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트(Lied)…혼연일체가 된 독일의 시, 음악, 그리고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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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트(Lied)…혼연일체가 된 독일의 시, 음악, 그리고 삶
  • 김희열 제주대학교 명예교수·독문학
  • 승인 2023.04.30 1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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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말하다_ 『리트 이야기: 독일 가곡과 악극, 시와 음악과 삶이 빚어낸 혼연일체의 예술』 (김희열 지음, 한울, 360쪽, 2023.03)

 

글쓴이는 독문학을 전공으로 한 지 수십 년이 지난 후에야 비로소 ‘리트Lied’(독일 가곡과 서사 오페라)에 본격적으로 관심을 가졌다. 그 계기는 평론가가 문학 작품을 분석해 언어로 표현하듯, 음악가는 그것을 음으로 표현하고 있음을 깨달으면서, 가곡과 서사 오페라는 문학을 수용하는 또는 재창조하는 또 다른 관점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런 배경에서 이번에 선보인 『리트 이야기 – 독일 가곡과 악극, 시와 음악과 삶이 빚어낸 혼연일체의 예술』(이하 『리트 이야기Geschichte des Liedes』)은 리트가 어떻게 생겨났으며 어떠한 발달 과정을 거쳐서 19세기 서정 예술가곡과 서사 오페라로 찬란하게 유럽에서 꽃피었는가를 이야기하고 있다. 

‘리트’는 중세까지는 주로 찬양가의 의미로 통용되다가 특히 18세기를 거쳐 19세기로 오면서는 문학과 음악의 만남 또는 시와 음의 일치 단계로 전개되어 주로 음악적 의미로 정착되었다. 독일의 시인들인 괴테, 실러, 하이네, 아이헨도르프, 뤼케르트, 뫼리케 등의 시문학은 음악사에서 한 획을 긋는 뛰어난 여러 작곡가에 의해서 음이 붙여지면서 완전히 새로운 제3의 음악 장르인 독일 가곡, 즉 서정 예술가곡으로 재탄생했다. 그러니까 리트는 시도 아니고, 음악만도 아닌 이 둘의 혼연일체인 것이다. 이에 비해서 서사 오페라인 악극은 유일하게 바그너에 의해서 구현되었고, 그는 문학 창작과 작곡을 동시에 함으로써 시와 음의 일치를 이루었고 음악사에서 독보적 존재가 되었다. 

『리트 이야기』는 리트와 관련된 시인과 음악가 이야기를 곁들이면서 크게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첫째 부분은 정치·사회적, 역사·문화적, 문학·예술적 배경을 중심으로 리트가 어떻게 발달해왔으며 전개되었는지를 다루었다. 둘째는 바그너가 그의 서사 오페라를 통해서 어떻게 중세 영웅서사시를 문학적으로 재구성하면서 시와 음의 일치를 이루고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셋째 부분은 시와 음악의 만남이라는 리트의 고전적 관점에서 독일 낭만주의 서정 가곡을 다루고 있다. 아울러 이 세 가지로 나뉜 내용을 독자는 자신의 관심과 취향에 따라 순서를 달리해서 읽을 수도 있고 혹은 관심 있는 부분만 읽을 수도 있다.

만약 독자가 첫째 부분에 관심이 있다면, 무엇보다 리트가 무엇인지, 리트의 발전과정 및 낭만주의 독일 가곡에 영향을 끼친 역사적, 정신·문화사적 배경을 흥미롭게 읽어볼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개인적 관심과 흥미를 더 확대하고자 한다면 고대 그리스·로마 문화와 역사, 중세 및 르네상스, 휴머니즘과 종교개혁, 바로크, 계몽주의, 고전주의, 낭만주의, 사실주의를 거쳐 20세기까지의 정신·문화사적 흐름과 경향, 그리고 이와 관련된 인물들로 넘어가면 될 것이다. 혹은 독자가 둘째 부분을 먼저 읽거나 이것만 읽고자 할 때 거둘 수 있는 피드백은 무엇보다도 바그너라는 인간적 약점이 많은 낭만적 작곡가와 그의 뛰어난 서사 오페라를 이해하게 된다는 점이다. 여기서 다룬 바그너의 서사 오페라의 두 작품, 『니벨룽의 반지』(4부작: <라인의 황금>, <발퀴레>, <지그프리트>, <신들의 황혼>)과 『트리스탄과 이졸데』를 흥미롭게 읽었다면, 그의 다른 작품들로 관심을 확대해 나갈 수 있다. 

마지막으로 이 책의 세 번째 부분은 리트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서정 가곡, 특히 19세기 낭만주의 독일 가곡 중에서 슈베르트를 시작으로 슈만, 클라라 슈만, 브람스, 볼프, 말러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가곡들을 다루고 있다. 먼저 책을 읽기 전에 곡명만 참고해서 유튜브에서 곡을 찾아 직접 두세 번 들어보고, 그 느낌을 스스로 되새겨볼 때 일차적 관심과 흥미가 생길 것이다. 이것은 저자가 맨 처음 서정 가곡을 경험할 때 취했던 방법이었으며, 결과적으로 가곡을 듣던 청자에서 적극적으로 가곡에 대한 글쓰기로 넘어가게 하는 관심과 흥미를 일깨웠던 원동력이기도 했다. 그런데 격세지감이 드는 것은 저자가 가곡을 주로 듣던 시절에는 CD를 사서 들어야 했고, 독일에서 그것을 구해야 하는 일도 빈번하였다. 반면 오늘날은 거의 모든 가곡을 유튜브에서 들을 수 있게 되어 참 편리해졌다.

음악, 독일 문학, 유럽 문화, 인문학 어느 쪽에라도 관심이 있는 독자가 이 책의 어느 부분에서라도 관심과 흥미를 발견해서 나름대로 그 지식을 심화시켜 재미를 증폭시킬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이다. 그러면 이 책은 그 길라잡이로서의 가치가 충분할 것이고, 저자가 던지고, 독자가 받고 거기에 지식을 더 보태서 독자의 정신세계가 풍요로워진다면 저자와 독자의 완벽한 협업이 이뤄지는 것이 된다. 더 나아가 그 협업이 공개의 장을 펼칠 수 있다면 마치 시만도 아니고 음악만도 아니라, 그 둘의 결합으로 음악사에서 리트라는 위대한 장르가 탄생한 것처럼 새로운 앎의 지평을 열 수 있을 것이다.


김희열 제주대학교 명예교수·독문학

제주대학교 독일학과 명예교수. 독일 괴팅겐, 본, 뮌스터, 프라이부르크 및 오스트리아 빈 대학교에서 객원 연구교수 및 강의 교수를 역임했다. 주요 저서로는 국내에서 출간된 『가곡으로 되살아난 독일 서정시』(2권)가 있고, 독일어 저서로는 『한국사Koreanische Geschichte - 선사시대로부터 현대까지』가 있으며, 독일어 역서로는 이문열, 최인훈, 이청준, 박완서와 여류작가, 현길언의 작품을 각각 2인 공동번역으로 독일에서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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