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와 지중해 세계의 2천년 향방은 이 전투가 결정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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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와 지중해 세계의 2천년 향방은 이 전투가 결정지었다
  • 이명아 기자
  • 승인 2023.04.16 1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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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악티움 해전: 로마 제국을 만든 전쟁 | 배리 스트라우스 지음 | 이종인 옮김 | 책과함께 | 508쪽

 

옥타비아누스, 안토니우스, 클레오파트라 세 영웅이 로마의 패권을 두고 벌인 악티움 해전은 지중해 세계의 무게중심이 서방과 동방 어느 쪽에 놓일지 결정한 중대한 사건이었다. 이 해전으로 생겨난 로마 제국의 절대적 영향력을 감안하면 악티움 해전은 역사의 전환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도 이 전쟁은 지금껏 간과되어왔다.

이 책에서 저자 배리 스트라우스는 여러 문헌 기록과 현대에 발굴된 고고학 자료를 적극 활용해 악티움 해전을 재구성하고 그 실상을 추적한다. 그는 악티움 해전을 전략 전술은 물론이며 경제, 프로파간다, 외교, 사랑 등 다양한 요소가 얽힌 총력전으로 그리며, 그 과정에서 옥타비아누스가 고난과 불리함을 극복하고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에게 마침내 승리한 이유를 면밀히 분석한다. 또한 전쟁에서 활약한 인물들의 위대함과 인간적 면모를 입체적으로 재조명한다. 

악티움 해전은 기원전 31년 그리스 서부 악티움에서 카이사르의 양자 옥타비아누스에 맞서, 당시 로마 최고의 실력자 안토니우스와 그의 손을 잡은 이집트 여왕 클레오파트라가 로마의 패권을 두고 벌인 결전이다. 그동안 로마 내전의 종지부를 찍는 하나의 에피소드 정도로 과소평가된 이 전투에 이 책은 새로운 역사적 의미를 부여한다.

악티움 해전의 결과로 로마는 옥타비아누스가 그린 청사진을 따라 제국으로 나아갔음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하지만 이 전투의 파급 효과는 그보다 엄청났다. 악티움 해전은 지중해 세계에서 로마로 대표되는 서방, 이집트로 대표되는 동방의 대결이기도 했다. 옥타비아누스가 승리함으로써 도시 로마는 굳건히 제국의 수도이자 지중해 세계 중심지의 역할을 지켰다. 훗날 유럽의 많은 국가들이 로마 제국에서 파생된 점을 감안하면 악티움 해전은 역사의 전환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고대 전쟁사의 대가로 인정받는 저자 배리 스트라우스는 이러한 새로운 시각에 입각해서 이 악티움 해전의 전말을 창조적으로 재구성했다. 자칫 어렵고 지루할 수 있는 전쟁사를 긴박한 전황을 생생하게 전달하며 긴장감 넘치는 영웅들의 대서사로 탈바꿈시켰다.

저자의 손에서 재창조된 악티움 해전은 단발적 에피소드에 그치지 않고 기나긴 서사의 결정적 한 장면으로 그려진다. 책은 악티움 해전의 진정한 원인인 카이사르 암살에서부터 시작한다. 전투의 주인공이자 서로 카이사르의 후계자를 자처한 옥타비아누스와 안토니우스, 그리고 안토니우스의 연인이자 이집트 여왕인 클레오파트라가 로마의 주역으로 등장하는 순간이었기 때문이다. 이후 10여 년간 카이사르 암살자들과의 필리피 전투, 삼두 정치의 성립과 해체, 섹스투스 폼페이우스와의 대결, 파르티아 전쟁 등이 이어지는 가운데 주인공들은 엎치락뒤치락 부침을 반복하며 최후의 결전을 향해 나아간다. 마침내 악티움 해전은 길게는 카이사르 암살부터의 혼란스러웠던 10여 년, 짧게는 옥타비아누스와 안토니우스·클레오파트라가 6개월간 치른 전쟁의 클라이맥스로 그 의미가 새롭게 정립된다. 나아가 악티움 해전 후에도 1년여 동안 이어진 내전과 로마와 이집트에 단행된 후속 조치를 상세히 설명하면서 이 전투가 지닌 의미를 반추하게 한다.

저자는 이 전쟁에 전략과 전술은 물론이거니와 외교, 경제전, 사랑·증오·질투 같은 인간적 정서까지 다양한 요소들이 복잡하게 얽혀 있음을 보여준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프로파간다와 가짜 뉴스를 포함한 정보전이다. 전쟁의 명분을 세우고자 자신을 높이고 상대방을 헐뜯는 프로파간다가 통신수단이 발달하지 않았던 고대 세계의 전쟁을 어떻게 좌지우지했는지, 그리고 2000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역사인식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우리로 하여금 깨닫게 한다.

물론 전쟁사의 기본인 전략과 전술부터 당시 로마의 주력 함선과 병기, 지형 등 실제 전투에 개입된 세부요소까지 전쟁사로서 기본적으로 다뤄야 하는 사항들도 충실히 설명한다. 특히 각 진영이 내세운 전략과 전술의 성공·실패 요인을 분석하는 대목은 압권이다. 이를 통해 악티움 해전의 승패가 이미 절반은 결정되어 있었음을, 그리고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가 전투를 앞두고 납득하기 어려운 전략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설득력 있게 제시한다.

이 책은 승자의 선동으로 뒤덮인 고대 문헌기록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고 최근까지의 발굴성과를 적극 활용해,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진실에 다가간다. 고도의 비판적 해석을 통해 승자의 기록에만 의존해야 하는 한계를 극복하며, 안토니우스와클레오파트라를 비롯해 원색적인 프로파간다가 덧씌워진 인물들의 실제 모습을 추적하고 우리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이러한 작업은 전쟁에서 활약한 인물들의 위대함과 인간적 면모를 입체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한다. 옥타비아누스는 자신의 한계를 명확히 판단하고 적재적소에 인재를 등용하는 냉정한 리더, 안토니우스는 외교 수완이 뛰어난 반면 전략가로서 면모가 부족했던 장군, 클레오파트라는 매혹적인 여성을 넘어 국가 경영의 기술과 경륜을 지닌 원숙한 군주로 그려진다.

아울러 조연들의 빛나는 활약상도 재미를 더한다. 특히 옥타비아누스의 누나이자 안토니우스의 아내였던 옥타비아는 정략결혼의 희생자이자 안토니우스에게 외면당한 비극적 여인으로 여겨졌지만, 실제로는 옥타비아누스에게 고급 정보를 전달하고 동생과 남편 사이를 중재하는 중요한 인물이었음을 알 수 있다. 이 외에도 옥타비아누스 승리 전략의 실제 기획자인 아그리파, 각 진영을 넘나든 아헤노바르부스 등 내전에서 볼 수 있는 다양한 인간군상을 보여주며 이야기를 다채롭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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