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흐, 베토벤, 라흐마니노프를 거쳐 거슈윈과 글래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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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흐, 베토벤, 라흐마니노프를 거쳐 거슈윈과 글래스로
  • 이현건 기자
  • 승인 2023.05.06 20: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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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아노의 시간: 100곡으로 듣는 위안과 매혹의 역사 | 수전 톰스 지음 | 장혜인 옮김 | 더퀘스트 | 532쪽

 

피아노는 그 어떤 악기보다 대중에게 가까운 존재다. 놀랍도록 다재다능한 악기인 피아노는 두 손만으로 복잡하고 미묘한 음악을 연주할 수 있다. 2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피아노는 여러 독주곡과 협주곡으로 콘서트홀과 가정을 빛냈고, 클래식에서 재즈, 현대음악에 이르는 모든 음악 장르의 작곡가들에게 영감을 주었다. 

저자인 영국의 피아니스트 수전 톰스는 이 책을 통해 피아노 음악사의 빛나는 순간을 담은 100곡을 소개하면서 바흐, 모차르트, 드뷔시에서 필립 글래스에 이르기까지 누구나 이름을 알 법한 음악가와 그들의 기념비적 피아노 작품은 물론, 파니 멘델스존, 마리아 시마노프스카, 클라라 슈만과 에이미 비치 등 역사 속에서 상대적으로 덜 조명받아온 여성 작곡가와 연주자에게도 빠짐없이 빛을 비춘다.

피아노 이전에도 건반악기들이 있었다. 버지널, 하프시코드, 클라비코드 등의 건반악기에 이어 18세기 ‘피아노’가 등장하면서 표현의 혁신이 일어났다. 피아노는 이전의 건반악기들에 비해 연주자 마음대로 음을 크게 내거나 부드럽게 조절할 수 있었고, 표현과 울림의 범위가 넓어 미묘한 뉘앙스를 표현할 수 있었다. 빠르게 인기를 얻은 피아노는 19세기에 접어들자 음악 애호가의 가정과 ‘살롱’의 필수품이 되었다.

선율과 화음을 동시에 또는 여러 층을 겹쳐 연주할 수 있어 그 자체로 ‘완성된’ 음악을 연주할 수 있는 악기인 피아노. 독주는 물론 오케스트라와의 협주, 연탄곡, 듀오, 다른 악기들과의 2, 3, 4, 5중주, 합창이나 발레의 반주 등에서 다재다능함을 보여주는 피아노를 위해 저자 수전 톰스는 ‘피아노의 역사를 100곡으로 대표하는’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톰스는 “확실히 100곡은 너무 적다. ‘피아노 역사를 대표하는 5,347곡’쯤은 되어야 합당하겠지만 그랬다가는 독자의 인내심이 바닥날지도 모른다”며 한 분야에서 ‘최고의 100선’을 추리는 일은 그 주제에 대한 나름의 관점을 제시하는 좋은 방법이라고 전제를 깐다. 그러고는 콘서트 피아니스트로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독주곡은 물론 협주곡과 실내악, 현란할 정도로 까다로운 곡과 쉬운 곡, 소품집이나 작품집, 때로는 특정 장르, 그리고 피아노 음악사에 한 자리 차지함이 마땅한 여성 작곡가와 연주가, 재즈 음악에 이르기까지 유연한 관점과 다양한 이유를 엮어 100조각의 역사를 추려낸다.

바흐는 살아생전 피아노와 별 인연이 없었지만, 그의 작품들은 후대에 피아노로 연주되며 클래식 중 클래식으로 자리 잡았다(1부). 피아노가 본격적으로 도입된 18세기에는 하이든을 위시해 모차르트, 베토벤, 슈베르트에 이르는 ‘포르테피아노’ 음악의 강자들이 피아노의 세계를 넓혔고(2부), 이어서 19세기에는 피아노의 영향력이 한층 커지면서 멘델스존에서 쇼팽, 브람스를 거쳐 러시아의 차이콥스키와 드보르자크까지 낭만주의 작곡가와 피아니스트의 백화제방 시대가 열렸다(3부). 19세기 말~20세기 초에는 본격적으로 피아노 음악의 대중화가 이루어지는 한편, 스크랴빈, 라흐마니노프, 라벨 같은 작곡가들이 엄청난 기교가 필요한 작품을 쓰고 비르투오소 연주가들은 기꺼이 이런 도전을 기꺼이 받아들여 놀라운 결과를 내놓았다(4부).

20세기 초, 연주 녹음과 음반 대중화 등으로 거리와 비용에 구애받지 않고 클래식 연주를 즐기게 되었고, 정보의 흐름이 빨라지면서 여러 음악가가 저항정신으로 무장하고 음악적 실험을 시도할 수 있었다(5부). 19세기부터 20세기 초 발흥하여 이후 전 세계 음악가들에게 크게 영향을 끼쳐온 ‘재즈’의 세계도 빼놓지 않는다. 피아노는 애초부터 재즈의 중심이었다. 전설적인 곡들을 통해 훌륭한 재즈 연주자가 전달하는 상상력과 자유, 환희라는 감각을 되새겨준다(6부). 끝으로 20세기의 실험정신을 이어받아 오늘날의 피아노를 둘러싸고 이루어지는 시도들을 간략하게 소개한다(7부).

피아노는 위대한 작곡가들의 동반자, 뜻밖의 위로이자 감정의 분출구, 그리고 취미이면서 영감의 원천이었다. 이 책에 담긴 100곡은 독주곡, 실내악, 협주곡은 물론 재즈와 현대음악에 이르는 스펙트럼을 넘나들며 경이와 감동이 넘치는 내밀한 여정으로 우리를 이끈다. 긴 시간을 넘어 사랑받아온 100곡에 관한 이야기는 저자가 연주자로서 지닌 독특한 통찰이 담겼을 뿐 아니라, 피아노의 태동기부터 오늘날까지 선보인 빛나는 작품들을 감상하는 경험에 새로운 풍취를 불어넣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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