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속 시계는 약효가 좋은 때를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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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속 시계는 약효가 좋은 때를 알고 있다
  • 기초과학연구원
  • 승인 2023.04.23 1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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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BS 과학리포트]

 

‘약발’이 잘 듣는 사람이 따로 있을까? 실제로 같은 약을 먹어도 효과는 사람마다 다르다. 과학자들은 이런 개인차를 유전적 차이로 설명한다. 약물 대사가 일어날 때 간, 신장 등에서 특정 효소가 나오는데, 타고나길 이런 효소가 많은 사람일수록 약발이 좋다는 뜻이다.

근래에는 조금 더 평등한(?) 치료법이 연구되고 있다. 모두가 가진 몸속 생체시계를 이용해 생체 리듬에 맞춰 최적의 약물 치료 시간을 찾는 연구다. 비록 타고난 유전자는 바꿀 수 없지만, 생체시계로 특정 유전자가 작동하는 시간은 알 수 있는 것이다.

지난 12월에는 국내 연구진의 성과도 있었다. 여성 혈액암 환자를 치료할 때 오전 치료가 더 효과적이라는 내용을 수학적으로 밝혀냈다. 생체 리듬으로 치료 효과를 어떻게 높일 수 있을까.

 

▲ 우리 몸에서는 주기에 따라 여러 가지 생리적인 변화가 일어난다. (출처: nobelprize.org)

잠잘 때와 끼니때를 몸이 알아서 기억하는 이유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어두운 밤이 되면 자고, 밝은 아침이 되면 잠에서 깨 활동한다. 마치 몸속에 시계가 있어 밤낮을 구분하는 것처럼 말이다. 한낮에는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나며 몸속에서는 점심시간을 알리는 배꼽시계가 울리기도 한다. 놀랍게도 매번 시간을 보면 12시쯤이다. 우리 몸은 점심시간을 알고 있는 것일까.실제로 사람의 몸속에는 생체시계가 작동하고 있다. (배꼽시계는 존재했다) 몸속 세포 안에서는 갖가지 생리현상이 일어나는데, 모두 일정한 시간 주기에 따라 조절된다는 뜻이다. 그래서 평소와 다른 상태가 돼도, 몸은 생체시계에 맞춰 변한다.

장시간 비행 뒤 시차 적응에 실패한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아마 생체시계의 존재를 느껴봤을 확률이 높다. 시차적응 실패는 평소에 유지되고 있던 생체시계와 현지 시각의 불일치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이런 생체시계는 동물과 식물에도 존재한다. 예를 들어 콩과의 한해살이풀인 미모사가 낮에는 잎을 펼치고 밤에는 접는 이유도 식물 내 생체시계가 있기 때문이다. 물론 동식물마다 각자에게 적합한 방식으로 생체시계는 다르게 돌아간다. 갑각류 등 일부 해양 생물은 조류에 맞춰진 12시간 생체 리듬이 있다는 연구도 있다. (doi: 10.1016/j.cmet.2017.05.004)

 

▲ 미모사는 낮엔 잎을 펴고 밤엔 오므리는 식물이다. 암막에 두거나 태양 빛이 없어도 24시간 주기를 따르는데 이를 통해 식물도 생체시계를 지니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출처: Wikimedia Commons)

24시간 주기로 돌아가는 일주기 리듬

한편 사람의 생체시계는 크게 세 종류로 나뉜다. 낮과 밤에 따른 24주기, 하루보다 짧은 주기, 하루보다 긴 주기 등이다. 하루에 수시로 변하는 체온 변화는 하루보다 짧은 주기에 속하고, 한 달에 한 번 하는 여성의 생리는 하루보다 긴 주기에 속한다.

이 중에 낮과 밤에 따른 하루 24시간 동안의 주기적 변화를 특별히 ‘일주기 리듬(circadian rhythm)’이라고 부른다. 일주기 리듬은 몸속에서 일어나지만, 빛, 기온과 같은 외부 요인에 동기화되며 하루 24시간 주기로 늘어났다 줄어들었다 반복해 사인곡선을 그린다. 이 리듬에 맞게 호르몬 분비와 억제가 반복되고, 이에 따라 체온이나 혈압, 식욕, 수면욕 등이 조절되는 것이다.

우리가 밤이 되면 졸리고 아침이 되면 잠에서 깨는 이유도 일주기 리듬 때문이다. 우리 몸에서는 수면에 관여하는 호르몬 두 가지가 분비된다. 수면을 유도하는 호르몬 멜라토닌과 잠을 깨우는 호르몬 코르티솔이다.

