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정치를 위한 시대적 과제는 이제 내각책임제 도입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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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정치를 위한 시대적 과제는 이제 내각책임제 도입에 있다”
  • 강수택 경상국립대 명예교수·사회학
  • 승인 2023.05.06 1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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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뚱맞게 지금 웬 내각제 개헌론인가? 대한민국 국민 다수는 내각제보다 대통령제를 훨씬 선호하는데 이건 비현실적인 이야기 아닌가? 독자들은 당연히 이런 질문을 던질 것이다. 하지만 분명히 얘기할 수 있다. 대한민국이 지금 처해 있는 여러 상황에서 불행하게 뒷걸음질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 진정한 선진국이 되려면 이제 대통령제 정부형태로부터 과감히 벗어나는 것이 무엇보다 시급하다고. 그러면 또 질문할 것이다. 내각제와 선진국이 도대체 무슨 상관이 있느냐고. 


선진국형 정부형태

이 질문과 관련해 다음 네 가지 점을 지적하려고 한다. 첫째, 대통령제에 비해 내각제가 선진국형 정부형태에 더 가깝다는 점이다. 미국을 제외하고는 선진국 가운데 실질적으로 대통령중심제를 취하고 있는 나라를 찾기는 쉽지 않다. G7 국가 가운데 오직 미국만 대통령중심제를 취하고 있다. 또한 모두가 선진국은 아니지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 회원국 중에서는 미국, 중남미 4개국, 한국, 튀르키예의 총 7개국만 대통령제를 채택하고 있다. 튀르키예의 경우는 현 에르도안 대통령이 권력 강화를 위해 2017년에 정부형태를 대통령중심제로 바꿨다. 물론 프랑스처럼 이원정부제를 채택한 선진국도 있으나 대부분은 내각제를 취하고 있다. 게다가 공신력 있는 EIU가 발표한 2022년 세계 각국 민주주의 지수 순위에 따르면 민주주의가 가장 발전한 상위 10개국 가운데 대만을 제외한 9개국이 모두 내각제 국가다.

둘째, 국정 책임자의 리스크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내각제가 필요하다는 점이다. 미국은 기본적으로 주정부가 연방정부에 우선해서 자리를 잡은 국가여서 연방정부와 주정부의 권한이 크게 분산되어 있다. 뿐만 아니라 행정부에 대한 의회의 견제도 비교적 잘 이루어지는 국가다. 이에 비해 한국은 제왕적 대통령제라고 불릴 만큼 대통령에게 거의 모든 권한이 실질적으로 집중되어 있다는 점에서 미국과 큰 차이가 있다. 그래서 한국의 대통령은 그만큼 국가의 운명을 크게 좌우할 위치에 있다. 그런데 내각제와 달리 대통령제에서는 국정 책임자로서의 역할을 위해 채 준비되지 않은 유명 인물이 급부상하여 대통령으로 취임하기가 훨씬 쉽다. 이 경우 대통령 취임 후 상당 기간 동안 시행착오를 거치는 과정에서 국가를 큰 위기로 몰고 갈 위험이 크다. 우리는 이런 사례를 미국과 한국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미국 국회의사당

