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표 교수, "예술하는 철학자로서 혁명적 삶 살아가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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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표 교수, "예술하는 철학자로서 혁명적 삶 살아가고 싶어"
  • 김한나 기자
  • 승인 2020.03.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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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의 인물, 이 사람]

- 경남과기대 김상표 교수, 경영학 교수에서 전업화가의 길로
- 경영, 철학, 예술을 가로지르며 감행한 관념과 실천의 모험
- "'그림' 그리며 내 안에 또 다른 자아와 마주해"

Ⓒ 김상표
Ⓒ 김상표

"죽을 때까지 물음과 사유를 멈추지 않는, 나만의 고유한 세계를 멋지게 살고 싶어"

정말 멋진 스타일의 삶을 살았던 하나의 독특한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다고 말하는 김상표 작가. 범상치 않은 비주얼만큼 뼛속까지 철학하는 예술가를 꿈꾸는 그를 서울 인사동 <갤러리 이즈> 전시장에서 만났다.

2001년부터 경남과학기술대학교 경영학과 교수로 재직했던 그는 정년을 9년 앞두고, 올해 2월 명예퇴직을 하며 전업화가의 길을 택했다. 김 작가는 "진짜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일까를 끊임없이 고민했고, 지금이 마지막 기회가 아닐까 생각했다. 교수를 그만두고 철학하는 삶을 살아야겠다고 결심한 뒤, 고민하다 자연스럽게 미학 쪽으로 관심을 가졌다"며 "느닷없이 그림이 그려져 운명처럼 끌려나와 이 자리까지 오게 되었다"고 말했다.

그는 예술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철학하는 사람이 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그림을 원래 좋아했고, 컬렉션도 했지만 전문적으로 그림을 그려본 적도, 배운 적도 없었다.

그림을 그리고 싶어진 그는 잠시 화실에 다니면서 주로 정물 데생을 배웠다. 하지만 기계적으로 가르치는 화실의 교육방식이 맞지 않아 그만두고 혼자서 연필, 목탄, 볼펜, 유화물감 등 여러 재료를 가지고 초상화를 그리기 시작했다.

그는 "항상 자아 찾기에 목말라했던 '나'를 그리면서 내면의 수많은 자아와 마주하게 됐다"면서 "내 안에 살아 있는 야생의 '나'의 모습, 자아들이 서로 부딪힐 때마다 우발적으로 사건을 저지르게 된다. 그림을 그리게 된 것도, 전시회를 연 것도 그런 사건의 하나의 표현인 것"이라고 했다.

예술이라는 새로운 분야에 대한 도전인 만큼 열정의 크기도 남달랐다. 2018년에만 네 번의 개인전을 열었고, 한 해 동안 그려낸 그림만 200점이 넘는다. 지난 11일에는 인사동 <갤러리 이즈>에서 100호 대작, 100점으로 다섯 번째 개인전인 ‘나르시스 칸타타(NARCISSUS CANTATA)’를 개최했다.

"붓을 칼처럼 휘두르며 발작적으로 그림그리기를 하는 나를 발견했다."

그는 "그림을 그리는 순간부터 나도 모르는 세계 속으로 들어가 버리는데, 평소에는 이성으로 무장해 있지만 이성을 무력화하고 싶은 욕구가 느끼는 대로 즉발적이고 폭력적인 방식으로 붓을 휘두르게 만든다"며 "평소 사유나 사색을 오래하는 편인데, 그림만 그리면 돌발적이고 감각적으로 변한다"고 설명했다.

김 작가의 인간 본질에 대한 갈증은 대학 시절부터 계속돼 왔다. 그는 "83학번이었던 당시에는 민주나 반민주라고 하는 대립구도 속에서 갈등했던 지식인으로 살았던 시절"이라며 "경영학을 공부하면서 학문에 대한 정체성에 대해 고민이 많았다"고 회상했다.

그러면서 "경영학은 기본적으로 도구적 합리성, 목적이라는 것을 묻지 않는 학문이다. 어떤 면에서 목적을 달성하는 최적의 수단을 찾는 것인데, 그것이 시대적 상황과 맞물려 인간과 조직 세계에 대한 고민이 그때부터 시작됐다"고 했다.

이후 경영학 석·박사 학위를 받고 경남과학기술대에서 교수를 하면서도 정체성에 대한 고민은 이어졌다. 그는 "도시를 떠나 아무런 연고도 없는 경남 진주에 머물면서, 거기서부터 예술이나 철학, 이런 것들이 나의 정체성과 오히려 부합되지 않을까 생각하게 되었다"며 "학부 개설과목도 '철학과 경영의 만남' , '예술경영' 등 경영과 철학, 예술을 접목시킨 강의를 최초로 개설했다"고 말했다.

