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보다 과학이 앞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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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보다 과학이 앞서야 한다
  • 민경찬 논설고문/연세대 명예특임교수, 과실연 명예대표
  • 승인 2020.03.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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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경찬 칼럼]

매년 3월이면 학교는 신입생들의 부푼 기대로 가득차고, 일반인들도 푸릇푸릇 새싹이 움트는 봄을 느끼며 발걸음에 활기가 찾아든다. 봄의 따스한 햇살, 개나리, 목련, 진달래, 철쭉 등의 봄의 꽃향기는 수십 년간 당연히 이때면 즐기던 일상들이다. 이러한 모습들이 얼마나 큰 축복이었는지, 이를 그립게 하는 2020년 봄이다.   

지금 전 세계에는 작년 말 중국에서 나타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병(코로나 19) 팬데믹 사태로 불안, 공포가 짙어지고 있다. 우리나라는 지난 1월 구정을 지내며 이 사태를 심각하게 받아들였고, 현재 우리 국민 모두는 하루하루 불안과 긴장 가운데 스스로 사회적 거리두기에 동참하는 등 언론보도에서 전하는 기본 수칙에 충실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국민들은 매순간 전혀 보이지 않는 적을 피하려니 종잡기 어렵고, 처음 당하는 일이라 우왕좌왕하기도 한다. 그래도 우리에게 희망을 주는 것은, 질병관리본부의 차분한 대응과 대구의 급박한 상황에 사명감에 달려간 노년의 의사, 초임 간호장교들을 포함한 의료진이 방호복을 입고 최전선에서 눈물겹게 ‘사투’를 벌이는 모습이다. 전염성이 매우 강한 이 바이러스는 그동안 경험하지 못한 사례이기에, 정부와 전문가에 대한 신뢰 외에는 기댈 데가 없다.

특히 이 ‘바이러스’는 생명 현상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므로, 이에 대한 예방, 처방과 치유는 철저하게 과학의 관점에서 풀어가야 한다. 국민들이 정부와 전문가에게 기대하는 신뢰 구축을 위해서는 과학적 전문성이 핵심이어야 하며, 공신력 있는 관련 연구 집단, 전문 학회 및 단체들의 협업적 역할, 그리고 이들의 글로벌 네트워크도 중요하다. 

그런데 많은 사람이 걱정하고 혼란스러워하는 점은 ‘과학’보다 ‘정치’가 앞장서고 있다는 점이다. 과학적 전문성 관련 이야기도 정치인들이 전면에 나서는 일이다. 심각한 문제는 정치인들이 전문가 의견을 경청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 과정에 정부 기관 간, 정부와 정당, 지자체간 메시지가 일치하지 않고 일관성도 없었다. 전담부처 장관은 현장 및 국민 정서와는 사뭇 다른 이야기를 함으로써 계속 비판 받고 있다. 정부에 대한 평가, 4월 총선, 주변 국가와의 관계 등에 얽힌 정치적인 의도들도 엿보인다.

지난 2월 중순 국가 지도자의 '머지않아 종식될 것'이라는 성급한 낙관론 이후 바로 대구·경북 지역에서 확진자가 급증했다. 지난 9일 신규 확진자가 200명대로 감소되자마자, 청와대, 정부⋅여당의 ‘급속 확산이 주춤해졌다’는 말에 ‘조만간 변곡점’이라는 헤드라인이 떴는데, 바로 ‘구로 콜센터’ 사태로 지역감염 확산 위기가 찾아왔다.

2월에 보건용 마스크 착용을 권하다가, 마스크 대란이 나자, 3월 들어 정부가 갑자기 보건용 마스크를 쓸 필요 없다고 홍보하며, 면 마스크 사용과 마스크 재사용을 언급했다. 지역사회 감염 확산 우려로, 지금도 전문가 그룹에서는 건강한 일반인도 보건용 마스크를 착용해야 함을 강조하고, 면 마스크와 재사용은 권고하지 않는다. 국민들은 지금도 마스크 착용에 대해 혼란스럽고, 마스크 두 장 구하기조차 힘들다.

2월초부터 전문가들은 정부에 중국 전역은 물론 제3국으로부터의 입국도 강력히 제한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지난 달 중국인 입국자 수가 11만 명에 육박했다. '중국의 아픔이 우리의 아픔'이라며, 빗장을 열어놨지만, 중국은 예고 없이 한국인 입국자를 격리 조치했다. 중국의 입장은 ‘외교보다 방역이 더 중요하다’며, 타국의 중국인 입국제한도 이해한다고 했다.

전 세계는 팬데믹 상황이라 갈수록 국경의 문을 더 걸어 잠그고 있어, 15일 현재 한국 발 입국자 제한국가는 136개국, 입국금지는 67개국이다. 현재 가장 고위험 국가 중의 하나인 우리나라는 아직도 총 11개 국가에 대해 특별입국절차를 시행하는 것뿐이다. 세계적인 모범사례와 표준을 만들어보려고, 자국민의 생명을 담보로 삼는 일이 아니기를 바란다. 시행착오를 범해서는 절대 안 된다는 정신이어야 한다. 

이제라도 정치보다 과학을 우선시해야 한다. ‘본질’에 충실해야 ‘효과’가 나온다. 과학적 논리와 방법보다 정치가 압도하는 정책은 후진적이다. 정부와 전문가들은 질병관리본부를 중심으로 과학적 사고와 판단 그리고 협업을 중시하며, ‘한 생명’ 살리는 것을 우선시하여 국민에게 신뢰와 희망을 보여주어야 한다. ‘사람이 먼저’이어야 하며, ‘국민 중심’, ‘전문가 중심’ 사회이어야 한다.

국민들은 하루 빨리 그동안 즐기던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으며, 오늘의 위기를 지혜롭게 대처하는 모습을 다음 세대에 넘겨주게 되기를 바랄 것이다. 미래 대한민국 생존이 달린 우리 세대의 사명이다. 언론에 선진국처럼 정치인보다 과학자, 전문가들이 더 자주 보이기 바란다.


민경찬 논설고문/연세대 명예특임교수, 과실연 명예대표

연세대 수학과 명예특임교수로 대한수학회 회장, 교육과학기술부 정책자문위원장, 국가과학기술자문위원회 과학기술분과 의장, 국무총리 소속 인사혁신추진위원회 민간위원장 등을 역임했다. 현재 국가인재경영연구원 이사장, 기초과학연구원(IBS) 과학자문위원회(SAB) 위원장 등으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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