셋째, 정치적 선진화를 위해서도 내각제가 필요하다는 점이다. 물론 국가의 운명이 대통령 개인에게만 맡겨져 있는 것은 아니다. 현직 대통령의 탄핵까지 이어진 2016~2017년 촛불혁명에서 보듯이 특히 한국의 시민은 국정 운영의 큰 실책을 범한 대통령을 자리에서 물러나게 하기도 한다. 하지만 평상시에는 국정 운영의 가장 큰 책임을 대통령을 비롯한 여야 정치인과 정당이 지고 있다. 그러므로 정치인과 정당이 국정 운영을 둘러싼 합리적인 정책 대결에 매진하는 것이야말로 국가를 선진국으로 이끄는 길이 된다. 그런데 한국의 정치인과 정당은 그러지 못해서 시민으로부터 가장 큰 불신을 당하는 집단이 되어버렸다. 이들의 경쟁과 대결은 보다 나은 정책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대신에 현직 혹은 미래의 대통령이라는 특정 인물을 둘러싸고 이전투구 양상으로 벌어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혹자는 이처럼 정치인이 불신 받고 정당이 후진적인 상태에서 내각제를 도입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것은 원인과 결과를 뒤집은 주장이다. 한국의 후진적인 정당 문화는 오랜 제왕적 대통령제 속에서 만들어진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대통령이라는 특정 인물이 중심이 된 정치 체제에서는 인물 중심의 정당이 자리를 잡을 수밖에 없다. 그 대신에 의회에서의 정당 간 경쟁이 중심이 된 내각제에서는 인물 이상으로 이념과 정책의 차별성이 중시되는 방향으로 정당이 발전하기 쉽다. 물론 정치문화가 발전하는 데에는 다른 많은 요소도 영향을 끼치지만 한국 현실에서는 결국 내각제 도입을 통한 대통령제 극복이 근대 정당체제 및 정치문화의 발전에 결정적인 계기가 될 것이다. 

넷째, 정치적 선진화보다 더 근본적으로 중요한 사회문화적 선진화를 위해서도 내각제 도입이 꼭 필요하다는 점이다. 한국사회는 분열과 갈등이 매우 심한 국가다. 이것은 시민들이 직접 경험하고 있을 뿐 아니라 국제적인 여러 지표를 통해서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그런데 사회적 분열과 갈등이 정부형태인 내각제의 도입과 무슨 관계가 있는지 궁금해 할 것이다. 물론 분열과 갈등은 정부형태와 상관없이 현대사회 어디서든지 급증하고 있다. 하지만 양당 체제와 친화성이 있는 대통령제에서는 사회적 분열과 갈등이 정치체제와 맞물려 이분법적이며 극단적인 대립 양상으로 전개되기 쉽다. 이에 비해 다당제가 자리 잡기 쉬운 내각제에서는 소수 세력의 입장도 연립정부 형태로 국정에 반영될 기회가 훨씬 커진다. 그 결과 내각제에서는 대립과 갈등이 비록 다차원적인 양상으로 전개되어 혼란스러워 보이지만 대립과 갈등의 정도가 완화되어 결국 사회적 연대 형성에 훨씬 더 유리하다. 게다가 현대사회는 다원적인 가치관을 특징으로 한다. 그래서 추구하는 목표가 다양하고 사회적 갈등의 양상도 매우 복잡하다. 이런 다원적 가치관과 다차원적인 갈등을 국정에 적절히 반영하려면 다당제의 발전이 필수적인데, 대통령제에서는 다당제가 실질적으로 자리를 잡기 어렵다. 따라서 현대사회의 창의적인 문화발전을 위해서도 대통령제보다 내각제가 훨씬 더 유리하다.

이와 같이 여러 측면에서 볼 때 대통령제보다는 내각제가 훨씬 더 선진적인 형태라고 말할 수 있다. 실제로 내각제가 더 나은 정부형태라고 평가하는 정치학자는 매우 많지만, 대통령제가 더 나은 정부형태라고 명백히 주장하는 학자는 많지 않다. 다만 어떤 형태든 운영을 잘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면서 판단을 보류하는 학자는 많다. 그렇지만 오랜 국가주의 전통을 지닌 작은 영토의 대한민국이 오랜 연방주의 전통을 지닌 대규모 영토의 미국처럼 하는 데는 한계가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그렇다면 한국은 작은 규모의 영토를 가진 선진국의 사례를 실질적으로 참조해야 하는데 이들 국가는 대부분 대통령제를 취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영국의회

정치인들이 내각제를 반대하는 진짜 이유

그런데 대한민국이 내각제를 도입하려면 직면하게 되는 가장 큰 난관은 국민 다수가 지금 내각제보다 대통령제를 훨씬 더 선호한다는 점이다. 이것이 제왕적 대통령제 극복을 위한 논의가 이뤄질 때마다 내각제 도입론을 우선적으로 배제하는 가장 큰 명분이었다. 그리고 다수 국민이 대통령제에 훨씬 더 친숙하기 때문이라고 설명을 덧붙인다.