멜라토닌은 빛에 민감한 호르몬으로 완전히 어두워진 밤 8~9시쯤부터 혈중 농도가 급격히 높아진다. 한밤중인 새벽 3~4시에 최고조에 이르고, 햇빛이 들어 밝아진 아침 6~8시에는 혈중 녹도가 뚝 떨어져 한낮에는 거의 분비되지 않는 상태가 유지된다.

한편 멜라토닌 분비가 줄어들면 코르티솔 분비가 늘어나기 시작해 낮에 정점을 이루고, 오후 3시 이후에는 수치가 현저히 떨어진다. 그리고 24시간 주기를 갖는 멜라토닌과 코르티솔의 리듬은 매일매일 반복된다. 이때 하루 중 짧은 낮잠은 일주기 리듬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그래서 밤늦게 컴퓨터나 스마트폰을 하면 인공 빛에 노출돼 멜라토닌 분비에 이상이 생기고, 호르몬 주기가 깨진다. 결국 생체시계는 고장이 나고, 불면증과 같은 질병이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실제로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야 건강하다는 어른들의 말이 꽤 과학적이었던 셈이다.

 

▲ 수면 유도 호르몬인 멜라토닌은 빛에 민감하다. 늦은 밤까지 컴퓨터나 스마트폰을 하면 인공 빛에 노출돼 멜라토닌 분비에 이상이 생길 수 있다. (출처: Pixabay)

독감 백신, 오전에 접종효과 4배 좋아

의학자들은 일주기 리듬을 질병 치료에 이용하기도 하는데, 이를 크로노테라피(시간요법)라 한다. 생체 리듬에 맞춰서 약물 치료를 하는 것이다. 시간요법을 이용하면 치료 효과를 높이거나, 약물 부작용을 낮출 수 있다.

예를 들어 스테로이드는 효과가 매우 좋지만, 그만큼 부작용도 많다. 이때 스테로이드 부작용을 조금이나마 줄이기 위해서는 투약 시간을 조절하기도 한다.

본래 스테로이드는 신장 위 부신피질에서 분비되는 호르몬으로, 오전 7~8시에 제일 활발히 분비되고, 이후에는 호르몬 생산을 억제하는 작용이 이뤄진다. 그래서 아침 시간에 스테로이드를 투여하면 부신 위축 부작용 등의 발생 위험이 낮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주기 리듬에 따라 백신에 대한 항체 생성 효율이 다르다는 연구도 있다. 지난 2016년 영국 연구진은 독감 백신을 맞는 시간대에 따라 백신 효과가 달라진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안나 필립스 영국 버밍엄대 교수는 65세 이상 성인 276명을 3년 동안(2011~2013년) 조사하며 독감 백신 접종 시간과 효과를 분석했다. 필립스 교수는 참가자를 오전 9~11시 접종군과 오후 3~5시 접종군으로 나눈 뒤, 각각 접종 1개월 뒤에 혈액 속 항체를 측정했다. 연구 결과 오전 접종군의 항체가 오후 접종군보다 4배 더 많이 형성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doi: 10.1016/j.vaccine.2016.04.032)

항체는 몸속에서 바이러스와 싸우는 물질로, 일반적으로 항체 수치가 높으면 그만큼 백신 효과가 좋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필립스 교수는 인체 생체 리듬이 오전에 더 활발해 이와 같은 결과가 나온 것으로 추정했다.

 

▲ 영국 연구팀이 노인의 독감 백신 접종은 오후보다 오전에 더 효과적이라고 밝혔다. 이는 인체 생체 리듬이 오전에 더 활발하기 때문으로 추정했다. (출처: Pixabay)

여성 혈액암 항암치료, 오후에 받으면 사망확률 12.5배 낮아

최근 국내 연구진은 혈액암 환자 자료에서 항암치료 효과가 높은 시간을 발견했다. 항암치료 부작용이 적고 치료 효과가 좋은 시간을 발견했는데, 이 원인을 백혈구를 만들어내는 골수의 일주기 리듬에서 찾아낸 것이다.

김재경 IBS 의생명 수학 그룹 CI(KAIST 수리과학과 교수) 연구팀과 고영일 서울대병원 혈액종양내과 교수팀은 공동 연구를 통해 여성 혈액암 환자의 경우 오전보다 오후에 항암치료를 받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는 가능성을 제시했다. 연구결과는 12월 13일 미국 임상학회 학술지인 ‘JCI Insight’에 실렸다.

항암제 치료는 말 그대로 항암제를 투여해 암세포를 파괴하는 치료법이다. 암세포 종류에 따라 완치도 가능하지만, 약물인 만큼 장기간 치료 시 내성이 생길 수 있는 단점이 있다. 항암제 내성을 줄이기 위해 짧은 기간 안에 효과를 최대한으로 내야 한다.

