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과 차별 그리고 언어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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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과 차별 그리고 언어교육
  • 조현용 경희대학교·한국어교육
  • 승인 2023.05.07 10:2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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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쿠스]

인권의 현장이라는 말은 차별의 현장이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인권이 강조되는 곳일수록 어쩌면 차별이 심한 곳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언어교육의 현장은 인권의 현장이고, 차별의 현장입니다. 매우 유감스럽게도 말입니다. 우리는 깨닫지 못하고 있을 뿐입니다.

단순한 예로 영어교육을 들어볼까요? 영어를 가르치는 사람 중에 원어민 교원이 있습니다. 예전에는 원어민에게 영어를 배우는 게 꿈이기도 했습니다. 종로나 이태원 등지에서는 ‘미인 영어회화’라는 간판이 보이기도 했습니다. 아름다운 사람에게 영어를 매우는 것이 아니라 미국인에게 영어를 배운다는 뜻이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차별이 시작됩니다. 그 사람의 자질이나 성품, 교수방법에 상관없이 ‘백인’을 선호하였기 때문입니다. 교사 소개를 받을 때도 흑인은 꺼려했습니다. 이것은 옛날이야기가 아닙니다. 여전히 한국에서 활약하고 있는 원어민 영어교사는 백인이 대부분입니다.

한국어 교재에는 미국인이 자주 등장합니다. 이것도 좀 우스운 일입니다. 한국어를 배우는 학생 중 미국인의 비율은 극히 소수인데, 주인공으로는 미국인을 쓰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게다가 여기에 등장하는 미국인은 거의 백인입니다. 우리는 언어교육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차별을 주입하고 있는 겁니다. 학생들은 그러한 교재를 보고 자라고, 그런 선생을 보고 자랍니다.

일반 교과에서는 많이 사라졌다고 하지만 한국어교재에서는 여전히 성에 대한 차별도 나타납니다. 고정적인 성역할을 강조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결혼이민자를 위한 한국어교재를 보면, 요리와 집안일, 육아는 주로 여성의 몫으로 등장합니다. 실상을 그린 것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여전히 불편한 시각임에는 틀림없습니다. 하긴 결혼이민자 중에는 남성도 있음을 아예 잊고 있기도 합니다. 

미국의 ESL 교사들은 학생 중에 한국인, 중국인, 인도인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어, 중국어, 힌디어에 대해 그리 알지도 못하고 관심도 적습니다. 학습자의 언어를 아는 것이 교육에 이롭다는 것은 상식이지만, 이런 상식은 통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한국어교육은 어떨까요? 이제 베트남에서 온 학생수가 1위를 차지하지만 베트남어에 관심을 갖고 있는 선생님, 대학원생은 적습니다. 우즈베키스탄이나 몽골에서 온 학생도 많지만 우즈벡어나 몽골어에 대한 관심도 거의 없습니다. 저는 이것도 자연스러운 차별이라고 생각합니다. 

언어교육의 차별은 연구로도 이루어집니다. 현재 한국에 있는 외국인 중에서 노동자의 수가 아주 많습니다만, 외국인 노동자를 위한 한국어교육에 관한 연구는 부족합니다. 물론 교육 자체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세계에 나가서 한국어를 보급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한국에 와 있는 외국인에게 한국어를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주고, 그들이 한국의 문화를 좋아할 수 있게 노력하는 것은 정말 중요한 이야기입니다.

이밖에도 더 많은 인권의 이슈가 언어교육 속에 있습니다. 교재의 내용 속에는 수많은 차별이 담겨 있습니다. 교재에 장애인이 나오는 경우를 본 적이 있던가요? 교재에 나오는 직업들은 어떠한가요? 어쩌면 교재뿐 아니라 교육자의 마음속에도 깨닫지 못한 채 행하고 있는 차별이 있을 겁니다. 언어교육이 평등과 평화의 가치를 깊이 헤아리기 바랍니다.   


조현용 경희대학교·한국어교육

경희대학교 국제교육원 한국어교육 전공 교수. 한국어와 한국문화를 공부하고 있으며 언어를 통해 세상이 따뜻해지기를 소망한다. 지은 책으로는 한국어 교육을 위해서 쓴 《한국어 어휘교육 연구》, 《한국어 교육의 실제》, 《한국인의 신체언어》, 《한국어 문화교육 강의》, 《한국어, 문화를 말하다》 등이 있으며 언어로 세상과 소통하려고 쓴 《언어로 본 한국인의 문화유전자》, 《한글의 감정》, 《우리말 깨달음 사전》, 《우리말로 깨닫다》, 《우리말 가슴을 울리다》, 《우리말 지친 어깨를 토닥이다》, 《우리말의 숲에서 하늘을 보다》 등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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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현보 2023-05-09 11:13:55
저도 한국어 강사를 하고 있지만
많은 반성 및 깨달음을 주는 글입니다! 많이 배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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