하지만 내각제가 한국 정치에 아주 낮선 형태는 아니다. 사실 대한민국 정부의 모태라 할 수 있는 상해임시정부는 원래 내각제에 기반을 둔 정부형태를 취했었다. 제1차 개헌을 통해 대통령제로 바뀌었으나 이승만 임시 대통령을 둘러싼 논란 끝에 이승만이 탄핵되면서 대통령제가 내각제로 환원된 바 있다. 그리고 해방 후 대한민국 정부수립을 위한 제헌헌법 초안에서도 본래 내각제가 정부형태로 되어 있었다. 그런데 임시정부 시절부터 미국식 대통령 중심제를 원했던 이승만의 강력한 요구로 결국 대통령 중심제로 수정된 제헌헌법이 1948년에 채택되었던 것이다. 그 후 이승만 대통령은 독재와 장기집권을 꾀한 끝에 4·19 혁명이 발생하여 자리에서 물러나고 말았다. 그러자 제3차 개헌을 통해 드디어 민주당의 내각제 정부가 탄생할 수 있었지만 1년이 채 못 되어 발생한 군부 쿠데타로 내각제가 다시금 대통령제로 되돌아간 후 지금까지 이르고 있다.

이렇게 보면, 현대 대한민국의 정치사는 건국의 다수 주역들이 본래 선호했던 내각제 정부형태가 권력 야욕에 사로잡힌 집단들에 의해 짓밟혀온 역사였다. 박정희 군사정권을 이은 전두환 신군부정권이 1987년 민주화 대투쟁으로 마감하면서 이뤄진 제9차 개헌에서는 당시의 정치 세력들이 대통령 간선제를 직선제로 바꾸어 자신들이 집권하는 데에만 모든 관심이 쏠려 있었다. 그 결과 대통령 직선제가 복구되었으며 이를 통해 군사정권으로부터 문민정권으로의 전환, 여야 간의 평화적 정권 교체 등이 이뤄지면서 절차적 민주주의가 서서히 자리를 잡아갔다. 하지만 대통령제로 인한 권력의 지나친 집중은 여러 가지 심각한 문제를 계속 야기했다. 이것이 박근혜 정부에 이르러서는 대통령의 비선 실세를 통한 권력 농단으로 표출되어 마침내 대통령 탄핵까지 초래되었다.

 

이런 과정을 지켜본 시민들은 촛불혁명 과정에서 단지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만을 요구하지 않았고 보다 근본적으로 제왕적 대통령제의 극복을 강력히 요구했다. 그렇기 때문에 현 대통령제의 개혁은 촛불혁명 이후 새롭게 출범한 문재인 정부에게 부여된 가장 중요한 과제 가운데 하나였다. 뿐만 아니라 이때야말로 대통령제의 폐해를 극복할 수 있었던 절호의 기회였다. 왜냐하면 국민 대다수에게서 현 대통령제의 폐해를 극복할 필요성에 대한 폭넓은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민주당 지도부와 문재인 정부는 대통령제를 선호하여 5년 단임제를 4년 중임제로 바꾸는 방향으로 개헌을 추진하려 했으나 이것도 성공하지 못했다. 당시의 민주당 정부는 20년 집권론 같은 주장을 통해 강력한 권력을 지닌 정부의 권력 유지에 가장 큰 관심이 있음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하지만 이런 주장은 지나치게 강력한 권력을 지닌 정부의 장기집권이 상대방 정치세력을 통해서도 이뤄질 수 있으며 그렇게 되면 민주당이 전혀 원하지 않는 정책이 오랫동안 뿌리내릴 수도 있다는 사실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것이었다. 마땅히 당시의 민주당 정부는 어느 정부든지 권력을 지나치게 독점해서 장기 집권하지 못하게 하는 방향으로 노력을 기울였어야 했다.

