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ECD 국가들에서 지방자치를 실시하지 않고 선진국의 지위를 획득한 나라는 한 곳도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방자치는 물론 말도 많고 탈도 많지만 득이 더 많다는 점은 역사적으로나 현재의 시점에서도 분명하다. 한국의 지방자치제 역시 1949년 지방자치법이 제정된 이후 단절과 복원이라는 과정을 거치면서 현재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물론, 긍정적인 방향으로 지역의 창의성과 주민들의 삶의 질에 커다란 개선을 보여왔음에도 불구하고 4년마다 치루는 지방선거는 항상 정당 공천잡음과 중앙정치와 분리되지 않는 지방정치의 구조적인 문제, 지역구 국회의원들의 전횡으로 탄생하는 지방권력의 탄생 등은 한국의 민주주의뿐만 아니라 지역의 자생력을 해치는 요인들로 작용하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문제일까. 이미 헌법소송에서 위헌 판결을 받은 정당의 공천권 행사가 잘못된 것일까. 아니다. 문제는 중앙정당만 인정하는 현행 정당법에 있다.
지방정치의 분권화 추진은 수도권으로의 인구집중, 지방인구 감소, 특별자치시·도 확대 등 지자체별 여건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필요하다. 현재의 우리나라 지방선거는 중앙선거의 대리전 양상을 띠며 지역의 일꾼을 뽑지 않는 중앙정당의 대리인을 선택하는 구조이다. 이러한 정당투표 현상은 지방자치마저도 중앙정치의 이념대결로 전화되어 갈등을 증폭시키는 상황이다.
지방의 자기결정권과 자치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주민 대표기관인 의회 구성과 관련된 사항에 대한 시·도 단위의 지방자치단체에서 자율성을 강화하는 방안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OECD선진국 대부분이 채택하고 있는 지역정당의 설립을 용이하게 하여 중앙과 분리된 지역의 현안을 집중적으로 다루고 정책을 수립·추진할 수 있도록 지역정당을 추진하는 것이 지방분권을 위해서라도 매우 중요한 과제인 것이다.
미국과 독일을 비롯한 연방정부를 갖는 국가들은 물론 이태리와 영국, 일본 같은 단방정부를 취하고 있는 국가들에서도 지역정당들의 활발한 활동을 보여주고 있다. 일본에서는 도쿄와 오사카 등에서 출마한 지역정당 출신 지사들이 선거에서 당선되는 것은 이젠 상식이 되어있다. 도쿄도와 오사카시의 단체장뿐만 아니라 지방의회에서도 지역정당이 제1당을 차지하는 것 또한 종종 목격하는 현상이다. 이탈리아 북부의 분리 독립·연방제를 주장하는 동맹이나 캐나다의 퀘벡주 분리 독립을 주장하는 블록·케베코, 영국의 스코틀랜드 국민당 등은 지역정당의 대표적인 사례로, 지방의회뿐만 아니라 중앙의회에서도 의석을 확보하고 있다. 독일 바이에른 주에서 활동하는 바이에른 기독교사회동맹도 지역정당이지만, 전 독일에서 활동하는 독일 기독교민주동맹과 협력 관계를 맺고 있으며 연방 의회에서도 통일회파를 형성하고 있다.
그리고 이들 나라들에서는 한결같이 지방선거에서 중앙정당의 공천권 남용이나 중앙정치에 예속되는 지방정치의 모습을 찾아보기 힘들다. 지방정치의 분권화를 위한 방안으로서는 다음의 두 가지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첫째는, 지방의원(시도) 선거구획정위원회 설치 및 운영 방안 개정을 추진해야 한다. 현재는 현행 시도 지방의원에 대한 선거구획정위원회에 관한 규정이 없어 국회에서 「공직선거법」을 개정하여 시도의원의 정수와 선거구를 결정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다시 말해, 지방의회 의원의 정수산정(시도, 시군구)과 선거구 획정(시도) 권한을 시도(세종시 제외)에게 부여해야 한다. 둘째는, 지역정당의 창당을 용이하게 하기 위해 정당법 개정을 추진해야 한다. 현재의 정당법은 중앙당을 서울에 위치시키고, 5개의 시·당과 각 시·도당에서 1,000명의 당원을 확보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OECD 선진국은 지역정당의 활성화를 위해 중앙정당과 차별성 있는 지역정치를 보장하고 있다. 따라서 정당법을 개정하여 지역정당의 창당이 용이해지도록 해야 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얻는 기대효과는 지방정치의 분권화를 통해 현안들이 중앙정치의 이념적 대결에서 벗어나고, 지역을 기반으로 한 지역정치가 육성됨으로써 지방자치가 민주주의 학교로서의 역할을 수행할 것으로 기대된다. 그러나 역시 지방정치 분권화의 가장 큰 장애집단은 국회가 될 것이다. 즉, 현행 정당법과 공직선거법에서의 정당공천 권한이 약화되는 것에 대한 우려로 인해 국회에서 반대할 가능성이 있을 것이다.
임승빈 명지대·행정학

일본 도쿄대학(東京大學)에서 석사 및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한국지방행정연구원, 한국행정연구원, 국립순천대학교 등을 거쳐 현재 명지대학교 행정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학문적 관심 분야는 지방자치, 정책집행, 지역개발정책 등이며, 주요 단독 저서로는 『질서의 지배자들』, 『지방자치론』, 『정부와 NGO』, 『행정사』 등이 있다. 정부 및 자치단체의 각종 위원회 위원을 역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