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한은 이미 자본에 의해서 통일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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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한은 이미 자본에 의해서 통일되었다”
  • 이명아 기자
  • 승인 2023.04.16 1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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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본의 무의식: 자본주의의 꿈과 한민족 공동체를 향한 욕망 | 박현옥 지음 | 김택균 옮김 | 천년의상상 | 632쪽

 

“남북한은 이미 자본에 의해 통일되었다.” 이 책의 전체 내용을 압축한 이 책의 첫 문장이다. 저자 박현옥 교수는 남한, 북한, 중국 북동부 세 지역 사람들의 ‘사회적 관계’를 살피기 위해 그들의 다양한 목소리를 직접 인터뷰했다. 그리고 글로벌 자본주의 변동을 분석한 이론들을 이들의 목소리와 함께 엮어, 탈냉전 시기 세계자본주의가 영토 국가를 넘어 ‘사회적 삶’의 영역에서 어떻게 펼쳐지는지를 이 책에서 설득력 있게 펼친다.

세계자본주의는 한반도(한국·북한·중국)에서 어떻게 펼쳐지고 있는가? 탈냉전 시기임에도 여전히 지속되고 있는 정전체제와 분단의 상황. 한반도의 통일(unification)을 둘러싼 정치적, 군사적 현실이 엄중한 때에 “남북한은 이미 자본에 의해 트랜스내셔널 코리아 형태로 통일되었다.”는 저자의 첫 문장은 도발적인 선언이기도 하다. 저자에 따르면 통일은 ‘이미’ 일어난 일이고, ‘자본에 의해’ 일어난 일이고, ‘트랜스내셔널 코리아의 형태로’ 일어난 일이다.

통일이 ‘트랜스내셔널 코리아 형태로’ 일어났다는 말은 통일이 하나의 영토 국가를 이루는 방식이 아니라 남한과 북한, 그리고 중국에 걸쳐서 함께 일어났다는 뜻이다. 분단을 영토의 미수복상태로 간주했던 냉전 시기 통일관으로는 이해하기가 어렵다. 이 통일이 영토가 아니라 ‘사회적 삶’에서 일어났기 때문이다. 즉 남한 북한 중국의 한국인들은 통일된 삶을 살고 있다. 두 가지 의미에서 그렇다. 첫째, 세 지역의 한국인들은 동일한 형태의 삶을 살고 있다. 국적에 상관없이 모두가 ‘시장 유토피아’ 속에서 산다. 사회주의 체제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조차 사회주의가 약속했던 삶을 시장에서 상품 형식으로 구매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둘째, 한인들은 긴밀히 통합된 삶을 살고 있다. 조선족 이주노동자들은 남한의 저임금 서비스업종에 진출해 있고 이들의 중국 내 빈자리는 북한에서 온 이주노동자들이 메우고 있는 것이다.

다음으로, 통일은 ‘자본에 의해’ 일어났다는 말을 보자. 저자는 통일 문제를 냉전기의 남은 과제가 아니라 탈냉전기 지구적 자본주의의 재편이라는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트랜스내셔널 코리아’는 자본 축적과 관련해서 남한, 중국, 북한에서 일어난 ‘동시적’ 위기들을 넘어서려는 과정에서 나타난 주권의 트랜스내셔널한 형태이다.

끝으로, 통일은 ‘이미’ 일어난 일이다. 저자는 20세기 한반도와 한인 디아스포라의 역사를 통해 현재의 역사를 파악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실제로 그는 일제강점기 한인들이 만주와 주변국으로 이주했던 일을 현재 일어나는 일의 원역사(ur-history)로 간주한다. 하지만 트랜스내셔널 코리아가 역사적 발전 과정에서 예정되어 있었다는 뜻은 아니다. 이런 단선적 이행의 역사란 존재하지 않는다. 저자에 따르면 우리가 분석해야 하는 것은 반복이다. 자본주의 위기는 반복되고 그때마다 새로운 정치적 형식, 새로운 유토피아가 만들어진다. 자본의 위기 극복의 노력이 어떻게 다르게 반복되는지를 분석하는 것이 중요하다. 뿐만 아니라 사람들의 과거에 대한 기억과 미래에 대한 전망(유토피아)이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살펴야 한다. “남북한이 이미 자본에 의해 트랜스내셔널 코리아의 형태로 통일되었다”는 주장은 이런 맥락에서 도출된 것이다.

덧붙여서 “이미”라는 말도 한번 보자. 저자의 “이미”는 역사를 시간의 측면에서 해석하는 것을 강조한다. 현재의 통일 담론의 역사적 형식을 분석함으로써 저자는 한국 통일의 원초적이고 유토피아적인 의미를 되살리고 싶었던 것 같다. 분단된 한국을 통일하려는 노력은 발터 벤야민이 ‘역사철학에 관한 논문’에서 “파쇄된 것을 전체로 만드는 것”이라고 지적한 것과 같다. 파쇄된 것은 결코 존재했던 적도 없는 동질적 한국 그 자체가 아니라, 민족의 해방이라는 유토피아적 이상이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이 변화를 알아차리지 못하는가. 그것은 우리가 각각의 주체를 “고립되어 있는 여러 섬들처럼” 파편적으로 이해하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우리는 한국에 오는 조선족에 대해서는 탈식민주의 ‘배상’으로 문제로, 탈북자에 대해서는 ‘인권’의 문제로 접근한다. 이렇게 접근하면 이들이 한국인들과 맺고 있는 노동관계(아울러 이 관계에 내재한 모순과 부조리)가 은폐된다. 사실 식민지배의 피해자로서 한국 국적을 요구하는 조선족들에게 국적은 합법적으로 노동할 수 있는 수단의 성격이 강하다. 또 국경을 넘는 북한 이주민은 ‘자유를 찾아 나선 영웅’이기보다는 ‘일자리를 찾아 나선 무산자’에 가깝다.

트랜스내셔널 코리아의 성격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들 모두를 하나의 ‘사회적 구성’ 속에서 파악해야 한다. 다시 말해 남한의 노동자(정규직과 비정규직), 이주노동자, 조선족 노동자, 탈북민 노동자 등의 정체성과 권리를 구분하는 사회적 범주를 넘어서 공동의 지평 위에서 이들의 관계를 파악해야 한다. 이 책에서 시도하고 있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한국의 통일이라는 지역적 주제를 통해 세계사적인 흐름을 관통하는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얽힘을 드러내어 새로운 전망을 제시하고자 하는 이 책은 다양하고 치밀한 이론적 탐구와 풍부한 역사적 · 인류학적 자료 그리고 이 둘 사이의 흥미로운 만남의 장을 마련하고 있으며 수많은 논쟁점과 생각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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