결국 대한민국에서 강력한 권력을 지닌 대통령제의 유지를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일반 국민이라기보다는 권력을 소유하거나 거기에 동참하고 싶은 정치인들임을 알 수 있다. 이들이 국민을 내세워 어떻게든 대통령제를 유지하려는 것이다. 물론 국회의원 중에는 내각제를 선호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고 한다. 하지만 특히 두 거대 정당의 경우는 지도부가 대통령제를 분명히 원하기 때문에 일반 국회의원 개인의 의견이 반영되기 어렵다. 이에 비해 정의당 같은 소수 정당에게는 다당제가 자리 잡기 쉬운 내각제가 최상의 선택지인 것이 분명하다. 

 

내각제에 대한 편견과 극복 방안

지금 대한민국의 다수 정치인에게는 내각제가 왠지 많이 낯선 것이 사실이다. 게다가 정치 담론에 큰 영향을 끼치는 정치학자의 절대 다수도 대통령제 국가에서만 지내느라 내각제를 직접 경험할 기회를 별로 갖지 못했다. 더구나 한국은 오랫동안 강한 국가주의 전통이 이어져 온 나라다. 이런 이유들 때문에 많은 정치인, 학자, 여론 주도층이 실질적으로 내각제를 낯설어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이들이 일반 시민에게 내각제에 대한 바른 정보를 충분히 제공하기보다는 잘못된 편견을 심어주는 경우가 많다. 그 대표적인 편견이 내각제에서는 다당제로 인해 국정 불안이 야기되기 쉽다는 것이다. 그리고 분단 상황 같은 위기관리 국면에서는 강력한 리더십이 필요한데 이 점에서 내각제가 불안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내각제에도 내각 구성 절차를 둘러싼 다양한 방식이 존재한다. 이런 방식에 따라 국정이 상대적으로 혼란스런 내각제 국가가 있는 반면에 오랫동안 국정을 안정적으로 유지해온 국가도 많다. 그리고 우리처럼 분단체제를 경험한 독일은 내각제라는 이유로 위기관리에 어려움을 겪은 적이 없다. 오히려 독일이 분단체제를 극복하고 통일을 이룩하는 데 독일 정치체제가 큰 역할을 한 것은 널리 잘 알려져 있다. 예를 들면, 통일 당시의 외무부 장관은 한스 디트리히 겐셔였다. 그는 소수당인 자유당 소속으로 양대 정당인 기민당과의 연립정부에서도 그리고 사민당과의 연립정부에서도 외무부 장관을 역임한 독일 최장수 외무부 장관이었다. 그런데 아무도 예상하지 못 했던 통일의 기회가 독일에게 주어지자 그는 외교무대에서 그동안 쌓아온 노하우와 자산을 바탕으로 국제관계를 독일통일에 유리하게 만드는 데 큰 기여를 했다. 그래서 그는 오늘날 독일 통일의 주역으로 일컬어지고 있는데 그의 이런 전문성은 내각제에서나 가능한 결과였다. 또한 현재 러시아와 매우 어려운 전쟁을 치르고 있는 우크라이나는 이원정부제를 취하고 있는 국가다. 이처럼 우크라이나가 비록 순수한 내각책임제는 아니지만 대통령 중심제를 취하고 있지 않다고 해서 전쟁 상황에서 큰 문제가 된다는 지적은 별로 듣지 못하고 있다.

어쨌든 일반 국민에게 널리 퍼져 있는 내각제에 대한 이런 편견을 걷어내고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서는 학계, 언론계, 시민사회단체 등의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그런데 내년 총선 같은 선거 국면에서 내각제 개헌 이슈가 부각되면 일반 국민에게서 내각제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또한 적절한 정보를 제공하는 데 아주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물론 내각제 개헌 이슈를 부각시키는 데 거대 양당이 앞장설 가능성은 거의 없다. 그러므로 정의당 같은 소수 정당이나 국민에게 새로운 정치 비전을 호소하려는 새로운 정치 세력이 내각제 이슈를 적극 제기하면 거대 양당에게도 큰 영향을 끼칠 것이다. 하지만 더욱 바람직한 것은 국회가 현재 선거제도 개편을 위해 접근하는 방식처럼 정부형태의 선진화를 위해 초당적인 접근으로 대안을 마련하는 것이다. 다행히 현 김진표 국회의장은 개헌의 필요성을 매우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개헌 자체를 목적으로 단기적인 관점에서 접근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정부형태 개헌은 자주 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번 개헌은 정부형태의 선진화 의제에만 국한하더라도 국회가 심도 있는 논의를 통해 근본적인 개혁 방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대통령 5년 단임제를 4년 중임제로 바꾸는 정도의 개헌은 결코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 그것은 대통령의 제왕적 권력을 오히려 5년에서 8년으로 연장시키는 것에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독일 의회

