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의 패권 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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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의 패권 시정
  • 조동일 논설고문/서울대학교 명예교수·국문학
  • 승인 2023.05.07 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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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일 칼럼]

김만중(金萬重)은 <西浦漫筆>(서포만필)에서 朱子(주자)의 착각을 지적했다. 西天祖師(서천조사)라고 한 서역 고승의 불교 노래 게송(偈頌)에 있는 운(韻)은 중국에서 넣었다고 한 것은 사실이 아니라고 했다. 불경 <圓覺經>(원각경)에 중국 고전 <列子>(열자)에 있는 말이 보이는 것을 증거로 삼아 <원각경>은 <열자>에서 비롯했다고 한 말도 틀렸다고 했다.

서천조사 게송의 운은 원래 있었으며, 중국에서 번역할 때 비슷한 것을 만들어 넣었다. <원각경>을 번역할 때, 이해를 쉽게 하려고 <열자>에 있는 말을 사용했다. 이것이 진실인데, 주자는 엉뚱한 소리를 했다고 은근히 나무랐다. 이것은 단순한 착오가 아니고,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김만중이 아주 조심스럽게 한 말을 명백하게 노출시키자.

주자는 석학이라고 하지만, 외국어를 전연 모른다. 중국 것만 훌륭하고 다른 나라 것들은 모두 하잖다고 하는, 자기중심주의 차등론에 빠져 사리를 판단한다. 주자만 그런 것은 아니다. 중국 사람들은 거의 다 그런 표본을 주자가 보여준다. 그런데도 중국은 대국이고 패권을 장악하는 것이 당연하므로 비판하지 말라고 했다. 

김만중은 그런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고 시비를 가렸다. 중국과 우리 양쪽의 말과 글을 알고 비교고찰을 해서 진상을 파악해 반론을 제기할 근거를 갖추었다. 말이 절주(節奏)을 갖추면 노래가 된다는 일반론을 정립하고, 중국만 그럴 수 있다고 하는 독선을 배격했다. 중국중심주의자 주자를 높이 받드는 것이 잘못임을 확신하고, 당시에는 허용되기 어려운 아슬아슬한 정도의 비판을 했다.

지금은 미국이 온 세계에 군림하는 패권국가이다. 미국을 대단하게 여기고, 미국 학문을 받들며 가져오는 수입학이 덩달아 위세를 떨친다. 이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가 큰 문제로 제기되었다. 당나라 유학생들은 귀국하면 다시 가지 않고 가져온 지식을 우리 것으로 만들었는데, 미국 유학생들은 그렇지 않다. 태평양 상공을 뻔질나게 오가면서 학문 수입을 실시간 진행하고 있어, 검토하고 대처할 여유를 주지 않는다. 

뒤로 물러나 거시적인 비교를 하면 대책이 선다. 중국은 문화 축적의 무게가 만만치 않아 상대하기 버겁지만, 미국은 그렇지 않아 허점이 쉽게 드러난다. 한 나라 문화를 총괄하는 표상이라고 할 수 있는 문학사가 미국에서는 패권주의 대국의 위상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게 너무나도 빈약하다. 미국의 다른 학문을 대단하게 보여도, 문학사학은 수준 이하이다. 

그런 내막을 감추려고 문학사의 의의를 부인하는 책을 써서, 밝음을 피하고 암흑세계의 지배자 노릇을 하려고 한다. 작전이 성공해 문학사 부정론 추종자들이 세계 도처에서 득실거리고 우리 주위에도 흔히 있다. 이것은 지난날의 주자 숭배를 완전히 반대로 뒤집는 괴이한 사태여서, 김만중을 불러와도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 사령탑이 퍼킨스, <문학사는 가능한가?>(David Perkins, Is Literary History Possible?, 1992)라고 하는 얄팍한 책이다. 읽어보면, 문학사는 완벽하게 쓰는 것이 불가능하므로 버려야 한다고 하는 억지 논리가 견고하다. 없어도 되는 문학사 예증을 장식 삼아 조금 곁들여, 영어본을 이것저것 들고 독어본도 끼워 넣었다. 그 밖의 다른 문학사가 얼마나 더 있는지 알 필요가 없다고 하는 거만한 자세를 보였다. 억지 논리와 거만한 자세는 흑색 종교의 통상적인 경전이며, 맹신자들이 모여들게 하는 미끼이다.

그 말대로 하면, 물리학도 완벽하게 연구하는 것이 불가능하므로 버려야 한다. 세상에 완벽한 것은 없으므로 어떤 존재도 인정되지 않는다. 이렇게 시비하고 말면, 암흑 종교의 술책에 말려들어 학문을 포기하게 된다. 퍼킨스, <<문학사는 가능한가?>>의 잘못을 밝히고 문학부정론을 바로잡는 작업을 차근차근 확실한 증거와 타당한 논리를 갖추어 하려고, 나는 <문학사는 어디로>(2015)라는 큰 책을 썼다. 김만중보다 수고를 더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결론의 결론인 마지막 두 단락을 옮긴다.  

문학사의 문제점을 깊이 이해하고 자기 나름대로 해결하면서 문학사를 바람직하게 쓰는 것은 학문에 뜻을 두고 노력하는 사람이 할 일 가운데 기쁨과 보람이 특히 크다. 문학사 잘 쓰기와 학문 수준 높이기는 둘이 아니고 하나이다. 내가 해온 작업을 되돌아보면서 이 사실을 확인하고 증명하면서, 못다 이룬 소망을 한탄 거리로 삼지 않고 잘 정리해 다음 연구자들이 공유재산으로 삼도록 넘겨준다. 가까이 있어 이 책을 먼저 읽는 인연을 맺은 분들이 분발에 앞서기를 기대한다.   

근대의 산물인 문학사를 폐기하지 않고 혁신해 근대를 넘어선 다음 시대의 더욱 발전된 창조물로 만드는 과업을 선도하는 것이 우리 학계의 사명이다. 중세에는 앞서다가 근대 동안에는 뒤떨어져 수입학을 할 수밖에 없었으므로, 후진이 선진인 전환을 다시 거쳐 다음 시대 창조학의 방향을 제시하고 모형을 보이는 것이 마땅하다. 문학사가 이 작업을 하는 최상의 영역임을, 광범위한 고찰을 갖춘 총괄론을 세계 최초로 써내서 알린다.    


조동일 논설고문/서울대학교 명예교수·국문학

서울대학교 불어불문학과와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으며 같은 대학 대학원 국어국문학과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계명대학교, 영남대학교, 한국학대학원 교수를 거쳐 서울대학교 교수를 지냈다. 서울대 명예교수이자 학술원 회원으로 계명대학교 석좌교수를 역임했으며 현재 중국 연변대학 명예교수이기도 하다. 주요 저서로 <서사민요연구>, <한국문학통사>(전6권), <우리 학문의 길>, <인문학문의 사명>, <소설의 사회사 비교론>(전3권), <대등한 화합: 동아시아문명의 심층> 등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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