이어 "경영과 철학, 예술은 모두 사유의 대상이다. 결국 예술의 영역에서 진리가 인간이 추구할 수 있는 사유의 가장 깊은 영역인데, 모두 관념과 모험의 영역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그는 경영학 교수를 했던 시기를 "하나의 제도권 안의 삶"이었다고 표현했다. 교수가 어떤 제도 안에서의 역할과 자리에 맞는 생각과 행동을 하고 살아가야 했다면, 화가로서의 삶은 이성과 감성의 제약을 완전히 해방시켜 버렸다는 것이다. 무한대의 세계 속으로 내 자신을 끌고 들어갈 수 있는, 상상력과 감각들이 살아난 완전히 다른 삶이라고 했다.

마지막으로 김 작가는 "현실적 목표를 정해놓고 살지는 않는데, 전시가 끝나고 나면 목적 없는 독서를 하고 싶다"고 전했다. 또 그는 "자연 속에 나를 무방비로 놔두고 싶다. 그림은 부분적으로 들여다보면 무작위적, 카오스적이지만 그 안에는 어떤 밸런스가 숨어 있다. 나는 자연에 대한 애정과 관찰을 바탕으로 이러한 밸런스를 찾아낸다"고 설명했다.

삶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되물으며 철학자로서의 혁명적 삶을 살아가고 싶다는 김상표 작가. 그림은 '삶의 지속된 고민의 연장'이라고 말하는 그는 그림을 통해 본연의 고민들을 다른 방식으로 풀어가고 있었다.

◆ 『얼굴성: 회화의 진리를 묻다』 (김상표 지음, 솔과학, 2020.02)

경영, 철학, 예술 세 분야에 뛰어들어 그 사이를 가로지르며 자신만의 삶의 스타일을 창안하고 있는 저자 김상표는 '관념의 모험' 시리즈 3권을 출간 중인데, 첫 번째 책 '경영은 관념의 모험이다'와 두 번째 책 '화이트헤드와 들뢰즈의 경영철학'에 이어 이번에 예술분야의 책, '얼굴성: 회화의 진리를 묻다'를 펴냈다.

이 책에는 5회의 개인전을 치르는 동안 그가 작업했던 350여 장의 초상화와 작가의 에세이들이 실려 있다. 뿐만 아니라 여러 학자와 큐레이터들이 자신들만의 고유한 방식으로 김상표의 작가론을 펼쳐냈다.

무엇보다 이 책에는 자화상에 집중한 김상표의 면모가 여실히 드러난다. 김상표의 자화상은 동일성과 재현의 범주에 포박되지 않으려는 몸부림에 가깝다. 데리다가 말했던 '해체론자의 자화상'의 모습을 드러낸다. 해체론자의 자화상은 구체적인 선과 색으로 고정화할 수 없이 끊임없는 기표(작품)들의 접속과 치환 속에서 섬광처럼 드러나는 흔적으로 표현된다. 마찬가지로 김상표의 자화상은 (자기가 사랑하거나 미워했던) 타자의 욕망의 흔적들을 보여주면서 지워가며 충만한 공백상태에 도달하려는 투쟁의 기록이다.

"철학과 경영에 대한 고민을 할수록 보편적 범주들의 자아에 대한 독재에, 오히려 내 몸은 파닥거릴 뿐이었다. 모든 행위의 과정과 결과물은 내 자아로부터 철저히 소외되었다. 존재의 결여에 시달렸다. 어느 날 캔버스와 마주하고 나를 그리기 위해 숨가쁘게 형태를 잡고 색을 칠했다. 다음 날에도, 또 그 다음 날에도.... 내 안에서 우글거렸던 수많은 애벌레 주체들이 하나씩 토해지기 시작한 것이다. 존재가 내 몸을 빌려 열리고 드러나는 순간이 찾아왔다. 그토록 채워지지 않던 결여의 공간에 드디어 충만함이 자리잡기 시작했나 보다. 점점 더 자유로워지면서 형상의 자리에 색들이 가득 채워졌다. 자아 찾기의 도정에서 비로소 벗어나는 순간, 콧노래를 흥얼거리는 내 모습을 아내가 발견했다. 아름다움의 구원이 내게도 찾아온 모양이다"(17쪽).

