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은 혐오 사회의 현실에 공명할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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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은 혐오 사회의 현실에 공명할 수 있어야 한다
  • 이현건 기자
  • 승인 2023.04.16 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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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혐오이론 2: 학제적 접근 | 심재웅·양선이·이재준·강미영·최준식 외 6명 지음 | 한울아카데미 | 272쪽

 

혐오는 오늘날 우리 사회의 현실이 우리 모두에게 던지고 있는 심각한 문제이다. 우리의 삶 속에 너무나 적나라하게 표현되고 있는 혐오는 우리 사회의 감추어진 문제를 드러내는 징후요 증상이다. 혐오와 관련된 사건들이 급증하고 있는 것은 사회 공동체의 파괴요 언제라도 실체화될 수 있는 상존하는 위험의 증거이다. 인문학은 오늘날 혐오 사회의 현실에 공명할 수 있어야 한다. 

이 책은 인문한국 사업의 일환으로 ‘혐오 시대, 인문학의 대응’이라는 어젠다 연구를 진행 중인 숙명여자대학교 인문학연구소 HK+사업단의 학술연구총서 시리즈의 하나로 나온 책이다. 사업단은 이 연구를 수행하면서 혐오 현상의 복잡성에 부응하는 다학제적 접근의 필요성을 절실하게 느껴 철학, 문학, 역사학 등 인문학의 여러 분야뿐만 아니라 과학기술학, 예술 등을 가로지르는 횡단적인 혐오학의 발전을 추구해 왔다.

1장 「포스트트루스와 혐오정치: 워드 켄들의 『오늘을 견뎌라』에서 박인찬은 포스트트루스(post-truth) 시대라 일컬을 만한 현재 미국 정치에서의 감정, 특히 혐오 정치를 백인우월주의 문학 중에 과학소설인 워드 켄들의 『오늘을 견뎌라』에 대한 분석을 통해 세밀하게 다루고 있다. 인간 감정을 정치적으로 이용하여 갈등을 극대화시키고 이로부터 정치권력의 열매를 따먹는 혐오 정치의 부당함과 폭력성을 비판적으로 검토한다.

2장 「혐오에 대한 도덕철학적 고찰」은 데이비드 흄과 애덤 스미스의 도덕철학적 관점에서 혐오 감정을 살핀다. 양선이는 특별히 현대의 흄주의자인 제시 프린츠(J. Prinz)의 사회 구성주의와 조너선 하이트(J. Haidt)의 사회적 직관주의에 내재한 문제점을 지적하고, 흄의 공감이론과 스미스의 공감이론을 그 대안으로 제시한다.

3장 「혐오의 이중성에 대한 현상학적 분석」에서 현상학자 박승억은 혐오가 사회적으로 투사되는 과정에서 드러나는 혐오 감정의 이중성으로 인해 혐오 문제 해결이 어렵다고 지적하면서, 혐오 문제의 복잡성을 현상학적 관점에서 분석한다. 필자는 현상학의 방법적 특징으로 “어떤 대상이나 문제가 특정 문제 연관 속에서 의미 부여되기 이전에 그 근원적인 현상으로 되돌아가는 것”이라 지적하면서, 특별히 혐오에 대해 선구적으로 철학적 논의를 펼쳤던 아우렐 콜나이(Aurel Kolnai)의 연구를 다층적 의미를 지닌 혐오 현상에 접근하는 지침으로 삼는다.

4장에서 강미영은 「혐오와 문학: 혐오와 문학의 공진화와 전망」이라는 제목으로 미국 문학사의 흐름 속에서 혐오와 문학이 상호작용하고 공진화해 온 양상을 추적한다. 그는 문학을 통한 대항 담론의 형성이 인지적 차원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반혐오의 미학이 가지는 감성적이고 정치적인 가치를 함께 고려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5장의 「혐오와 화해하기: 인공지능 그리고 칸트」에서 김형주는 칸트 철학을 통해 인공지능 혐오와 화해하기를 시도한다. 그는 원래 칸트 철학 전공자로서 인공지능 철학이라는 새로운 분야를 선도하고 있다.

미학 연구자 이재준은 6장 「혐오와 정신분석: 줄리아 크리스테바의 아브젝트 이론을 중심으로」에서 정신분석학 시각으로 혐오에 접근한다. 크리스테바는 이질성의 잠재적 힘을 강조하는 조르주 바타유의 아브젝트와 아브젝시옹을 가져와서 작동하고 있는 혐오 장치의 근원적인 특성을 분석한다.

7장의 「혐오의 학습과 확장: 미각 혐오 학습을 중심으로」는 심리학자 최준식의 과학적인 실험의 결과를 담은 글로 대부분의 동물들에 존재하는 학습 메커니즘으로서의 미각 혐오 및 그 확장된 형태들을 개관하면서, 다양해 보이는 혐오 현상이 이러한 기본 학습 메커니즘에 의존한다는 가정을 실험을 통해 증명한다.

8장 「혐오와 비판이론: 편견을 통한 사회적 증오 행위의 정당화와 그에 대한 대응」에서 권오용은 혐오와 관련된 감정으로서 어쩌면 혐오보다 더 강렬한 감정이라고 할 수 있는 ‘증오’를 비판이론의 시각에서 다루고 있다. 에리히 프롬, 테오도어 아도르노 등의 비판이론 1세대 학자들의 논의를 통해 근대적 개인에게 내면화된 증오, 표출되는 증오의 정당화로서 편견의 역할, 편견의 기능과 그 작동 방식, 편견의 사회적 동원 수단으로서 선전 선동의 문제들을 면밀하게 살펴보면서, 그 대응 방안까지 모색하고 있다.

정치학자 하상응은 9장 「혐오와 비인간화: 코로나19 맥락에서 본 차별과 배제의 정치」에서 우리 사회가 코로나19를 겪으면서 경험하고 있는 차별과 배제의 논리가 정치의 장에서 어떻게 강화되는지 살피고 있다. 정치의 장에서 차별과 배제의 문제를 민감한 시선으로 면밀하게 검토한 결론에서 “코로나19를 겪으면서 외집단 절멸을 목적으로 한 차별 행위가 확산될 가능성이 상존하고 있음을 확인했다”고 밝히고 있다.

마지막으로 10장 「미디어 혐오 표현에 대한 인식과 규제의 필요성에 대한 이론적 고찰」은 미디어학자 심재웅의 글로서 미디어의 역할 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룬다. 그는 미디어 혐오 표현의 현황과 미디어 혐오 표현에 대한 인식을 통계적으로 보여주면서, 혐오 표현 규제의 필요성을 역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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