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구조주의, 인식의 창(窓)을 열어준 방대한 지적 움직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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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구조주의, 인식의 창(窓)을 열어준 방대한 지적 움직임
  • 박종성 충남대학교·영문학
  • 승인 2023.04.16 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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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말하다_ 『탈구조주의, 10가지 시각』 (박종성 지음, 커뮤니케이션북스, 142쪽, 2023.03)

 

 

책을 쓴 이유와 탈구조주의의 특징

이 책은 서구 합리성 기획을 의심한 대표적 탈구조주의자 10명의 핵심 사유를 살핀다. 프랑스 68혁명 정신의 영향을 받아 등장한 탈구조주의는 새로운 방식으로 진리를 규명하려 했을 뿐만 아니라 문학 연구에도 새롭고 다양한 해석의 가능성을 열어주었다. 출발점은 자크 데리다이고 종착점은 질 들뢰즈다. 데리다의 해체주의(Deconstructionism)에서 시작하여 들뢰즈의 유목주의(Nomadism)에 도달하는 지적 여정을 보여준다. 이 책에는 약 50년이란 시간이 응축되어 있다. 독자는 탈구조주의자들의 사유의 고갱이와 이론적 관점뿐만 아니라 이를 영소설 분석에 적용한 실제비평의 사례를 차례로 만나게 된다. 10개의 탈구조주의(Post-structuralism) 봉우리를 등정하거나 탈구조주의 지층을 탐사하는 경험을 하게 된다. 

필자는 1990년 초반에 데리다, 라캉, 크리스테바, 식수, 사이드, 이글턴의 핵심 사유를 접하게 되었다. 이어 식민지 출신의 영국 소설가 나이폴(V.S. Naipaul)의 소설 연구로 박사학위 논문을 썼다. 특히, 에드워드 사이드와 호미 바바의 탈구조주의 시각은 나이폴의 주변부 의식과 혼종의 정체성을 이론적으로 접근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그런데 프랑스 비평 이론은 추상적이고 난해하며 복잡하고 방대하다. 그래서 필자는 20여 년 전부터 대전에 기반을 둔 문학이론연구회 독회를 통해 탈구조주의 비평에 관심의 넓이와 깊이를 확장해왔다. 동시에 지적 자극을 준 비평 이론을 영소설 분석에 적용하는 논문을 꾸준히 써왔다. 이 책은 프랑스 비평과 영소설 분석의 융합물이다.

이 책에 등장하는 구조와 탈구조, 그리고 해체 같은 열쇠말은 마치 건축공학에서 사용하는 용어처럼 들린다. 하지만 탈구조와 해체의 대상은 건물이 아니라, 절대적 진리와 확정적 의미, 그리고 견고한 이성과 지배담론이다. 탈구조주의는 텍스트의 틈, 불연속성, 비일관성을 드러내는 가운데 구조의 견고함을 해체하는 유용한 시선을 제공한다. 그리고 해체주의는 텍스트 내적 구조의 모순을 드러낸다. 해체주의란 텍스트가 말하고 있지 않은 것, 즉 텍스트 속에 억압되고 주변화된 목소리에 주목하는 비평적 방법을 의미한다. 해체주의는 페미니즘, 정신분석학, 탈식민주의, 생태주의 비평이라는 파생상품을 만들어냈다.

먼저 탈구조주의의 특징을 알아보자. 구조주의(Structuralism)는 인간의 행위와 그 행위의 산물인 언어와 문화현상에는 변치 않은 보편적 구조와 체계가 존재한다고 보고 이를 밝혀내려는 과학적인 방법론으로 언어학과 인류학, 그리고 심리학에 적용되었다. 구조주의는 텍스트에 부여했던 신비성을 벗겨내 문학의 탈신비화(demystification)에 공헌했지만 구조적 분석의 대상에만 집중하여 개별적인 텍스트가 지니는 의미를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다. 

하지만 탈구조주의는 구조 내의 담화론적 구성과 기능, 그리고 힘을 연구함으로써 구조를 문제시했다. 탈구조주의는 “(기호의) 완전한 재현의 가능성을, 기호의 완전한 지시기능을 그리고 절대적 의미의 현존을 믿지 않는다”(김성곤, 『탈구조주의의 이해』. 41). 즉, 기표와 기의가 어긋나면서 새로운 의미가 생겨난다는 점에 주목했다. 그렇지만 구조주의처럼 탈구조주의도 텍스트 밖의 세계인 컨텍스트에 주목하지 않음으로써 현실과 동떨어진 비역사적·비정치적 담론으로 비난받았다. 텍스트를 둘러싼 외부권력에 주목하는 사이드와 이글턴이 비판하는 지점이다.


