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키나와를 확대하면 동아시아 전체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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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키나와를 확대하면 동아시아 전체가 된다
  • 곽형덕 명지대학교·일본근현대문학
  • 승인 2020.03.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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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말하다]

■ 책을 말하다_ 『오키나와문학 선집』 (야마시로 세이츄 외 지음, 곽형덕 엮고 옮김, 소명출판, 2020.02)
 

일본의 사상가 다케우치 요시미는 1959년에 “오키나와를 확대하면 일본 전체가 된다”(「오키나와에서 부락까지」)고 썼다. 그는 전근대 시기 사쓰마(薩摩, 현재의 가고시마)-오키나와-아마미오시마(奄美大島)의 관계를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일본-오키나와의 관계로 치환해서 바라본다. 지배와 피지배가 겹쳐지는 가운데 큰 세력(지배세력)의 모순이 집결되는 장소로 작은 세력(피지배 세력)을 포착한다. 제국주의 국가의 지배와 이해가 몇 겹으로 겹쳐진 피식민지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제국주의 국가의 문제도 해결되지 않는다는 주장에 다름 아니다. 요컨대 다케우치는 오키나와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일본 전체의 문제도 해결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셈이다. 그렇기에 다케우치는 오키나와를 확대하면 일본 전체가 된다고 썼다. 하지만 오키나와 문제는 일본 전체만이 아니라 동아시아 차원으로 시계(視界)를 넓힐 때 비로소 더 선명히 보인다. 왜냐하면 식민주의나 군사기지 문제는 동아시아가 아프게 통과한 근현대 역사와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오키나와의 어떤 지점을 확대하면 동아시아 전체가 되는 것일까? 이 질문을 중심에 놓고 몇 가지 키워드로 최근 편역해 내놓은 『오키나와문학 선집』(소명출판, 2020.02)을 소개하고자 한다.

▲ 야마노구치 바쿠
▲ 야마노구치 바쿠

오키나와문학 선집에는 작품 발표순으로 1910년에서부터 2019년에 이르기까지 11명 작가의 소설 12편과 시 16편을 번역 수록돼 있다. 그중 오키나와 근대문학의 태동기라 할 수 있는 2차 세계대전 이전 시기의 키워드는 ‘식민지’다. 오키나와는 전근대 시기 류큐왕국으로 불렸으며 17세기 초반부터는 명나라와 에도막부 양쪽에 속해 있었다. 이른바 양쪽에 속한 양속체제에 구애돼 있다가 메이지유신(1868) 이후 류큐왕국은 일본에 의해 멸망하고 하나의 현으로 편입됐다(폐번치현). 오키나와문학 선집에 실린 야마시로 세이츄, 이케미야기 세키호, 구시 후사코, 야마노구치 바쿠의 작품은 바로 폐번치현 이후, 자기부정(自己否定)의 심연을 헤매는 우치난추(오키나와 사람/민족)의 비극과 그로부터의 부상(浮上)을 담고 있다. 일본인의 정체성을 강요당한 식민주의의 폐해를 인식하고 이를 극복하려 했던 이들의 작품은 일제 강점기 조선문학의 자화상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일본이 패전해 일본이 아닌 미국에 점령된 오키나와 전쟁 직후의 키워드는 ‘자기비판’과 ‘갱신’이다. 오타 료하쿠의 「흑다이아몬드」, 오시로 다쓰히로의 「2세」는 자기부정보다는 자기비판 쪽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며 타자를 향해 열린 자세를 보였다는 점에서 놀라운 소설이다. 이들 작가는 전쟁 직후에 오키나와의 자폐적인 자기인식과 뒤틀린 아이덴티티를 고통스럽게 응시하고 밖으로 자신을 열어가려 했다. 이 시기 또 다른 키워드는 ‘냉전과 군사기지’다. 미군 기지와 관련된 이른바 ‘기지촌 소설’로 볼 수 있는 작품은 미야기 소우의 「A사인바의 여자들」과 마타요시 에이키의 「소싸움장의 허니」이다. 미군기지 주위에서 살아가는 여성들의 삶과 기지로 인해 변해버린 지역의 정체성, 그리고 그에 대한 울분을 잘 표현한 작품이다. 미군기지 문제는 단순히 일본만의 문제가 아니라 동아시아 내의 냉전적 대립과 갈등을 잘 보여준다는 점에서 동아시아 전체의 문제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메도루마 슌의 「버들붕어」는 헤노코 신기지 건설 현장에서의 반(反)기지 투쟁과 오키나와 전쟁을 이은 소설로 오키나와가 직면한 가장 첨예한 문제를 다뤘다. 한편 사키하마 신의 소설 「숲」과 「산딸기」는 무엇을 써도 오키나와문학으로 명명되는 것에 거부감을 담아 차세대 오키나와문학을 시야에 넣고 있다. 마이너 문학의 한계를 인식하고 이를 외부로 확장하려는 시도라 평가할 수 있다.

