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테의 눈으로 본, 생동하는 자연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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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테의 눈으로 본, 생동하는 자연의 힘
  • 이명아 기자
  • 승인 2023.04.09 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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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괴테의 식물변형론 |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지음 | 이선 옮김 | 이유출판 | 168쪽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파우스트』 등 불멸의 작품을 남긴 요한 볼프강 폰 괴테. 문학가로서 이룬 눈부신 업적 때문에 가려진 그의 또 다른 모습이 여기 있다. 바로 자연과학자의 면모이다. 대학 시절부터 문학 외에도 광학과 해부학에 관심이 많았던 괴테는 “마흔이 되기 전에 공부 좀 해야겠다.”라며 이탈리아로 떠난다. 이 여행에서 낯선 기후와 지리, 이국적인 삶과 예술을 접하고 새로운 세계에 눈을 뜨게 된다. 특히 빛과 식물에 깊은 관심을 기울여 1790년에 이 책『식물변형론』을 출간했다. 이 책에는 육아일기를 쓰듯, 식물의 성장 과정을 기록하는 괴테의 자상한 모습이 오롯이 담겨 있다.

이 책은 괴테가 형태학적 관점으로 일년생 식물의 성장을 세심하고 끈기 있게 관찰한 기록이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화하는 식물의 모습을 경이로운 시선으로 바라보며 자상하게 써 내려간 문장들은 대자연 앞에 겸허했던 자연과학자 괴테의 면모를 드러낸다. 식물을 사랑했던 괴테는 스트라스부르대학에서 식물학 강의를 청강하며 큰 관심을 보였다. 그는 예나에서 식물학의 스승이라 할 수 있는 칼 바취 교수와 함께 식물과 환경의 관계를 탐구하며, 다종다양한 식물에 공통으로 내재된 가장 근본적이고 단순한 원리를 찾고자 했다. 이 책은 그 출발점이자 결과물로서, 괴테는 매우 조심스런 태도로 자신이 발견해낸 자연의 비밀을 들려준다.

책은 총 123절의 짤막한 글들로 이루어져 있다. 괴테는 식물의 생장에 따른 형태 변화를 논하면서 변형의 양태를 세 가지로 구분한다. 규칙적인 것, 불규칙적인 것, 우발적인 것. 이 책에서는 곤충 등의 외부적 요인에 의한 우발적인 변형은 논외로 하고, 규칙적인 변형과 일부 불규칙적(기형적)인 사례를 다루기로 하며, 일년생 식물로 그 범위를 한정한다. 

괴테는 씨앗의 발아 순간부터 식물의 생애를 관찰하기 시작한다. 떡잎이 자라나 잎과 유사한 형태로 변모하는 과정, 줄기에 첫 마디가 생기고 가지가 자라나는 과정이 슬로우비디오처럼 묘사된다. 누에콩을 통해 떡잎과 첫 마디를, 소나무속 식물을 통해 줄기 둘레에 잎이 생겨나는 모습을, 부채 야자를 통해 잎이 복잡한 형태로 성장하는 사례 등을 들려준다. 잎은 이산화탄소를 흡수해 식물 내부의 수분과 결합시키며 양분을 만든다. 그리고 이 양분을 줄기로 보내 새로운 눈을 만들고 잎을 발달시켜 간다. 괴테는 이 과정을 서술하며 자연이 바야흐로 다가올 꽃의 시대를 준비하고 있다고 말한다.

싹이 트고 줄기와 잎, 가지가 뻗어나가 성장한 식물은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으며 생식 과정에 들어간다. 꽃은 모양과 구조가 줄기나 잎에 비해 복잡하고 형태 또한 다양하다. 괴테는 이 과정에서 확장과 수축이 반복되는 리듬을 발견한다. 식물은 줄기와 가지를 뻗으며 확장하고, 크게 펼쳐졌던 잎은 꽃받침이 되기 위해 수축한다. 그리고 다시 꽃잎으로 확장하고, 생식 기관(수술과 암술)으로 다시 수축하고, 열매로 다시 확장한다. 이는 상호적인 개념으로, 꽃과 열매는 줄기의 수축이며, 줄기는 꽃과 열매의 확장이라는 것이다. 또한 부분적인 요소들이 서로 맞물려 일체를 이루는 현상, 즉 문합이 이루어지기도 한다. 잎 속의 관다발들이 그물 같은 입맥을 이루는 것, 꽃받침을 이루는 잎들이 밀착해 종 모양을 이루는 것, 그리고 수술과 암술이 만나 ‘정신적 문합’을 이루는 것이다. 괴테는 모든 식물 개체가 성장하는 매 순간마다 자연이 일일이 관여하며 손길을 미치고 있음을 깨닫는다.

괴테는 린네를 비롯한 당대 식물학의 연구 결과를 리뷰하며, 자신만의 원형식물 아이디어를 통해 식물 변형의 법칙과 유형을 찾고자 했다. 린네의 『자연의 체계』를 비판적으로 읽은 괴테는 그를 존경하는 한편 생물들을 분류학적 대상으로 바라보는 관점을 비판한다. 그리고 자연물을 합리적 이성만으로 파악하려는 관점보다는 자연과 생명에 대한 무한한 경이로움에 감탄하는 인문학적 시선을 견지하고 있다. 또한 그의 탐구는 딜레당트 차원을 넘어 과학적으로 유의미한 발견을 담고 있다. 특히 ‘꽃은 잎이 변형된 형태’라는 그의 발견은 200년이 지나 분자생물학적 연구를 통해 입증되었으며, 확장과 수축, 밀집과 문합의 원리는 알면 알수록 더욱 신비로운 자연과 생명의 숨결을 느끼게 해 준다.

괴테는 세계를 폭넓게 바라보되, 인식의 깊이 또한 심원하여 늘 총체적인 현상, 즉 ‘신성의 법칙’을 추구했다. 그는 이를 ‘신조차 바꿀 수 없는 법칙’이라 했는데, 과연 위대한 낭만주의자의 말씀이라 하겠다. 이 법칙을 찾는 과정에서 괴테는, 부분과 전체를 생성적인 관계로 파악하고 그 중심에 ‘자연의 본능’이 자라한다고 보았다. 이것이 바로 생명체의 존재 원리라는 것이다. 이 대목에서 자연과학이냐 인문과학이냐를 따지는 분과학문의 편협성은 허물어지고 만다. 230여 년 전에 발표된 『괴테의 식물변형론』을 오늘 다시 읽는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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