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과 인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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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과 인류
  • 김환규 편집기획위원/전북대·생리학
  • 승인 2023.04.15 1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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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에세이]

■ 김환규 교수의 〈과학에세이〉

 

인류의 진화 과정 동안 불의 사용은 인류의 독창성을 정의할 수 있는 요소이다. 인류는 불을 이용해 포식자와 추위로부터 보호받았으며, 금속을 다룰 수 있게 되었다. 인류는 불을 요리에 이용하여 날것을 섭취할 때보다 먹기 편하고 소화도 쉬웠을 것이다. 불 때문에 인류는 밤에도 집단 활동을 할 수 있게 되어 문화의 전승 같은 사회적 활동을 영위할 수 있게 되었다. 문화의 발달은 인류의 지리적 확산과 식이 및 행동의 변화를 이끌었다. 화석 증거에 의하면 Homo 속(屬)은 170~200만 년 전부터, 현생 인류 조상인 H. electus는 약 100만 년 전부터 불을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2011년에 <미국국립과학원회보>에 발표된 자료에 따르면, 불이 인류가 사용하는 기술 레퍼토리의 일부로 고정된 것은 약 40만 년 전의 일이다. 물론 불에 의한 연기는 눈과 폐에 손상을 주고, 불에 탄 음식은 일부 암종의 증가를 초래했을 것이다. 또한 불 주위에 사람들이 모여 살면서 질병이 쉽게 전파되는 반작용도 있었을 것이다. 

불은 연소하는 화학반응이기 때문에 화산 폭발과 용해된 암석은 불이 아니다. 화석 증거에 의하면 연소할 수 있는 식물은 약 4억 년 전에 지구상에 출현하였으며 당시 불은 대부분 번개에 의해 일어났다. 위성을 이용한 관찰 결과, 지구상에서 번개는 하루 동안 약 800만 번 정도 발생한다. 산불은 삼림과 덤불을 태우고 확산하기 때문에 산불이 없었다면 초지는 모두 덤불 또는 숲이 되었을 것이다. 초지는 원인(猿人)들이 현재의 인류로 진화하는 과정에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이런 차원에서 불은 인류가 오늘날의 종(種)으로 진화하는 데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 

불은 인류의 생활에서 매우 중요한 인자이다. 다윈(C. Darwin)은 언어를 제외하면 인류가 발견한 최대의 작품이 불이라고 했다. 불은 인류의 수명을 연장했으며, 더 추운 곳으로 인류의 거주지를 확산시켰다. 불의 사용으로 H. erectus는 나무에서 내려와 지상에서 생활하면서 집단을 이루게 되었다. H. erectus의 뇌 크기 증가는 그들의 음식에서 고기의 섭취 증가뿐만 아니라 불로 요리하여 더 많은 열량을 얻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불로 요리하면 살균도 되고, 더 영양가 있게 만들 수 있으며, 구근과 채소를 부드럽게 만들 수 있다. 부드러운 먹거리는 씹는 시간을 단축시킨다. 현대의 침팬지는 활동하는 시간의 거의 50%를 씹는 데 소비하는 반면, 인류는 5% 이하만 소비한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원인은 현대의 침팬지처럼 강한 턱 근육을 가졌지만, H. erectus의 상대적으로 작은 턱 근육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불은 인류의 체형에도 영향을 미쳤다. 불을 이용한 음식의 조리는 음식의 씹기와 소화를 용이하게 하여 치아와 턱 크기 및 소화관의 길이를 축소시켰다. 또한 불은 사회적으로 작용하여 종교적 중요성을 가졌고 의식에 통합되었다. 불은 내연 기관 같이 숨은 형태로 산업에 기여하고 있으며, 세라믹에서부터 금속 작업, 핵 산업에 이르기까지 현대의 모든 기술 발달의 토대가 되었다. 

 

                                               National Geographic Korea 유튜브 캡처

20여 년 전부터 전 지구적으로 거대한 산불이 연례행사처럼 발생하여 소중한 생명 희생과 막대한 경제적, 생태적 피해를 주고 있다. 우리나라도 전 지역에서 극도로 건조해진 봄철에 심각한 산불이 매년 발생하고 있다. 최근에 표본적으로 측정한 수목의 수분 함량은 1970년대에 기록을 시작한 이래 가장 낮았으며, 기록적인 이상 기후도 산불 발생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2021년 기준으로 미국 뉴멕시코주의 <카슨 국유림>에서 죽은 소나무의 평균 수분 함량은 10년 전의 75%에서 50%로 감소하였고, 전체적인 관목의 수분 함량 역시 10년 전의 54%에서 39%로 감소하였다. 산불 전문가들에 의하면 삼림의 건조한 수목과 풀들이 산불을 일으키는 ‘연료’ 역할을 한다. 건조한 삼림 자체적으로는 산불이 일어나지 않기 때문에 발화원이 필요하다. 산불 발생 위험 지도 작성을 위해서는 수분 함량과 번개의 강도 같은 조건과 인간의 활동 양식을 추적 조사해야 한다. 재난적 대형 산불의 위험성을 감소시키기 위해 일부 국가에서는 규칙적으로 일정 규모의 숲 태우기를 시행하고 있다. 대형 산불을 예방하기 위한 계획적 태우기를 시행하지 않는 우리나라의 모든 삼림은 조밀한 초목 및 건조한 낙엽 더미로 뒤덮여 있다. 이러한 ‘연료’의 축적이 산불의 발생을 용이하게 한다.