연구팀은 서울대병원에서 광범위 B형 대세포 림프종 치료를 진행 중인 환자 210명을 대상으로 연구를 진행했다. 오전과 오후 치료 환자로 구분해 환자의 사망, 암 재발, 암 악화 여부 등을 수학적으로 분석했다.

연구결과 오후에 치료받은 여성 환자의 경우 사망확률이 12.5배 감소했다. 암이 더 진행되지 않고 살아가는 무진행 생존 기간이 2.8배 늘어난다는 것도 확인했다. 60개월 이후 사망률에서도 오후 여성 환자가 2%, 오전 여성 환자가 25%로 큰 차이를 보였다. 여성 혈액암 환자의 경우 오후에 치료를 진행하면 사망확률과 무진행 생존 기간 모두 긍정적인 효과를 나타낸 것이다. 한편 남성 환자의 경우 치료 시간에 따른 효율 차이가 나타나지 않았다.

 

▲ 여성 혈액암 환자의 경우, 오전에 치료받은 경우보다 오후에 치료받았을 때 사망확률은 12.5배 감소하고, 무진행 생존 기간은 2.8배 늘어났다. 연구팀은 골수의 일주기 리듬에서 원인을 찾았다. (출처: IBS)

여성의 골수, 일주기 리듬을 가져

연구팀은 서울대병원 건강검진센터에서 수집된 1만 4,000여 명의 혈액 표본을 분석했다. 그 결과 여성의 경우, 항암치료 부작용 발생에 영향을 미치는 백혈구 수가 오전에 감소하고, 오후에 늘어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남성은 하루 중 백혈구 수 차이가 없었다.

골수에서 백혈구가 만들어지기까지는 12시간이 걸린다. 다시 말해 백혈구 수가 오후에 늘어났다는 것은 여성의 골수 기능이 오전에 활발하다는 뜻이다. 즉, 여성의 골수 기능은 오전에 증가하고, 오후에는 감소하는 일주기 리듬을 가진 셈이다.

이런 이유로 여성 혈액암 환자가 골수 기능이 활발한 오전에 림프종 치료를 받으면 항암 부작용이 커진다. 김 CI는 “골수는 생명에 중요한 혈액을 생산하는 공장”이라며 “공장이 가장 활발하게 가동될 때 항암제라는 독성물질이 들어오면 우리 몸에 부작용이 생기게 된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약물 투여량을 조절한 결과에서 오전에 주로 치료받은 여성 환자들이 부작용을 더 많이 겪었다는 사실을 유추할 수 있다. 의료진은 약물 치료에서 부작용이 발생하면 약물 투여량을 줄인다. 오후 환자는 계획한 치료를 90% 이상 진행했지만, 오전 환자들은 계획한 치료의 20~30%만 진행한 것으로 나타났다. 부작용을 줄이기 위해 약물 투여량을 줄였고, 항암치료 효과가 떨어졌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이는 결국, 암 재발과 사망확률을 높인다.

김재경 CI는 “개인의 수면 패턴에 따라 생체시계의 시간은 크게 차이가 날 수 있기 때문에 현재 수면 패턴으로부터 개인의 생체시계 시간을 추정하는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며 “이를 통해 최종적으로는 개인 맞춤형 ‘치료 일과표’를 제공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 심장 수술 최적의 타이밍, 항염증제 복용 타이밍 등 일주기 리듬을 이용한 의학 연구는 다양하게 이뤄지고 있다. (출처: Pixabay)

이외에도 일주기 리듬을 이용한 의학 연구는 국내외로 다양하게 이뤄지고 있다. 심장 수술을 하기 좋은 최적의 타이밍, 항염증제를 복용하기 가장 좋은 시간 등이 연구된 사례가 있다. 그러나 여전히 일주기 리듬을 이용한 질병 치료 연구는 아직 해야 할 일은 많다. 2017년 일주기 리듬 연구로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은 마이클 영 교수는 “아직 1%밖에 밝혀낸 것에 불과하다”고 말했으니.

그러나 일주기 리듬 연구는 타고난 유전자를 활용하는 방식으로 연구를 끌어냈다는 의의가 있다. 나아가 건강하게 잘 사는 방법을 과학적으로 밝히고 있다. 적어도 수면, 식사, 운동 등은 일주기 리듬에 따라 최적의 타이밍을 맞출 수 있다. 약발 잘 듣는 유전자는 없더라도, 약발 잘 드는 시간은 모두가 활용할 수 있다. 이를테면 멜라토닌 혈중 농도가 높아진 늦은 밤에는 스마트폰만큼은 접어 두고 ‘꿀잠’ 자는 방식으로!


[출처] IBS(기초과학연구원) NAVER 포스트 | “몸속 시계는 약효가 좋은 때를 알고 있다” | IBS 의생명 수학 그룹 | 2023. 04.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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