책의 주요 내용

이 책은 10명 탈구조주의자들의 고유한 사유의 틀과 중요 개념, 그리고 특징을 서술하면서 연결고리를 만든다. 알제리 출신의 자크 데리다를 논의의 출발점으로 삼는다. 데리다는 개별성을 무시하는 총체화에 반대한다는 점에서 해체주의자다. 그는 텍스트가 말하고 있지 않은 것에 주목했는데, 이것은 텍스트의 고정된 의미를 의심하는 태도다. 그런데 텍스트에 의미의 종결점이 없어 가치체계의 붕괴와 혼란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생겨났다. 데리다의 텍스트 중심주의와 비정치적 태도가 비판받는 지점이다.

 

                  (왼쪽부터) 자크 데리다, 자크 라캉, 줄리아 크리스테바, 엘렌 식수, 가야트리 스피박

이어 자크 라캉을 다룬다. 그는 프로이트가 발견한 무의식을 철학적으로 세련되고 풍성하게 다듬었다. 프로이트가 성(性)에 관심을 두었다면, 라캉은 언어에 관심을 두었다. 그는 언어로 표현될 수 없는 무의식의 세계를 언어학적으로 탐구했고, “인간의 무의식은 언어로 구조화되어 있다”라는 명제를 제시했다. 라캉은 꿈을 텍스트나 설명되어야 하는 상징적 기호로 여겼다. 라캉은 정신분석학의 영역을 확장하는 데 이바지했다.

그리고 라캉의 밑에서 공부한 불가리아 출신의 줄리아 크리스테바는 언어 생명력의 원천인 기호학(세미오틱)에 주목했다. 기호학은 상상계 이전 단계로서 ‘아버지의 법’에 의해 길들기 이전의 상태인 여성의 영역이자 언어의 생명력을 지닌 근원이다. 특히, 그녀는 성차(性差)와 모성(母性)에 주목하여 남성적 틀에서 벗어난 독창적인 사유를 보여주었다. 그녀는 합리성의 격자(格子)가 기호학적 자료들을 질식시켜 의미의 본질을 산출하지는 못한다는 점에 주목하여 ‘시적 언어’에서 대안을 찾았다. 옹알이 같은 시적 언어는 재현할 수 없다는 의미에서 무한성을 지닌다. 최초의 질문자로서 그녀의 면모를 잘 보여준다.

이어지는 징검다리는 알제리 출신의 엘렌 식수다. 그녀는 여성의 본질과 생각과 경험을 언어화하는 ‘여성적 글쓰기(écriture féminine)’를 몸소 실천한다. 여성적 글쓰기란 남근(男根) 중심 문화 내에서 주변화되고, 억압당하고, 침묵 당한 것은 무엇이든지 표현하고 대변하려는 새로운 실험적 방식이다. 그녀는 여성이 여성의 본질과 감수성, 그리고 성욕을 건드리는 글쓰기를 통해 여성이 새롭게 태어나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렇다면 여성적 글쓰기는 남성적 글쓰기의 문법과 결별을 의미한다. 그녀의 독창적 사유가 도드라지는 지점이다.

이제 비서구 출신의 탈구조주의자들을 살펴보자. 인도계-미국인 가야트리 스피박은 ‘서발턴(subaltern, 하위 주체)’이 처한 곤경을 가시화한다. 그녀는 데리다의 해체전략을 받아들여 제 3세계 여성이 처한 경제적·문화적 종속상태에 주목한다. 또한 여성들 간 차이를 없애려는 다문화주의와 서구의 페미니즘을 불신한다. 그녀가 “날 제 3세계 여성이라 부르지 마라”라고 말하는 이유는, 대도시 중산층 출신으로 미국에서 교육받은 자신을 인도인이란 이유만으로 제 3세계 여성으로 규정하는(혹은 총체화하는) 것이 차이를 무시하는 부당한 처사라고 보기 때문이다. 여성들이라고 다 동질적인 것이 아니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스피박은 여성들 간 차이를 미분화한다.

그리고 인도 출신의 사회학자인 호미 바바는 데리다의 해체론적 입장에서 의미와 정체성의 통일성과 총체성을 해체하여 균열과 저항의 틈새를 찾는다. 그는 국민국가(nation-state) 담론이 분열되고, 차이와 모순이 가득한 혼종의 공간으로 파악한다. 그는 데리다의 ‘산종(dissemination)’ 개념을 전유하여 ‘국민 산종(DissemiNation)’이란 새로운 용어를 만들었다. 이것은 국민(nation)이 혈연이나 언어 등으로 결집한 인간 공동체가 아니라는 점을 말하기 위한 것이다. 즉, 그는 국민국가를 통일된 실체가 아니라 ‘서사(narration)’에 의해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구성물, 즉 신화로 본다. 이런 시각에서 본다면 국민국가는 의미의 미끄러짐이 생겨나는 열린 개념이 된다. 바바는 의미의 통일성과 절대성, 그리고 총체성을 해체하여 균열과 저항의 틈새를 찾는다는 점에서 데리다의 해체주의 영향권에 있다.

