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럿거스대 교수노조 파업의 성과와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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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럿거스대 교수노조 파업의 성과와 의미
  • 김명환 서울대 영어영문학과
  • 승인 2023.05.08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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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논평]

지난 4월 10일(월)부터 15일(토)까지 미국 뉴저지 주립대학인 럿거스대학(Rutgers University)에서 교수노조의 파업이 벌어져 노조 측의 요구가 대폭 관철된 잠정 합의안이 타결되었다. 노조는 마무리 협상이 진행 중이어서 파업을 끝낸 것이 아니라 중단했을 뿐이라는 입장이지만, 사실상 노조가 승리한 단체행동이었다. 먼 나라 미국의 사례이고 우리의 교수노조는 법적으로 단체행동권을 제약받는다는 결정적 차이점이 있지만, 럿거스대학 250년 역사에 처음 벌어졌다는 교수노조의 파업은 막 합법화되어 초기 단계에 있는 우리 교수노조운동에 던지는 교훈이 많다.

럿거스대학은 재학생 67,000명, 교원 9,000명 규모의 큰 주립대학이다. 미국에서 가장 인구밀도가 높은 뉴저지주에 세 개의 주 캠퍼스를 가지고 있으며, 큰 기부자의 이름을 대학명으로 쓰고 있지만 거버넌스 구조는 대학명에 주 이름을 달고 있는 여느 주립대학과 다르지 않다.

다른 주립대학도 마찬가지이지만 럿거스대학도 2008년 금융위기의 타격으로 어려운 학교 재정이 더욱 악화되고 있었다. 주지하다시피 1970년대 이후 미국 사회를 신자유주의가 점점 더 강력하게 지배하게 됨에 따라 미국 고등교육의 공공성은 약화되고 재정 형편은 나빠지고 있었는데, 월가의 탐욕과 부패가 부른 금융위기가 대학을 더욱 힘들게 했다. 그러나 금융위기는 미국의 모든 대학을 어렵게 만든 것이 아니라 최상위권의 사립대학(소위 아이비리그와 스탠포드, 시카고 등 일류 사립대학)들과 주립대학 및 커뮤니티 칼리지의 격차를 더욱 확대했다는 것이 정확한 분석일 것이다. 3년 전인 2020년에 터진 코로나19 대유행의 와중에서도 대학 재정이 풍부한 상위권 사립대학들은 큰 피해를 입지 않고 오히려 투자한 펀드를 불리는 경우도 많았던 반면에 다른 대학들은 학교 봉쇄와 비대면수업 전환 등으로 큰 고통을 받았으며, 결국 대학들 사이의 부익부 빈익빈 현상은 더욱 심화되고 있다. 

이처럼 어려운 현실을 핑계로 럿거스대학은 교수와 강사, 박사후연구원(post-doc), 대학원생 등의 임금을 장기간 동결하는 반면, 수익성이 높지도 않은 헤지펀드에 수백만 달러를 투자하는 방만한 경영을 하는가 하면 학교 운영진 중에 여섯 자리 숫자 연봉, 즉 100만 달러 이상의 고액 연봉을 받는 이들은 오히려 늘어났다. 이 역시 대부분의 미국 대학에서 일반적으로 관찰되는 현상이라고 말해야 옳다. 

럿거스대는 2020년 코로나19 대유행 이후 1천명 이상의 직원을 정리해고했으며, 현재는 정년보장을 받는 전임교수(tenure-track professors)보다 비정규교수가 훨씬 더 많아진 상태였다. 즉, 비정년트랙교수(NTT, non-tenure track)와 시간강사(part-time lecturer)가 교수진의 다수를 점하게 된 것이었다. 이 역시 미국 대학의 일반적 현상으로서 한 미국 언론의 보도에 따르면 1969년에 미국 대학의 전체 교수진 중에 정규직이 75% 이상이었지만, 2016년에는 73%가 비정규직일 정도로 상황이 거꾸로 뒤집혔던 것이다(“Rutgers Strikers Run the Table”, The Nation, 2023년 4월 19일자). 