"제 사랑에 바쳐진 제 모습이 제 아름다움을 완전히 알도록 권하는 그곳 물을 향한 나르시스의 영원회귀에 감탄하라(폴 발레리). 거울 속에 비춰진 매번 다른 자기를 사랑하는 나르시스처럼 나의 리비도는 자아에 대한 무수한 기억의 결들을 대상화하여 이미지로 표현해냈다. 그 결들은 리비도가 지향했던 타자의 흔적(욕망)과 중첩되고 포개진다. 그런데 나를 그리면서 점점 자유로워져 간다는 것은 내 안의 타자의 흔적(욕망)을 지워가기 때문이다. 결국 나의 '수행성으로서 그리기 행위'는 라캉이 말하는 일종의 '공백의 장소'로 나를 데려가는 것 같다. 어떻게 하면 그 장소가 텅빈 허무의 공백이 아닌 텅빈 충만의 공백이 될 수 있을까?"(364쪽).

▲ 김상표_자화상
▲ 김상표_자화상

김상표는 이번 개인전에서 혁명가 장일순을 회화적으로 형상화해내는 실험을 감행했다. 이 그림들에는 나르시시즘과 나르시시즘적 투사를 벗어나기 힘든 지식인의 운명과 고투하면서 절대적 타자성을 향해 자신을 열려는 지난한 몸부림이 깃들어 있다. 나르시시즘과 절대적 타자성(혹은 주체와 타자), 이 둘은 논리적으로든 실천적 삶 속에서든 화해시키기 무척 힘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자신을 해명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이 둘 간의 관계를 나름의 방식으로 풀어가지 않으면 안 된다. 비록 정답이 정해져 있지 않은 열려진 문제이긴 하지만. 인간과 조직 그리고 세계의 문제를 경영학과 철학의 언어로 풀려고 고심해온 김상표 또한 이 문제를 비껴갈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는 이 책 6장을 폴 발레리의 시를 빌려 '나르시스 칸타타(NARCISSUS CANTATA)'(5회 개인전 제목이기도 하다)로 명명하고, 자신의 회화와 작은 에세이들을 징검돌 삼아 이 아포리아(aporia)에 매달린다.

이 책의 에필로그 'Tao of Painting - Tao Painting'이라는 글에서 김상표는 자신의 회화를 다음과 같이 요약한다. "선과 색 그리고 화폭 안팎의 연기의 망 속에서 주체 없는 그림이 사건의 복합체로 늘 새롭게 서있다. 그것이 나의 그림이다. …. 단숨에 그리되 수많은 순간들이 모이면 충돌하고 충돌하면서 어울림이 일어난다. 획이 가는 대로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자연이 이루어진다. 그 과정에서 획과 획의 부조화의 조화, 불균형의 균형이 공감적으로 잠시 멈추어선 순간이 나의 그림이다. 화이트헤드의 미학에서 말하는 대비의 대비 속에서 우뚝 선'균형 잡힌 복합성(balanced complexity)'이 생겨난다. 바로 역설의 미학이 탄생하는 것이다."(444-445쪽)

김상표의 회화는 모더니즘의 언어를 가지고는 한 마디로 제단하기 어렵다. 그가 박사과정 때부터 매달린 '역설'의 문제 마냥 우리에게 해결을 요구하는 영원한 수수께끼처럼 다가온다. 이 책은 '느낌에 대한 유혹(lure for feeling)'으로 그득하다, 오디세우스를 유혹했던 세이렌의 노래처럼. 김상표가 그린 얼굴들이 우리에게 그와 함께 예술의 모험을 감행하자고 손짓한다. 오디세우스처럼 몸을 밧줄로 묶는 대신에, 김상표의 시선의 유혹에 과감히 끌려들어가 보기를 권한다. 유혹에 뛰어들지 않으면 니체의 영원회귀와 같은 창조와 생성의 삶은 없을 것이기에…
 

김상표 화가/前교수

전라남도 영암 출생으로 연세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경영학 석사, 박사 학위를 받았다. 경남과학기술대학교 경영학과 교수로 재직하며 경영, 철학, 예술분야에서 감행했던 모험들에 대한 기록으로 ‘경영은 관념의 모험이다(생각나눔)’, ‘화이트헤드와 들뢰즈의 경영철학(솔과학)’ 신간 ‘얼굴성: 회화의 진리를 묻다’ 등 3권을 출간했다.
2012년 같은 대학의 창업대학원 원장과 창업지원단장을 역임했고 ㈜수다지안이라는 사회적 기업을 창업하기도 했다. 2017년에는 University of Maryland에 Visiting Scholar로 1년 동안 머물렀으며, 기획재정부 협동조합심의위원회 위원으로도 활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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