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파괴적 욕망으로 질주하는 오만한 유전자, 인류에게 미래는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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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파괴적 욕망으로 질주하는 오만한 유전자, 인류에게 미래는 있는가?
  • 이현건 기자
  • 승인 2023.05.06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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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모 히브리스: 인류, 그 거침없고 오만한 존재의 짧은 역사 | 요하네스 크라우제·토마스 트라페 지음 | 강영옥 옮김 | 책과함께 | 344쪽

 

이 책은 최신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인류 진화의 역사를 추적해가는 책이다. 진화의 관점에서 현생인류는 찰나의 순간에 탄생했다. 그 짧은 순간에 인류는 대륙을 정복했고, 북극과 사막을 횡단했으며, 동식물을 지배했다. 이것은 끝없는 승승장구가 아닌 후퇴와 실패를 거듭 극복하는 과정이었다. 

지은이들은 20세기가 호모 사피엔스를 ‘호모 히브리스(Homo Hybris)’로 만들었다고 말한다. 히브리스는 그리스어로 ‘지나친 오만과 자신에 대한 맹목적 과신’을 뜻한다. 이 명칭에는 파괴적 속도로 진화의 정점을 향해 내달려온 인간의 탐욕이 느껴진다. 의심할 여지 없이 우리 인간은 이 행성이 배출한 가장 지적인 존재다. 하지만 우리는 스스로 전지전능하다고 여기면서도 자기파괴적 충동에 사로잡혀 있다. 팽창하고, 소비하고, 정복하여 고갈시키려는 충동 말이다. 눈부신 진화의 역사를 헤쳐온 인류는 처음으로 한계에 부딪혔다. 

기후위기, 글로벌 팬데믹, 인구과잉, 전쟁, 생태계 붕괴 등 21세기 인류가 맞이한 위험은 인간 스스로의 행위가 남긴 파편들이다. 인간은 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까? 아니면 스스로 일궈온 성공적인 진화의 희생양이 되고 말 것인가? 자기파괴적 욕망으로 질주하는 오만한 유전자, 인류에게 미래는 있는가? 지은이들은 이 진화의 과정에 21세기 인류 생존의 과제를 해결할 실마리가 있다고 말한다. 

이 책은 공통조상에서 출발한 인류종들이 분화되고 갈라져 호모 사피엔스가 결국 진화의 정점을 찍고 지배자가 되는 과정을 추적한다. 인간, 침팬지, 고릴라의 조상은 지금으로부터 약 1000만 년 전에 지구에 살았고, 약 700만 년 전에는 인간 계통이 분화되었다. 이 공통 조상에서 현생인류, 네안데르탈인, 데니소바인이 탄생했다. 이들은 각자 생존의 길을 걸었다. 

현생인류의 진화 과정은 순탄한 성공가도가 아니었다. 빙하기의 추위, 화산폭발, 끝없는 장마, 잔인한 맹수 등의 위험이 도사린 곳에서 인류는 가까스로 살아남았다. 거대한 자연 앞에 인류는 무력하고 왜소한 존재일 뿐이었다. 하지만 인류는 자연에 순응하기보다 이를 이용하고 극복하는 존재였다.

현생인류는 빙하기의 추위를 피해 전 세계로 뻗어나갔다. 목숨을 건 이주 행렬이었다. 이 과정에서 인류는 네안데르탈인, 데니소바인과 교배하며 유전적 이점을 취해갔다. 책의 초반에 등장하는, 네안데르탈인의 DNA가 오늘날 인류의 유전자에 약 2퍼센트 포함되어 있음을 밝혀내는 과정도 이를 증명한다.

숨가쁜 속도로 퍼져나간 호모 사피엔스는 살상기술과 도구를 사용해 거대 동물을 사냥하고 육류를 섭취하며 뇌가 소모하는 에너지를 충당해갔다. 현생인류가 발닿는 곳마다 거대 동물들은 삽시간에 사라져갔다. 이것이 동물권에서 절대 남획을 하지 않는 다른 인류종과 현생인류의 차이였다. 매머드는 네안데르탈인과 공존하며 수십만 년 후에도 안정적인 개체 수를 유지했고, 네안데르탈인은 하이에나에 쫓기면서도 스스로가 먹이사슬에서 사라질 걱정을 하지 않았다.

짐승을 사냥하고 열매를 따먹으며 생계를 이어가는 수렵·채집 사회에서 농경사회로 넘어가면서 유랑생활에서 정착생활로 전환되었고, 잉여 수확물을 보관하면서 부(富)라는 개념이 생겼다. 신석기시대에서 청동기시대로 넘어가면서 인류는 문명, 가부장제, 전쟁을 만들었다. 이처럼 인류는 주어진 환경에 순응하지 않고 끊임없이 도전하고 실패하는 과정을 반복하며 성장해왔다.

20세기에 인류를 호모 사피엔스에서 호모 히브리스로 만든 것은 질병, 즉 병원체였다. 전염병을 신의 형벌로 이해했던 인류는 20세기 전반기에 백신과 항생제를 개발했고, 이 시기에 인간은 신과 같은 힘을 가진 병원체를 극복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졌다. 전염병은 수많은 인류의 목숨을 앗아갔지만 새로운 도약의 발판이 되기도 했다. 그전까지 두려움의 대상이었던 전염병은 이제 과거의 유물이 되었고, 인류는 드디어 자연에서 해방되었다고 생각했다. 의학이 점점 발달함에 따라 인류는 이제 유전자 가위로 인간의 설계도를 고치고 바꿀 수 있다고 자신하게 되었다.

호모 히브리스는 다른 생물종과의 두드러진 차이를 만들어내는 ‘이성’이라는 기관을 그 어떤 존재보다 잘 다룰 줄 안다. 인간의 지능은 공룡의 치명적인 이빨이나 두꺼운 피부 같은 기능을 하는 기관에 불과하다. 그렇지만 인간의 뇌는 6600만 년 전 공룡을 포함한 대부분의 생명체를 지구상에서 멸망시킨 운석과 비슷하게 위협적인 존재이기도 하다. 인간이 결정권을 가진 종으로 우뚝 선 것은 지능이라는 무기를 들고 모든 경쟁을 물리쳤기 때문이다. 이러한 통치권이 지구라는 행성 전체를 둘러싸고 있다. 이제 우리의 마지막 적은 우리 자신이 되었다.

지은이들이 인류 진화의 역사를 돌아본 것은 인류가 결국 한 뿌리에서 나왔고, 모든 존재는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말하기 위해서다. 현생인류가 진화의 잭팟을 맞은 것은 우연이며, 그 주인공은 데니소바인이나 네안데르탈인이 될 수도 있었다. 또 이들 인류종이 혼합되어 오늘날의 인류가 탄생했다. 이 과정에서 어떤 유전자가 우월하고 열등한지 증명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럼에도 인간은 순응하지 않고 극복하는 존재이기에 지금의 위기에 대해서도 돌파구를 찾아낼 수 있지 않을까. 우리는 수많은 위기 속에서 살아남은 생존자들의 후손이다. 지은이들은 우리 유전자에 새겨진 자기파괴의 충동을 자극하지 않고, 미래의 새로운 돌파구를 찾으리라는 희망을 전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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