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 이후 독일사의 숨은 동인, 감정…시대가 낳되 시대를 움직이다
상태바
근대 이후 독일사의 숨은 동인, 감정…시대가 낳되 시대를 움직이다
  • 김학이 동아대학교·서양사
  • 승인 2023.04.30 19:3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나의 책을 말한다_ 『감정의 역사: 루터의 신성한 공포에서 나치의 차분한 열광까지』 (김학이 지음, 푸른역사, 528쪽, 2023.03)

 

저자가 “나의 책을 말한다”에 쓸 내용은 두 가지일 것 같다. 책에서 유장하게 전개한 서사를 간단명료한 주장으로 압축하는 것이 하나요, 책에서 다 하지 못한 말을 일부라도 하는 것이 다른 하나일 것이다. 내가 ‘감정의 역사’를 책의 분량으로 써야겠다고 마음먹은 시점은 약 8년 전이다. 지금이나 그때나 나는 감정 관리의 실패로 인하여 직업 활동과 사생활 모두에서 심각한 문제에 시달리고 있었다. 이 책은 그렇게 개인적인 문제 상황에서 출발했다. 그러나 나는 확신했다. 내가 감정 때문에 이렇게 힘들다면, 그것은 감정 문제가 한국 사회를 관통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역사학이 언제나 그렇듯, 이 책도 현재적인 관심에서 출발했다.

한국의 서양사학자는 이중의 과제에 직면한다. 자신의 관심이 투영된 개인적인 연구를 수행하는 동시에 서양 역사학계의 동향을 소개하거나 반영해야 한다. 나의 이번 연구도 그러해야 했다. 에피소드가 하나 있다. 미국의 명문 대학에서 서양사를 가르치고 있고 국제적으로도 널리 인정받는 한국 대학 사학과 출신의 역사학자 한 분이 최근에 한국에 오셨다. 그분이 제자 및 후배들과 함께 하던 자리에서 내 책 이야기가 나왔나보다. 그 말을 듣자마자 그분이 말했다고 한다. “아 감정사. 그거 요즘 핫하지.” 

그 핫한 서양 역사학계의 감정사 연구는 역사 속의 ‘감정 레짐’을 재구성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구글에서 “인권 레짐”을 검색하면 금방 알 수 있듯이, 레짐은 담론과 제도와 실천을 종합한 개념이다. 철학, 사회학, 인류학, 정치학의 감정 논의를 일단 논외로 하면, 한국에서 감정은 생물학적인 뇌과학 연구와 생태학적인 정동 연구로 진행되고 있다. 두 연구 모두 진리라기보다 하나의 ‘설명’이라는 것은 말할 나위도 없다. 나는 그 동향에 감정 레짐의 역사를 추가하면 한국의 감정 논의가 보다 풍부해지리라고 생각했다.

역사학은 언제나 현재적 관심에서 출발하지만, 역사학이 현재에게 보여주는 과거(historiography)는 현재와는 다른 고유한 과거여야 한다고 나는 믿는다. 전근대 및 근대 초와 19세기 이후가 선명히 달라야 하고, 보다 낫기로는 근대 초와 19세기 이후에도 세기별로 차이점이 부각되어야 한다. 무척 힘들었다. 몇 년을 허깨비처럼 이것저것 읽고 다녔다. 그러다가 17세기 30년 전쟁(1618년~1648년) 동안 작성된 일기들을 만났다. 그 일기에는 오늘날은 물론 19세기와도 전혀 다른 감정 레짐이 펼쳐져 있었다.

지역에 따라 인구의 60~70%를 앗아간 30년 전쟁을 겪은 독일인들이 놀랍게도 슬픔, 공포, 분노, 증오라는 단어를 일기에 아예 적지도 않았다. 자식 열 명을 낳아서 일곱을 잃은 농촌 수공업자나 자식 열을 얻어서 여덟을 잃은 용병 병사나 똑같았다. 어찌된 일이었을까? 16세기로 거슬러 올라가서 찾아본 성직자들과 의학자들의 감정 담론에서 답을 발견했다. 당시의 도덕 담론이 기독교에서 언제나 터부시되던 증오는 말할 나위도 없거니와 공포와 분노와 슬픔을 금지하고 있었다. 당시 추구된 감정은 신에 대한 공포, 그리고 그것을 경유하여 발생하는 신의 사랑과 그에 대한 신뢰였다. 

                                  30년 전쟁
                                  30년 전쟁

그러나 그 감정 레짐은 30년 전쟁 와중의 감정 실천에 의해 붕괴되고 있었다. 하필이면 도시귀족에 속하는 한 궁정인(courtier)의 전쟁 일기에 공포와 슬픔과 분노가 너무나 맹렬하게 기록되어 있었다. 감정이 해방되고 있다는 증거였다. 그러나 서양은 해방된 감정과 함께 근대로 직행하지 않았다. 17/18세기의 독일 종교개혁 운동인 경건주의와 18세기 중반의 감성주의 문학은 인간을 그야말로 감정 범벅으로 표상하면서도 그 감정이 절제된 ‘부드러운 다정함’이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해방된 감정을 재규율화 하는 작업이고 규율화는 말할 나위도 없이 권력의 작동이니, 30년 전쟁 속에서 해방된 감정에 지배체제가 올라탄 것이다. 다만 18세기 중반 경건주의 목사의 일기에 나타난 바, 다정함을 실현하려다 실패하는 양상은 그에 대한 끝없는 내적인 반성을 이끌었고 그렇게 주체와 주체의 감정을 깊이 내면화시키고 있었다.