▲ 왼쪽부터 오타 료하쿠, 미야기 소우, 야마시로 세이츄
▲ 왼쪽부터 오타 료하쿠, 미야기 소우, 야마시로 세이츄

이처럼 오키나와문학은 오키나와 민족(우치난츄)의 역사적 기억과 현재를 담아낸 것으로 일본 ‘본토문학’과는 겹쳐지지만 변별된다. 여기서 오키나와의 전근대 역사와 근대 이후 일본의 식민지로서의 위치, 그리고 미군 점령기와 일본 '복귀'까지의 역사를 전부 개괄할 수는 없으나, 오키나와문학은 그 지역의 문화와 역사를 본토와 상대화하는 방식으로 현재에 이르렀다. 범박하게 말하자면 오키나와문학은 일본 제국주의 시기에는 본토에 동화돼 근대적 자아를 이루려는 원망(願望)과 그로부터 비롯된 상흔을, 미군 점령기에는 아시아 지역에 대한 가해자(일본 제국의 일원)로서의 자기 인식을 바탕으로 전개됐으며, 일본 '복귀'(1972) 이후부터는 일본 본토 및 미군과의 관련, 그리고 오키나와의 민속, 자연 등 표현의 범위가 점차 넓어져 갔다.

▲ 왼쪽부터 마타요시 에이키, 메도루마 슌과 바오닌, 사키하마 신
▲ 왼쪽부터 마타요시 에이키, 메도루마 슌과 바오닌, 사키하마 신

최근 10년 사이 한국 학계의 오키나와를 향한 관심과 이해는 그 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넓고 깊어졌다. 이는 최근 연이어 출간되고 있는 학계의 오키나와 관련 서적을 보더라도 알 수 있다. 앞서 제시한, 식민주의, 자기비판, 냉전, 전쟁, 군사기지 등은 오키나와만의 문제가 아니라 근대 이후 동아시아 전체가 겪은 상흔의 다른 이름이라 할 수 있다. 그렇기에 오키나와를 확대하면 동아시아 전체가 된다는 명제는 여전히 유효하다. 오키나와를 확대해도 동아시아 전체가 되지 않는 날, 지배와 피지배, 종속과 독립을 둘러싼 파열음이 잦아들고, 오키나와가 오키나와로 서게 될 것이다. 『오키나와문학 선집』은 오키나와문학이 일본문학과 왜 변별되며, 동아시아문학인지를 증명하고 있다.


곽형덕 명지대학교·일본근현대문학

명지대학교 일어일문과 교수로 있다. 일본문학을 동아시아문학적 관점에서 새롭게 읽어내고 있다. 저서로 『김사량과 일제 말 식민지 문학』(2017)이 있다. 『오키나와문학 선집』 (2020), 『무지개 새』 (2019), 『지평선』(2018), 『장편시집 니이가타』(2014)를 비롯해 『한국문학의 동아시아적 지평』(오무라 마스오, 2017), 『어군기』(메도루마 슌, 2017), 『아쿠타가와의 중국 기행』(2016), 『긴네무 집』(마타요시 에이키, 2014), 『아무도 들려주지 않았던 일본 현대문학』(다카하시 토시오, 2014), 『김사량, 작품과 연구』(1-5, 2008-2016) 등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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