는 사회학에 새로운 길을 터주기 위해 과감하게 인접 학문에 눈을 돌렸다. 그는 사회학으로도 심리학으로도 구획 지을 수 없는 인간 존재의 총체성을 강조했고, 두 학문이 궁극적으로 고찰해야 할 대상도 바로 이 총체적 인간임을 강조했다. 

모스에 따르면 사회적인 것은 생리적인 것과 심리적인 것이 교차하는 하나하나의 구체적 상황에서만 실재적이고 객관적이다. 사회적인 것은 어디에나 있지만 생리적-심리적인 것과 만나지 않으면 어디에도 없다. 총체적 인간 개념을 정의하는 문제는 바로 이런 지평에 놓여 있다.

이처럼 모스는 이 책에서 애도의 의무와 죽음의 암시 효과, 몸 테크닉을 둘러싼 세세한 사실들을 고찰함으로써 오늘날 사회학과 인류학이 간과해서는 안 될 총체적 인간 개념의 윤곽을 드러내며 의식이 암시 상태에 휩싸이고 사회적인 것과 생리적인 것이 기이하게 결합하는 현상 등을 다룬다.

모스의 총체적 인간 개념에는 중요한 사실 하나가 함축되어 있다. 그는 총체적 인간이 현대사회의 엘리트와 무관하다고 평가하면서 이 개념에 중대한 한계를 설정한다. 모스가 말하는 엘리트란 학구적 이성으로 무장한 사람들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이들은 “본능에 저항하는 방법을 알고 있으며, 교육과 개념 그리고 신중한 선택 덕분에 자기 행동 하나하나를 모두 통제”할 수 있다. 그들은 총체적 인간이 아니라 억제되고 통제된 인간, 즉 사회적-심리적-생리적 차원을 효과적으로 분리할 줄 아는 인간이다. 이런 점에서 엘리트들에게는 총체적인 개인성의 차원이 결여되어 있다. 이처럼 엘리트가 일종의 ‘분할’된 인간이라면 총체적 인간은 평범하고 평균적인 인간을 가리킨다. 이 평균적 인간은 원칙적으로는 사회적-심리적-생리적 총체성을 자기가 속한 사회의 이름에 걸맞게 나름대로 구현하는 하나하나의 평범한 개인들이다.

총체적 인간과 분할된 인간, 다시 말해 대다수 인간과 소수 엘리트의 구분을 통해 모스는 ‘사회학이 무엇을 대상으로 삼고 무엇을 사고하는 학문이어야 하는가’라는 근본적 질문을 던진다. 모스의 답변은 단호하다. 그는 엘리트들을 “사회학자가 일반적으로 연구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고 잘라 말한다. 그들은 이 역동성을 억제해 자신을 극히 단순하고 추상적인 존재로 환원시킬 줄 아는 존재이다. 정작 중요한 문제는 다른 지점에 있다. 모스는 이 분할된 존재의 렌즈를 통해 현실의 복잡한 총체적 인간을 사유하고 평가하려는 학구적 이성에 엄중한 경고를 내린다. 모스의 이 언급에는 훗날 부르디외가 ‘스콜라적 환상’이라고 일컬은 학구적 이성에 대한 비판이 잠재되어 있다

모스의 강연문 「몸 테크닉」은 에르츠의 「오른손의 우월성」, 짐멜의 「감각의 사회학」 등과 더불어 몸에 관한 사회학적 성찰을 이끈 선구적 텍스트로 손꼽힌다. 몸 테크닉은 환경에 대한 신체의 단순한 기계적 적응이 아니라 몸에 새겨진 능력을 표현하고 재생산하는 기술로 해석된다. 이 능력에는 성, 나이, 계급, 지위, 세대 등과 연관된 사회적 차별성이 자연스럽게 기입된다. 가령 모스가 남녀 간 돌을 던지는 자세를 비교하면서 몸 테크닉의 차이를 언급한다. 옮긴이는 ‘여자아이처럼 던지는’ 운동성은 여성의 본성이 만든 자연적 결과가 아니라, 사회가 여성 규범으로 제시한 몸의 ‘억제된 의도성’에 따른 결과로 볼 수 있음을 주목한다. 따라서 몸 테크닉의 사회학적 의미 중 하나는 그것이 사회적 차별을 생산하고 정당화하는 억압적 담론의 산물이라는 점에서 찾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옮긴이에 따르면 디지털 기기를 쓰기 위해 동원되는 몸 테크닉은 매우 단순해 보이지만 무시할 수 없는 문화적 영향력을 도처에서 생산한다. 두 손가락만으로 화면의 특정 부분을 늘이거나 줄이는 기술이나 양쪽 엄지손가락만으로 문자를 입력하는 기술 등을 보건대, 오늘날 스마트폰과 같은 기기의 사용에 적합하도록 몸 테크닉을 익힌 아이들에게 책을 넘기는 동작뿐 아니라 활자를 눈으로 따라가는 동작이 얼마나 힘든지 쉽게 예상해 볼 수 있다. 디지털격차와 문해력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숱한 논쟁의 심층에는 지적 차원의 문제로 환원되지 않는 몸 기법의 문제, 즉 ‘손가락 테크닉’의 문제가 숨어 있는지도 모른다.

「몸 테크닉」은 오늘날 모스의 언어보다는 ‘하비투스(habitus)’ 같은 부르디외의 용어로 포착되어 오늘날 신체의 사회학을 주도하는 개념으로 확고히 자리매김했다. 그러나 계급 간 소비 양식의 차이를 분석한 부르디외의 하비투스는 부르디외가 새로운 방식으로 사용하기 전에 모스가 이미 사용했던 용어이다. 옮긴이는 몸 테크닉과 아비투스는 지속적이고 동시적인 상호 참조의 개념으로 삼을 필요가 있다고 강조하면서 의식적 모방 학습의 결과로서 몸 테크닉과 사회구조의 무의식적 체화로서 하비투스는 차이가 있음을 강조한다. 몸 테크닉은 심층적 하비투스의 가시화된 일부 몸동작이 아니라 하비투스의 시야로 포착할 수 없는 사회적 현실을 가리키는 별도의 개념으로 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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