이런 상황에서 작년부터 진행된 단체교섭에서 학교 측의 불성실한 태도와 지연전술이 노조원들의 분노를 샀고, 지난 4월 9일(일)에 전격적으로 파업이 결의되어 다음 날부터 수업을 거부하고 3개 주요 캠퍼스에서 집회와 피케팅을 개시했다. 학생들도 파업에 동조하여 수업에 들어온 교수에게 수업을 받지 못하겠다고 선언하고 나가는 경우가 많았다는 점도 주목할만하다. 

그러나 가장 결정적인 사실은 파업이 파업의 3개 노조의 연대파업이었다는 점이며, 으뜸가는 요구 조건이 정년트랙의 전임교수 중심의 요구가 아니라 비정규교수와 대학원생들의 처우 개선이었다는 점이다. 파업에 참여한 3개 노조는 AAUP-AFT(American Association of University Professors–American Federation of Teachers), PTLFC-AAUP-AFT(Rutgers Adjunct Faculty Union), AAUP-BHSNJ(American Association of University Professors–Biomedical and Health Sciences of New Jersey)이었는데, 특히 두 번째 노조는 우리로 치면 비정년트랙교수와 시간강사 노조라고 할 수 있다. 3개 노조의 94%가 파업에 찬성표를 던졌으며, 앞서 말했듯이 학생들도 동조하는 분위기에 직원노조도 이들의 파업을 지지하는 편이었다.

럿거스대학 총장은 즉각 파업이 불법이라고 주장했지만, 실제 불법 여부는 애매한 면이 있다고 한다. 하지만 파업의 기세가 워낙 거센 바람에 주지사 선거에서 노조의 지지를 받았던 민주당의 필 머피 주지사가 정치적으로 개입해 중재에 나서는 상황으로 발전했다. 4월 10일(월)에 시작된 파업은 4월 15일(토) 아침에 노조 지도부와 학교 측의 잠정적 합의에 따라 일시 중단되어 4월 17일(월)부터 정상수업이 개시되었다. 

사실 5월의 종강과 졸업식이 가까워지는 터에 노조도 장기간의 수업 공백이 크게 부담이 되는 상황이었고, 대학 당국 역시 마찬가지 형편이라는 점이 조기 타결에 작용했다. 그러나 워낙 대학 측이 단체교섭에서 무성의한 자세로 임한 데 대한 분노가 팽배한 데다가 파업의 요구사항이 전임교수 아닌 비정규교수들의 정당한 처우 개선이라는 점이 성공적인 파업의 가장 큰 요인이었음은 말할 것도 없다. 

우리 교수노조는 미국과 달리 단체행동권이 없어 비록 파업은 못하지만, 심각한 쟁의 상황에 처했을 때 어떠한 요구 조건을 내걸고 누구와 연대하면서 피케팅, 연좌농성 등 다양한 쟁의 행위를 창의적으로 해야 하느냐에 대한 시사점을 바로 이 럿거스대의 파업 사례에서 얻을 수 있다. 무엇보다도 대학 구성원 중에서도 약자에 속하는 비정규교수, 포닥, 박사과정생의 노동에 대한 정당한 보상을 먼저 요구함으로써 전임교수의 이익도 지킬 수 있다는 점이 두드러진다. 

또한 학생과 지역 사회의 공감과 지지도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교수노조가 파업을 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학생들이 동맹휴업 등으로 선생들의 정당한 요구에 연대를 해올 때 사실상 파업과 마찬가지의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상상력의 발휘도 필요하다. 현재 가장 위기에 처한 전문대학과 지역의 사립대의 경우는 교원과 학생, 직원의 이해관계가 겉으로는 충돌해도 근본적으로는 일치한다. 따라서 이러한 현실을 잘 파고드는 장기적인 비전과 슬기롭고 민첩한 전술이 절실하다. 가령, 언론 등이 노동운동에 극히 적대적인 한국의 환경에서는 학생들이 먼저 나서서 교원의 처우 개선이 되어야만 자신들이 좋은 교육을 받을 수 있으며 교수노조에 대한 탄압이 곧 학생의 수업권 침해가 된다는 주장을 펼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을 것이다. 아직은 상상에 불과한 일이지만, 그것을 현실로 만들어내는 것이 노동운동, 사회운동의 할 일이다.


김명환 서울대 영어영문학과

(현) 전국교수노동조합부위원장
(전) 서울대 교수협의회 부회장
(전) 경제⸱인문사회연구회 인문정책특별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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