 

                       (왼쪽부터) 호미 바바, 미셸 푸코, 에드워드 사이드, 테리 이글턴, 질 들뢰즈

미셸 푸코는 이성에 기반을 둔 근대성(계몽적 기획)에 의문을 제기한 탈구조주의 철학자다. 그는 이성을 도구로 사용하는 근대 사회를 새롭게 그리고 비판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해 주었다. 특히 그는 지식이 당대의 지배 이데올로기와 결합하여 만드는 ‘언술행위 (discourse)’에 대한 탁월한 분석을 내놓았다. 푸코에 따르면, 언술행위는 상대적 진실에 불과하다. 데리다가 텍스트 개념을 의문시하듯, 푸코는 역사 개념, 특히 이성에 의해 중심을 정하는 ‘전체화하기(totalizing)’ 방식을 의문시했다. 이성중심주의에 맞선 도전은 푸코가 탈구조주의 범주에 속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이어 에드워드 사이드는 지식과 권력의 상관성을 분석한 푸코의 시각에 기대어 서구 담론의 허구성과 폭력성을 비판했다. 그는 오리엔탈리즘을 차별과 배제의 원칙에 의해 작동하는 재현 정치학의 산물이자 인식론적 폭력으로 보았다. 그런데 사이드는 텍스트의 읽기와 해석을 중시한, 즉 모든 것을 언어로 귀결시키고 언어의 유희를 즐기는 데리다를 비판한다. 사이드가 대안으로 제시하는 세속적 비평(Secular Criticism)은 텍스트 밖의 현실 세계인 ‘세속성(worldliness)’을 중시한다. 또한, 그는 텍스트를 주체적·비판적으로 읽는 ‘저항 독법(resistant reading)’을 강조한다. 절대적 진리를 부정하는 데리다의 해체주의 영향을 사이드한테서 확인할 수 있는 지점이다. 

테리 이글턴은 사이드처럼 현실과 동떨어진 탈구조주의 담론을 불신한다. 구조주의처럼 탈구조주의를 비역사적·비정치적인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사회의 구조적 모순에 주목하는 그는 개인의 자율성을 그다지 신봉하지 않는다. 아울러 프랑스산 문학이론을 만병통치약으로 보지 않는다. 난해한 이론과 말의 잔치를 경계하기 때문이다. 대신 현실 밀착형 마르크스주의 비평가인 그는 지식인이 공적 관심사에 개입하여 사회적 변화를 도모할 필요성을 강조한다. 

이 책의 도착점인 질 들뢰즈는 탈중심, 탈주체, 비이성적인 것에 주목하며 기존 질서로부터의 탈주를 꿈꾸었다는 점에서 탈구조주의자다. 그는 프로이트가 발견하고 라캉이 발전시킨 무의식과 욕망이라는 개념을 확장하여 ‘욕망하는 기계(machine désirante)’라는 개념을 만들었다. 유목주의 철학의 창시자인 그는 욕망이라는 탈주의 기계적인 흐름을 통해 삶의 변환의 가능성을 모색한다. 들뢰즈에 따르면 탈주선 긋기는 국가 장치에 맞선 대항사유(contre-pensée)이다. 들뢰즈는 탈중심적, 비위계적인 삶의 공간을 확보하는 데 주력한다. 이처럼 이 책은 “권력의 결을 거스르는(go against the grain)” 10명의 탈구조주의자들의 사유의 결을 톺아본다.


독자에게 바라는 점

이 책에 수록된 탈구조주의자들을 특징짓는 것은 단연 독창적 사유다. 이들은 우리가 그간 진리로 받아들인 것을 의문시한 최초의 질문자들이다. 이성중심주의, 부권주의, 과학을 표방한 구조주의 방법론, 남성적 글쓰기의 문법, 총체화, 언술행위, 오리엔탈리즘, 문학이론 중심주의, 영토화에 거스르는 일련의 방대한 지적 흐름을 감지할 수 있다. 독자가 지난 50년간 진행되어온 탈구조주의 흐름과 계보를 한눈에 파악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아울러 독자가 추상적이고 난해한 비평 이론과 용어를 이해한 후 이를 영소설 분석에 적용하는 방법을 습득하길 기대한다. 탈구조주의가 문학 텍스트를 분석하는 데 유용한 프리즘이 되어주었다는 점은 자명하다. 

 

박종성 충남대학교·영문학

충남대학교 영어영문학과 교수. 충남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고 서강대학교에서 석사학위, 영국 런던대학교 퀸메리 칼리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국영어영문학회 회장을 역임했다. 저서로는 『탈식민주의에 대한 성찰』(2006), 『영문학 인사이트』(2021), 『좋은 영어, 문체와 수사』(2023)가 있다. 공역서로는 『탈식민주의 길잡이』(2003), 『문화코드, 어떻게 읽을 것인가?』(2023)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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