19세기 중반부터 활동한 기업가 베르너 폰 지멘스의 편지와 회고록은 19세기 부르주아 문명의 대표 감정이 정치와 사회는 말할 것도 없고 가정과 기업에서도 신뢰, 충성, 명예였다는 점을 보여주었다. 이는 선행 연구에서 많이 강조된 것이기도 했다. 다만 필자는 프랑스 사회학자 뤽 볼탕스키의 이론을 이용함으로써 내면화된 그 감정들이 기업의 생산요소로 작동하는 동시에 자본주의를 정당화하는 수단이었다고 재해석할 수 있었다.

필자는 또한 베르너 지멘스가 1892년 죽기 직전에 발간한 회고록에서 묘한 것을 발견했다. 그는 사적인 편지에서 자주 발화하던 ‘행복’이라는 개념을 공적인 회고록에서는 버리고 그 대신 ‘기쁨’을 사용했고, 그때 기쁨이 거의 언제나 인간의 행위 및 성취와 연관되어 있었다. 기업이 대형화, 기계화, 관료화된 그 시점에 “노동의 기쁨”이 부각되고 노동자가 처한 상황이 “노동의 탈영혼화”로 정리되었던 것이다. 1900년을 넘기면서 그것들은 슬로건으로 고양되고 노동심리학과 경영학과 노동사회학이 일제히 그에 대해 논의했다. 노동의 기쁨이 생산성을 강화하는 동시에 노동자의 창조성을 발휘하도록 하는, 다시 말해서 기업 활동을 도덕적으로 정당화하는 핵심 기제로 제시되었던 것이다. 독일 기업은 그때부터 오늘날까지 노동의 기쁨을 논의하고 있다.

 

                                               나치 노동전선 기쁨의 힘 크루즈 여행

나치는 그 부르주아적 감정들을 나치 특유의 공동체적 관계에 기입했다. 사실 나치에게는 모든 활동과 조직이 도덕적이고 공동체적이었다. 스포츠클럽도 패키지여행도 문화기행도 마찬가지였다. 의당 기업도 도덕공동체여야 했다. 나치 노동법 법조문이 노동자의 권리가 아니라 신뢰, 충성, 명예 감정으로 채워진 것은 바로 그 때문이었다. 노동법상의 실천을 보면 그 주장이 말만으로 그치지 않았다는 것도 알 수 있다. 나치는 그러한 감정 실천이 노동의 기쁨을 생산해낼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나치가 산업 합리화와 전쟁 준비에 본격적으로 나서는 1930년대 중후반에 감정 레짐에 상당한 변화가 발생했다. 필자는 그 시기의 노동담론, 지멘스 사내 심리학 교본, 나치 노동법원 판결문에서 열광이 아니라 ‘차분함’이 강조되는 양상을 발견했고, 당시의 베스트셀러 소설에서 차분함의 이면이 공포라는 것도 발견했다. 그것은 노동 현실에도 부합했을 것이다. 산업 합리화란 연속생산이요, 연속생산이 요구하는 것은 차분함이었고, 기업으로 침투한 나치와 관료화된 자본에 대면하여 노동자는 현실에서 공포를 느꼈을 것이다. 

 

                                                                나치 군수공장

전쟁 동안 독일인들이 저지른 동유럽인들에 대한 약탈과 학살, 홀로코스트, 그리고 영국과 미국 공군기의 막대한 폭격에 직면하여 독일인들에게 요구된 감정 역시 차분함이었고, 그것들 모두가 공포를 유발했다. 그 감정문화는 ‘포스트워’ 시기의 독일로 이어졌다. 자본, 냉전, 핵무기는 모두 차분함을 규범화하는 한편 공포를 유발했다. 다만 맥락이 바뀌자 감정의 기능이 달라졌다. 차분함은 테일러포디즘의 노동 감정이었지만, 동시에 그 감정은 독일인들이 전쟁범죄를 내적으로 억압하고 침묵하는 데도 용이했다. 

그 감정문화를 뒤집은 것이 68운동이었다. 68운동은 공포와 차가움을 자본주의의 생산물이자 지배 수단으로 적시하면서, 그 자본주의에 대한 저항이자 새로운 사회의 중핵으로 ‘진정성’과 ‘따스함’과 ‘공감’을 내세웠다. 그러나 다른 한편 뤽 볼탕스키가 강조한 것처럼 기업들은 68운동의 주장에 반응하면서, 그러나 최근의 연구가 보여주듯이 68운동과 별개로 1950년대~1980년대에 노동관계에서 따스함과 부드러움을 강조하고 또 실천했다. 그리고 그것이 ‘노동의 기쁨’을 생산하는 통로로 부각되었다. 그 감정 레짐이 구체화된 양상 중의 하나가 오늘날 우리에게도 익숙한 ‘팀 작업’이다. 이번에도 지배 권력이 해방된 감정에 올라탄 것이다.

감정의 역사는 오늘 우리의 감정을 정당화해주지 않는다. 그 역사는 오늘 우리의 감정 레짐이 우리 시대의 독특함일 뿐이라고 말해준다. 감정의 역사는 오늘날 과학과 의학과 학문의 이름으로 제시되는 온갖 감정과 관련된 처방들이 지배질서 및 권력관계와 직간접으로 연결된다고 강하게 암시한다. 감정의 역사는 우리에게 자신의 비밀스런 감정에 어떤 사회적 계급 관계와 문화적 권력 관계가 기입되어 있는지 질문하게 해준다.


김학이 동아대학교·서양사

독일 보훔대학교에서 역사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동아대학교 사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나치즘과 동성애―독일의 동성애 담론과 문화》(2013)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 윌리엄 레디의 《감정의 항해―감정 이론, 감정사, 프랑스혁명》(2016), 마르틴 브로샤트의 《히틀러국가―나치 정치혁명의 이념과 현실》(2011) 등이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