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는 정말 선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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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는 정말 선한가?”
  • 이명아 기자
  • 승인 2023.04.09 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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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신이 모르는 민주주의: 자본주의와 자유주의의 불편한 공존 | 마이클 샌델 지음 | 이경식 옮김 | 와이즈베리 | 440쪽

 

정교한 논리와 지적 대화로 ‘정의’, ‘공정’ 열풍을 일으켰던 마이클 샌델 하버드대 교수가 이번에 꺼내든 화두는 ‘위기의 민주주의’다. 그는 생생하고 치열한 토론의 한복판으로 독자들을 끌어들이며 삶의 질서에 관한 불편한 의문을 제기한다. “민주주의는 정말 선한가?” 법 앞에 모두가 평등하며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보장하는 민주주의 체제 아래 살아가는 사람들은 이런 의문에 도리어 의문이 들 것이다. 이에 샌델은 반박하기 힘든 일침을 놓는다. “그렇다면 자유와 풍요 속, 더 큰 상실감을 느끼는 이유는 무엇인가?”

민주주의는 사실 새롭지 않은 키워드다. 오래됐을 뿐만 아니라 정치권의 남발로 인해 듣기만 해도 피로해지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런데 왜 샌델은 지금 이 순간, 다시 ‘민주주의’를 꺼내든 것일까? 이 책은 1996년 미국에서 출간된 초판 《민주주의의 불만(Democracy’s Discontent)》을 4반세기 만에 전면적으로 고쳐 쓴 개정판이다. 

샌델은 초판 이후 민주주의의 불만이 훨씬 더 예리하고, 한층 더 원한이 깊으며, 심지어 치명적으로 퇴보했다고 우려를 표하며 이야기를 시작한다. 기업과 엘리트 지배층은 정치후원금과 로비스트 집단을 동원해 자신들에게 유리한 규칙을 만들고, 시민들이 부채에 허덕이게 방관한다. 소수의 거대 기업은 주요 산업을 장악해 물가를 올리고 노동자들의 불평등을 조장하며, 소셜미디어는 허위 정보와 가짜 뉴스를 여과 없이 내보내며 대중의 주의력을 흔들고 개인정보와 사생활을 탈취해간다. 문제는 이게 끝이 아니다. 좌파를 지지하는 사람과 우파를 지지하는 사람들, 도시에 사는 사람과 지방에 사는 사람들, 학위를 가진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 부유층과 서민, 심지어 여성과 남성은 물론 세대가 전부 분리된 채 살아가며 제각기 출처가 다른 뉴스를 접하고 다른 사실을 믿으며 자기와 의견이 다른 사람을 거의 만나지 않는다.

이처럼 자본주의적 폭력과 너덜너덜해진 사회적 유대감에서 파생된 경제적·정치적 양극화는 미국에만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다. 한국사회에서도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샌델은 우리가 처한 이 곤경이 밀접한 연결고리로 민주주의를 무력하게 만든다고 주장한다. 시의적이고도 심층적인 ‘민주주의 토론’이 긴요한 때인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은 민주적 통제를 벗어난 ‘경제 권력’이 우리 삶에 초래하는 결과에 주의를 기울이는 데 익숙하지 않다. 자신을 시민으로 생각하기보다 소비자로 인식하는 경향이 크기 때문이다. 단적인 예로, 대기업이 주요 산업을 독점해나가는 것을 목격할 때 시민사회의 건전성이나 공정성이 훼손될까 우려하기보다 재화의 가격이 오를 것을 걱정한다. 은행의 예금 수수료와 금융사의 신용카드 수수료가 오르고, 항공료가 오르는 것에 더 긴장하고 있다. 지금까지 경제와 연관된 보편적 토의는 ‘파이를 어떻게 크게 만들까’와 ‘파이를 어떻게 분배할까’를 두고 이뤄졌으며, 그 속에서 우리는 발언권을 가진 시민이 아니라 소비자이자 노동자로 전락해버렸다.

샌델은 새로운 챕터에서 1990년대부터 현재까지 민주주의와 자본주의가 불편한 공존을 이루게 된 서사를 집요하게 추적해나간다. 빌 클린턴부터 조 바이든 시대까지 미국의 주요 경제·금융 정책과 거대한 분기점을 이룬 정치사상의 변천사를 바탕으로 오늘날 사람들이 불만을 넘어 분노를 느끼고 있는 민주주의의 근본적인 문제와 그 해법을 모색하기 위함이다. 단순히 미국 정치경제사를 열거하는 방식을 넘어 논쟁자의 태도로, 경제 발전 과정에서 시민의식이 경제와 어떤 관계를 형성해왔는지를 날카롭게 파헤친다.

경제 성장과 공정한 파이 분배 역시 중요한 과제지만, 그 이상으로 시급한 사실은 경제를 만드는 과정의 이해당사자로서 시장의 지배에 휘둘리는 신자유주의적 군중이 아닌 시민의식을 지닌 ‘시민’으로 각성해야 한다는 점이다. 민주주의의 불만을 걷어낼 동력은 바로 시민에게 있기 때문이다. 이는 일반적인 경제 담론보다 덜 기술적이지만 더 정치적인 일이다. 샌델은 이렇듯 폭넓은 시민성 차원의 경제 논쟁 전통을 ‘시민의식의 정치경제학(political economy of citizenship)’이라 부르며, 이것이 우리가 모르는 민주주의의 핵심이라고 강조한다.

정치적 양극화, 부의 불평등, 기업 독과점, 세대 갈등, 능력주의… 무수한 문제들을 양산한 지금의 민주주의가 다시 활력을 찾고 제대로 기능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경제는 무엇을 ‘위해’ 존재해야 하는가? 국가는 주택, 교육, 기술 가운데 어디에 더 많이 투자해야 할까? 시장의 논리로 모두를 위한 공동선(common good)을 되살릴 수 있을까? 승자와 패자만 존재하게 만드는 능력주의는 해소될 수 있을까?

샌델은 이 답에 접근할 수 있는 두 가지 질문을 건넨다. 최근 수십 년 동안 이어진 기술 관료주의 정치에 가려졌던 논제다. 하나는 ‘경제가 민주적 통제에 순응하게 하려면 어떻게 경제를 재구성해야 할까?’이고, 다른 하나는 ‘양극화를 누그러뜨리고 효과적인 민주시민으로 거듭날 수 있게 하려면 어떻게 공적 삶을 재구축해야 할까?’이다. “경제적 강자가 사회에 책임을 지게 만드는 것과 시민의식을 활성화하는 것, 이 두 가지는 전혀 다른 정치적 작업으로 보일 수도 있다. 전자는 권력과 제도에 관한 것이고, 후자는 정체성과 이상에 관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 책의 중심 주제는 두 개의 작업이 연결돼 있다는 것이다.”

샌델은 불만을 넘어 붕괴 직전에 이른 민주주의를 분명하게 진단하는 동시에, 이 중대한 담론의 장으로 우리를 ‘시민’ 자격으로 초대한다. 모두의 참여를 이끌기 위해 흥미로운 질문들을 던지고, 구체적인 맥락을 설명하며 시민으로서 우리 스스로 적합한 결론을 찾아나가도록 독려하고 인도한다. 

마이클 샌델이 아름답게 서술하는 미국의 정치경제는 시민적 공화주의의 비극적인 상실 이야기이다. 자유는 정부로부터의 자유가 아니라 자치의 능력, 즉 유일하게 자유를 가능하게 해주는 자치의 능력에 관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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