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디 짧은 말로 이치의 핵심을 찌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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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디 짧은 말로 이치의 핵심을 찌르다
  • 이명아 기자
  • 승인 2023.04.09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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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균 척독 | 허균 지음 | 박상수 옮김 | 지만지한국문학 | 332쪽

 

『홍길동전』의 작가이자 허난설헌의 동생인 허균의 척독(尺牘)을 엮은 책이다. 척독이란 일반 서간문보다 훨씬 짧은 편지 형식으로 명나라 초기부터 유행했는데, 허균은 이 척독을 우리나라 최초로 하나의 문학 장르로 인식하고 이를 조선 문단에 널리 전파했다. 유성룡, 이덕형, 이항복, 권필, 한석봉, 서산 대사, 사명 대사, 이매창 등 정치계 문학계 예술계를 가리지 않고 총 68명과 주고받은 176통의 척독을 모두 소개한다. 친한 이들에게 격식을 차리지 않고 솔직한 마음을 드러낸 이 편지들을 통해, 소설에서는 볼 수 없었던 인간 허균을 만날 수 있다.

척독이란 편지, 즉 서(書)의 다른 이름이다. 편지는 기록한 재질에 따라 이름이 다른데 비단에 쓴 것을 ‘첩(帖)’, 대쪽에 쓴 것을 ‘간(簡)’, 나무쪽에 쓴 것을 ‘독(牘)’ 또는 ‘찰(札)’, 종이에 쓴 것을 ‘전(箋)’, 봉투를 사용한 것을 ‘함(函)’이라 했다. 척독이란 명칭 역시 본래는 종이 대신 석 자 정도 되는 목판에 옻칠해 글을 쓴 데서 비롯했다. 그 유래는 오래되었으나 하나의 문체로 인정받은 것은 명대(明代)에 이르러서다. 명나라 하복징(賀復徵)은 척독이란 한 폭의 종이에 진정을 요약하는 글로 간략함을 말한다고 정의했다. 명나라 진무인(陳懋仁)은 수간(手簡), 소간(小簡), 척독은 모두 ‘간략하다’는 뜻이며, 진한(秦漢) 이래 친지들 간에 오가며 문답하는 데 쓰인 글이라고 했다. 이후 만명(晩明)에 이르러 척독의 창작이 보편화됨에 따라 점차 문장 분류의 명칭으로 굳어지게 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17세기부터 서서히 일반 서신과 척독을 구별하기 시작했는데, 그 주역이 바로 허균이다. 허균은 척독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명나라 문인들의 척독을 모아 『명척독』을 엮었으며, 명나라의 척독 선집을 두루 읽고 자신도 적극적으로 척독을 쓰고 주위에 전파했다. 허균의 문집 『성소부부고(惺所覆瓿藁)』에서는 ‘서’와 ‘척독’을 다른 문체로 구분해 엮었는데, 이는 이후 사대부들의 문집 편차 방식의 기준이 되었다. 허균은 척독의 단사(單詞)와 척언(斥言)으로 이치의 핵심을 곧바로 지적해 사람의 뜻을 설득하면서도 뜻은 말 밖에 있다고 했다. 또한 척독은 진정(眞情)의 표출을 통해 풍부한 서정성을 담고 있으며, 일상생활의 실용적인 문장임과 동시에 예술 영역에서 문학성을 가지고 있다고 본 것이다.

척독은 편지글이다. 따라서 이 글에는 작가의 내면이 고스란히 나타날 뿐만 아니라 주변 인물과의 교유 관계도 쉽게 살필 수 있다. 이 책에는 허균이 총 68명에게 보낸 176통의 척독을 수록했다. 그 수신인으로는 유성룡, 이항복, 이덕형 등의 정치인, 정구, 이수광, 권필 등의 문학자, 한석봉, 이정, 이매창 등의 예술가, 서산 대사, 사명 대사, 중관 대사 등의 불교계 인사, 기생 이매창까지 다양한 계층의 유명인들을 포함하고 있어 허균의 폭넓은 고유 관계는 물론, 당대 사회의 다양한 모습과 사건들을 파악할 수 있다.

허균의 척독은 대부분 단문이다. 짧은 것은 17자이고, 가장 긴 것도 161자에 불과하니, 지금으로 치면 블로그나 페이스북이 아니라 트위터인 셈이다. 일반적인 서간문의 형식을 파괴하고 짧은 편지 속에 간결미와 함축미뿐 아니라 서정성까지 담은 그의 척독에서는 독창성과 예술성이 돋보인다. 반역죄로 불행하게 생을 마감했지만 『홍길동전』을 비롯한 뛰어난 작품들을 남기고, 과거 급제 후에도 문신들을 대상으로 한 시험에서 몇 차례나 장원을 한 천재 문인 허균의 독특한 개성과 인간적인 매력을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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