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세대 김대중도서관, 1973년 김지하가 망명 중인 김대중에게 보낸 편지 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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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대 김대중도서관, 1973년 김지하가 망명 중인 김대중에게 보낸 편지 공개
  • 고현석 기자
  • 승인 2023.05.02 13: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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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대학교 김대중도서관은 5월 8일 김지하 시인 1주기를 맞아 1973년 6월 유신정권 초기에 김지하 시인이 망명 중인 김대중에게 보낸 편지를 공개한다.

1972년 10월 17일 유신 선포 당시 일본에 있던 김대중은 망명 투쟁을 선언하며 미국과 일본을 오가면서 반유신 운동을 전개하고 있었다. 당시 김대중은 미국, 일본의 주요 정치인, 한인들과 접촉하면서 유신정권을 압박하고 있었고, 이희호 여사 등 국내 인사들과도 소통하면서 국내 동향을 살피고 반유신 운동 전략을 모색하고 있었다. 당시에는 도청 때문에 내밀한 이야기는 편지를 인편으로 주고받는 방식으로 이뤄졌으며, 감시 및 수색으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운 외국인이 그 역할을 했다. 

공개된 편지는 가이가 여사(미국인으로 추정, 영문 스펠링은 Geiger 혹은 Geigar)가 함석헌, 박형규의 편지와 함께 당시 미국에 있던 김대중에게 전달한 것이다. 인편으로 전달된 것이므로 편지 봉투에는 우표 등이 없으며 함석헌, 김지하, 박형규의 영문 이니셜 S.H.H, C.H.K, H.K.P가 수기로 적혀 있다.

김대중은 1973년 봄에 이 세 명에게 먼저 편지를 보냈고, 모두 1973년 6월 답장을 썼다. 김대중이 국내로 보낸 편지는 현재 남아 있지 않지만, 다행히 세 사람이 당시 미국에 있던 김대중에게 보낸 편지는 미국 망명 시기 김대중의 비서실장 역할을 한 이근팔이 잘 관리하고 있다가 연세대 김대중도서관에 기증했다. 김대중도서관은 최근 이 자료를 발견하고 여러 확인 작업을 거쳐 5월 2일 공개했다. 이 편지는 200자 원고지 총 6장에 작성됐으나, 4번째 장은 현재 전해지지 않아 총 5장만 공개하게 됐다. 

공개한 편지는 유신정권 초기 한국 민주화운동의 전개 과정을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가치가 있다. 김대중과 김지하는 잘 아는 사이였다. 1973년 4월 미국에서 발간된 김지하의 시집 ‘오적과 비어’에 김대중이 추천사를 쓰기도 했고, 추천사에는 유신 선포 직전 동교동 자택에서 두 사람이 하루를 같이 보내면서 나눈 이야기가 나오기도 한다. 김대중과 김지하는 유신정권 시절 한국 민주화와 인권의 상징으로 국제적으로 널리 알려졌던 인물들로, 이들이 유신정권 초기 반유신 투쟁을 위한 논의를 진행했다는 사실이 이 사료를 통해 확인된다. 

김대중은 미국과 일본을 오가며 반유신민주화 국제연대 구축을 위해 노력했고 큰 성과를 거두고 있었다. 이와 동시에 국내 민주세력과 소통하면서 연대투쟁을 모색했다는 사실이 이 사료를 통해 새롭게 확인됐다. 또한 그 대상이 모두 재야인사라는 점도 흥미로운 포인트다. 김대중이 이때부터 재야인사들과의 연대를 강화해 반독재 민주세력의 총 연합을 추구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공개된 편지 내용을 살펴보면, 김대중은 자신의 해외 활동을 소개하고 성과를 거두고 있다고 알린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김지하는 김대중의 활동 방향에 동감을 표시하면서 국내 동향을 전하고 있다. 특히 “최소한 올가을 유엔총회 전후한 시기엔 군중행동의 제1파를 일으킬 작정입니다. 힘이 닿는한 각계층의 연합을 시도할 것입니다. 그쪽에서의 행동도 타이밍을 맞추는 것이 필요합니다”라는 표현은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다.

김지하는 민중 시위가 나올 수 있도록 역할을 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계엄령 선포와 함께 시작된 유신 체제 초기, 국내에서는 박정희 정권에 대한 각종 저항운동이 숨을 죽이게 된다. 그런 상황에서 김지하는 1973년 5월 20일 나온 ‘한국 그리스도인 선언’을 시작으로 반유신 투쟁이 서서히 본격화될 것이라고 설명하면서 이보다 진전된 형태의 군중집회가 나올 수 있도록 준비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그리고 이것을 김대중의 활동과 연계해 접근하고 있다. 또한, 김지하가 쓴 ‘각 계층의 연합’이라는 표현은 민주화운동 시기 김대중의 민주화 이행 전략인 반독재 민주총연합노선과 일치하는 정치적 견해이다. 그렇게 볼 때 이 시기 김대중과 김지하는 민주화 투쟁 전략에 있어서도 비슷한 입장을 갖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편지 내용】

김대중 선생께

보내주신 편지 뜨거운 마음으로 받아 읽었읍니다. 부탁하신 분들께 모두 선생의 뜻을 전했읍니다. 그쪽에서의 선생의 활동, 우리에게 퍽 고무적이고 또 제가 늘 바라는 바대로입니다. 특히 교포들의 현정권관의 급속한 변화는 매우 중요한 영향을 앞으로의 운동에 미칠 것으로 생각됩니다. 오월 20일자로 ‘한국 그리스도인 선언’이 나왔읍니다. 본격적인 반박 운동의 신호탄으로 생각되는데 곧 지주교의 힘이 그쪽에 합세할 것입니다. 최소한 올가을 유엔총회 전후한 시기엔 군중행동의 제1파를 일으킬 작정입니다. 힘이 닿는한 각계층의 연합을 시도할 것입니다. 그쪽에서의 행동도 타이밍을 맞추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길이 있는대로 광주와 목포 등지의 양김기반을 상기한 움직임에 가세토록 힘을 넣어주십시오.

고대 김낙중 교수와 몇몇 노동운동하는 친구들이 스파이사건조작에 걸려들어갔읍니다. 전혀 날조이고 증거불충분으로 검찰에서 아직도 공표를 못 (중략 : 4번째 장은 현전하지 않음) 접촉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지주교에 대한 미일측의 지지를 강화해주십시오. 

빌리 그라함의 부흥회로 박에 대한 세계여론이 주춤할 기미가 있으니 반박 프로파를 강화하십시요. 빌리의 경우 부흥회 주최와 참가자를 사전 조사했으며 군중집회가 폭동으로 발전할 것을 두려워해서 박이 빌리를 맞아 융숭한 대접을 했으며 현장에는 서울의 전 경찰기동력을 집결시켰읍니다. 자유로운 나라라는 인상을 주기위한 조작입니다. 

지주교의 인사를 대신 전합니다. 지주교는 죽을 각오를 했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건투를 빕니다.  

6월 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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