대한민국 정치 발전의 역사에서 권위주의 정권을 민주정권으로 전환시키는 것과 평화적인 정권 교체를 이룩하는 것이 지나간 시대의 중요한 과제였다면 지금은 중앙정부, 특히 대통령에게 집중된 권력의 분산이라는 분권화가 시급히 이뤄야 할 시대적 과제다. 이를 위해서는 실질적인 지방자치의 실현과 대통령중심제의 극복이 매우 중요한데 대한민국에서는 실질적인 지방자치를 위해서도 대통령중심제의 극복이 매우 시급하다.

그런데 내각제 도입을 위해서는 해결해야 할 또 하나의 과제가 있다. 그것은 일반 국민이 국정 책임자를 직접 선출하고 싶은 욕구와 관련되어 있다. 내각제의 총리는 국회에서 선출되므로 일반 국민의 이런 욕구를 충족시킬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국민이 직접 선출하는 대통령직이 요구된다. 이렇게 해서 나오는 타협안이 프랑스가 채택한 이원정부제 같은 것이다. 그런데 이원정부제의 경우 총리와 대통령의 정치적 입장이나 배경 차이로 인한 긴장과 갈등이 심각하게 문제될 수 있다. 그래서 보다 바람직한 방안은 상징적인 국가 수장으로서의 대통령을 국민이 직접 선출하는 것이다. 독일 대통령은 비록 국민이 직접 선출하지는 않지만 상징적인 국가 수장으로서 특히 사회통합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수행해왔다. 독일 대통령은 정치인 출신이지만 정치적 색깔이 비교적 옅어서 야당에게도 거부감이 적은 비교적 존경 받는 인물 가운데 선출된다. 필자는 국가적 양심의 수호자로 불리곤 했던 리하르트 폰 바이체커 독일 대통령을 기억한다. 역사학자들은 그가 1984년 대통령으로 선출된 이후 독일 정부의 도덕적 위상이 크게 향상되었다고 평가한다. 이처럼 현실의 권력 정치와 행정부 수반 역할은 국회에서 선출되는 총리에게 맡기고 그 대신 국가의 정신적인 지도자 역할을 할 수 있는 대통령을 국민이 직접 선출한다면 일반 국민의 욕구도 어느 정도 충족시킬 뿐 아니라 현실 정치인인 총리가 할 수 없는 역할을 대통령이 채워줄 수 있다. 

사회적 분열과 갈등이 특히 심한 한국사회는 앞으로도 대통령 중심제를 계속 유지하는 한 분열과 갈등의 해소가 쉽지 않을 것이다. 반면에, 복잡한 정치적 이해관계로 엮인 현실 정치는 총리에게 맡기되, 여야가 함께 어느 정도 동의할 수 있으면서 사회통합에 충분히 기여할 수 있는 인물이 대통령직을 맡아 수행한다면 한국사회의 실질적인 선진화를 앞당기는 지름길이 될 것이다.


강수택 경상국립대 명예교수·사회학

경상국립대 사회학과 명예교수. 독일 빌레펠트 대학교에서 학위를 취득했으며 사회 이론과 사상을 전공하고 있다. 그동안 『팬데믹, 사회분열, 연대』, 『환경과 연대 –생태연대주의 사상과 정책』, 『일상생활의 패러다임』, 『다시 지식인을 묻는다』, 『연대주의』 등 여러 권의 책을 집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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