기후변화는 전 지구에 걸쳐 산불을 발생시키는 핵심 요인이다. 식물은 광합성을 행할 때 기공을 통해 이산화탄소를 흡수하는데, 기공이 열릴 때마다 수분을 소실하므로 대기 온도가 높아지면 수분 소실은 더 커진다. 온난해진 날씨는 지상에 떨어진 목재의 수분을 감소시켜 산불이 일어나기 쉬운 ‘바짝 마른 연료’를 만들게 된다. 2021년에 발행된 <미국국립과학원회보> 자료에 의하면, 기후변화는 삼림을 건조하게 만들어 지난 30년 전보다 산불 발생 비율을 거의 2배 증가시켰다. 지구온난화와 가뭄은 산불 발생 기간의 확대와 더 넓은 지역에서의 산불 발생을 지속시킬 것이다. 북반구에서 산불의 빈발은 지구온난화의 단적인 징후이다. 역으로 산불은 지구를 온난화시키는 온실가스를 방출한다. 

산불은 인간의 활동, 자연적 마찰, 전선 절단에 의한 스파크 발생 또는 번개에 의해 시작될 수 있다. 일부 지역에서는 기후변화 때문에 번개가 점차 빈번해지고 있는데, 더운 날씨에 더 자주 발생한다. 2014년 사이언스에 실린 자료에 의하면 기온이 1℃ 상승할 때마다 번개가 발생할 확률은 약 12% 증가할 것으로 예측되었다. 또한 기온 상승은 산불 발생 시기를 확대하고 있다. 인류는 산업화 이전 시기보다 대기의 이산화탄소 농도를 약 50% 증가시켰다. 그 결과, 지구 기온은 지난 세기 동안 1.1°C 상승했으며 21세기 말까지는 약 2.7°C 증가할 것으로 예측된다. 결국, 기후변화는 덥고 건조한 조건 즉, 더 빈번하고 심각한 ‘산불이 나기 쉬운 날씨’를 만든다. 우리나라의 많은 숲은 엄청난 양의 낙엽과 잡목들로 채워져 있어 산불이 일어나기 쉽고 대형화될 수밖에 없다. 

 

                                                       강원도 대형산불  사진 산림청

산불의 약 84%는 인간의 활동으로 발생한다. 지난 20년간 농업 부산물 소각, 방화, 캠프파이어 불씨, 버려진 담배꽁초, 전선 절단 등에 의한 산불은 기후변화와 더불어 산불 발생 시기를 더 확대하고 있다. 산불에 의한 바이오매스 연소는 지구온난화를 일으키는 대기 이산화탄소의 약 30%를 해마다 발생시킨다. 간접적인 기후 관련 산불 요인으로는 온난해진 기온에 의해 이전에는 서식하기 어려웠던 외래 곤충의 유입을 들 수 있다. 이런 종(種) 중 하나가 느릅나무 좀이다. 기후변화는 자연적으로 느릅나무 좀을 죽이는 추운 겨울을 단축하고 있다. 느릅나무 좀은 많은 삼림에서 나무를 죽이고 있으며, 죽은 나무는 산불에 취약하여 산불이 더 빠르고 더 멀리 번지게 한다. 

생태계는 환경 측면과 경제적으로 매우 중요한 자원이다. 산불은 인명 피해를 포함하여 인류의 건강에 심각한 위협이 되고 있으며, 자원과 먹이사슬의 파괴라는 끔찍한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 산불로 인해 발생하는 연기에는 휘발성 유기화합물, 오존을 형성하는 산화질소, 유기입자와 다른 많은 독성 물질이 포함되어 있다. 햇빛에 의한 휘발성 유기화합물과 질소 산화물 사이의 광화학반응은 2차 오염물질인 지상 오존을 생성한다. 산불은 지역적 그리고 지구 차원의 기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많은 양의 이산화탄소와 다른 오염물질을 방출하기 때문에 기후변화에도 영향을 미친다. 

소규모의 산불은 죽은 잎과 나뭇가지들을 깨끗이 치우고, 토양에 영양분을 공급하며 일부 식물 종자의 발아를 돕는 등 생태계 유지에 긍정적 역할을 갖고 있다. 이런 사실을 인식하고, 효율적인 산불 예방 및 소방 대책 수립과 더불어 지역별로 소규모의 계획적 산불 주기를 도입하여 대형 산불의 발생을 차단하는 것도 적극 고려할 필요가 있다. 빈번해진 대형 산불은 기후 되먹임 고리에 악영향을 끼친다. 산불과 그로 인한 탄소의 다량 배출이 기후변화의 진전을 악화시키는 되먹임 고리를 작동시키고 있다. 결국 지구온난화가 더 많은 산불을 일으키고, 더 많은 탄소가 배출되어 또다시 지구온난화를 가속하고 있다. 현재의 인류는 인류와 생태계가 번영할 수 있는 세계를 만들기 위해 기후변화를 어떻게 차단해야 하는지 알고 있고, 지금 바로 실천해야 하는 시점이다.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것이 산불을 예방하는 지름길이며, 이것은 전 지구 차원의 노력으로 가능한 일이다.


김환규 편집기획위원/전북대·생리학

전북대 생명과학과 교수. 전북대 생물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박사학위를 받았다. University of California, Davis 교환교수, 전북대 자연과학대 학장과 교양교육원장, 자연사박물관 관장 등을 역임했다. 저서로는 『생물학 오디세이』, 『생명과학의 연금술』, 『산업미생물학』(공저), 『Starr 생명과학: 생명의 통일성과 다양성』(역서)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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