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통후손과 문화후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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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통후손과 문화후손
  • 조동일 논설고문/서울대학교 명예교수·국문학
  • 승인 2023.04.09 1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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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일 칼럼]

족보에는 부계만 적혀 있어, 어느 조상과 후손이 바로 연결되는 것처럼 보이게 한다. 잘난 분 누가 자기의 몇 대조라고 하면서 뻐길 수 있게 한다. 이것은 알고 보면, 우스운 일이다. 

족보를 믿어도 되는지 의문이다. 그 이유를 가벼운 것부터 들고, 심각한 것으로 나아간다. 첫째 족보를 양자로 잇는 것이 흔한 일이다. 둘째 선조와의 연결을 지어낸 족보가 많다. 셋째 다른 결함이 발견되지 않아도, 부계는 의심스럽고 모계만 전적으로 신뢰할 수 있다.

그뿐만 아니다. 위로 올라가면 조상이 아주 많아진다. 부모는 2인이고, 조부모는 4인이고, 증조부모는 8인이다. 이처럼 한 대 올라갈 때마다 조상의 수가 갑절로 늘어난다. 5대조는 32인, 10대조는 1,024인, 15대조는 32,768인, 20대조는 1,048,576인이다. 

누가 10대조라는 것은 1,024인 가운데 하나, 20대조라는 것은 1,048,576인 가운데 하나라는 말이다. 20대 선조의 후손이라는 것은 1,048,576 분의 1일의 혈통만 지닌다. 그 정도면 0에 수렴한다고 할 수 있다. 

선조와 후손의 관계는 혈통이 아닌 문화로 이어져야, 인정할 만한 의의가 있다. 혈통후손임을 주장하지 말고, 문화후손임을 입증해야 한다. 과거 어느 분이 이룩한 문화의 업적을 알고 이어받으면 문화후손이 된다. 혈통후손인가는 족보에 근거에 두니 위조할 수 있다. 문화후손인가 하는 것은 언행이 말해주므로 판별하기 쉽고, 가짜가 있을 수 없다.

혈통후손과 문화후손은 일치하지 않는다. 혈통후손이라고 자부해도, 문화후손은 아닐 수 있다. 혈통후손은 아니라도, 문화후손일 수 있다. 혈통후손은 선조의 잘못을 합리화해 세상을 속인다. 잘못된 선조는 문화후손이 없다. 훌륭한 선조는 문화후손이 많다. 문화후손의 수가 선조를 평가하는 척도이다. 

문화후손인이 될 수 있는 자격 규정은 있을 수 없다. 누구나 스스로 노력하면, 훌륭한 선조의 자랑스러운 문화후손이 된다. 그 선조의 유산을 이어받아, 널리 이롭게 사용할 수 있다. 혈통후손의 횡포는 적고, 문화후손의 활약이 많은 나라가 좋은 나라이다. 

원효(元曉)는 혈통후손이 있다는 말을 들어보지 못했다. 있다고 해도, 몇 백만 분의 1의 혈통을 물려받는 몇 백 만이다. 시신을 화장해, 유전자 검사로 후손을 찾는 부질없는 짓을 할 수 없으니 다행이다. 혈통후손 때문에 훌륭함이 손상될 염려가 없다. 

혈통후손은 없으면, 문화후손이 방해받지 않고 늘어나 훌륭함을 늘일 수 있다. 의찬(義天), 지눌(知訥), 일연(一然) 등 평생 승려였던 분들은, 혈통후손이 있을 수 없어, 구구한 설명이 필요하지 않다. 그 덕분에, 누구든지 문화후손일 수 있어 아주 좋다.

이런 말을 하는 것은 유학자는 대개 그렇지 않은 것이 불만이기 때문이다. 이름을 댈 필요가 없이 누구나 잘 아는 유학자, 대단하다는 분들은 혈통후손이리고 자처하는 무리가 가로맡아 현창과 숭앙에 앞장서고 있다. 

문화후손이 되면 혈통후손의 들러리가 되고, 감시를 받아야 한다. 마음이 편하지 않아 그만두게 한다. 혈통후손 등쌀에 문화후손이 늘어나지 않고 줄어든다. 혈통후손이 미워 고인에 대해 반감을 가지게 한다. 혈통후손이 적더라도, 많이 설치면 폐해가 크다. 

혈통후손이라고 자처하는 무리는 이름난 선조를 이용해 위세를 부린다. 자기 이익을 위해 선조의 뼈다귀를 우려먹는다. 선조를 현창하고 숭앙한다면서, 선조와는 다른 방향을 나아가 선조를 배신하고 욕보인다. 문화후손 노릇은 하지 않거나 정반대로 해서, 선조의 가치를 훼손한다. 이것은 선조의 불운이고, 불행이다. 

혈통후손이라고 자처하는 무리가 어떤 짓거리를 일삼는가 보자. 선조가 아주 줄여 한 말을 온갖 잡소리로 떠들며 풀이해, 소음의 진원지가 거기 있다고 오해하도록 한다. 조심하는 태도로 겸손하고 성실하게 전개한 논의를 절대적인 것으로 만들어, 우상숭배의 폐단을 빚어낸다. 대등론자이고자 한 선조를 차등론의 상위에 올려놓는 것이 가장 큰 잘못이다. 이렇게 하는 데 관청이 도움을 주고, 나라가 돈을 대니 가관이다.

崔漢綺는 근래의 학자인데, 혈통후손이라고 나서는 무리가 없는 것이 희한하다. 특정인이 자기네 소유라고 하지 않으므로, 만인 공유의 자산이라고 분명하게 말할 수 있다. 존칭에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된다. 누구나 안심하고 다가가, 마음 놓고 문화후손이 될 수 있다. 어떻게 이해하고 논의하든 자유이다. 장애 요인이 없어, 효용이 나날이 커진다.

최한기(崔漢綺)는 현창이나 숭앙의 대상이 아니고, 학문 연구를 잘하도록 도와주기만 한다, 애써 노력해 많은 저작을 남긴 것이 뜯어먹을 혈통후손은 없고 문화후손은 날로 늘어나니, 아주 잘한 일이다. 고금학문 합동작전의 동반자로 삼는 것이 이용을 가장 잘하는 방법이다. 처음에는 최한기의 학문을 말하다가 표 나지 않게 논자의 학문으로 넘어가는 것은 슬기롭다. 부정을 통해 넘어설 수도 있다.

혈통후손이라고 자처하는 무리는 배타적이고 폐쇄되어 있다. 그러면서 내부에서 지체나 서열을 가리면서 다툰다. 문화후손은 개방되어 있으며, 서로 포용한다. 여럿이 겹칠 수 있고, 국경을 넘어간다. 혈통후손은 차등론, 문화후손은 대등론을 기본 원리로 한다. 

대등의 길로 가려면 혈통을 존중하는 폐풍을 단호하게 물리쳐야 한다. 잘못된 과거를 청산하고, 새 출발을 해야 한다. 새 출발을 좋은 전례를 되살려 해야 한다.

 

조동일 논설고문/서울대학교 명예교수·국문학

서울대학교 불어불문학과와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으며 같은 대학 대학원 국어국문학과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계명대학교, 영남대학교, 한국학대학원 교수를 거쳐 서울대학교 교수를 지냈다. 서울대 명예교수이자 학술원 회원으로 계명대학교 석좌교수를 역임했으며 현재 중국 연변대학 명예교수이기도 하다. 주요 저서로 <서사민요연구>, <한국문학통사>(전6권), <우리 학문의 길>, <인문학문의 사명>, <소설의 사회사 비교론>(전3권), <대등한 화합: 동아시아문명의 심층> 등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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