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역사적 인식론 계보의 주역 조르주 캉길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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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역사적 인식론 계보의 주역 조르주 캉길렘
  • 이명아 기자
  • 승인 2023.04.09 1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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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르주 캉길렘 | 도미니크 르쿠르 지음 | 박찬웅 옮김 | 그린비 | 176쪽

 

이 책은 프랑스의 역사적 인식론 계보의 주역 조르주 캉길렘의 철학과 삶을 그의 제자인 도미니크 르쿠르가 역사적 인식론의 시각으로 엮어낸 것으로 프랑스 철학의 현주소 이해에 적절한 입문서 혹은 연구서라 할 수 있다. 또한 이 책을 통해 프랑스 학계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으나 한국에는 제대로 소개되지 않았던 조르주 캉길렘을, 학자로서, 한 인간으로서 격정적으로 살아간 그의 철학을 깊이 이해할 수 있다.

프랑스의 역사적 인식론 계보의 주역 조르주 캉길렘이 프랑스 학계에 미친 영향력과 입지에 비하면 한국에 소개된 그의 철학은 미미하기 짝이 없다. 저자 도미니크 르쿠르 역시 프랑스 인식론의 대가 중 한 명이자 생전에 캉길렘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한 제자였다. 가스통 바슐라르로부터 캉길렘을 거쳐 미셸 푸코에 이르는 프랑스 인식론의 계보를 지시하는 용어인 ‘역사적 인식론(Epistemologie historique)’이라는 용어를 최초로 제안한 이가 바로 르쿠르였다. 그런데 르쿠르가 본인의 발상에만 근거하여 이 용어를 제시했던 것은 아니다. 르쿠르는 자신의 스승이었던 캉길렘과 이 용어의 적법성에 대한 논의를 거친 후에야 이 용어를 제시할 수 있었다. 이에 따라 ‘역사적 인식론’이라는 용어의 앞에는 ‘르쿠르가 제안하고 캉길렘이 승인한’이라는 수식어가 관용적으로 따라붙는다. 

저자가 이 책을 쓰며 가장 주의를 기울이는 사항은 캉길렘의 철학을 읽는 자기 의도의 현재성을 입증하는 것이다. 역사적 인식론은 지식 비판의 기획이 현재적 문제와 관련되었을 때에만 유의미하다고 간주한다. 저자는 입문서를 집어 드는 독자라면 누구나 마음속에 품고 있을 법한 질문, 즉 “캉길렘의 철학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염두에 두고 이 책을 쓰지 않았다. 이 책은 오히려 다음과 같은 질문에 대한 답이다. “캉길렘의 철학을 왜 읽어야 하는가?” 

캉길렘의 철학자로서의 경력은 상당히 굴곡져 있다. 프랑스 학계에 캉길렘을 의철학자로 각인시킨 『정상적인 것과 병리적인 것』은 그의 나이 39세에 출판된 저작이다. 이후 캉길렘은 『생명에 대한 인식』을 통해 자신의 철학적 성찰의 대상 영역을 생명과학 전반으로 확장시킨다. 이후 『17, 18세기 반사 개념의 형성』에서 그는 바슐라르를 이어 프랑스의 역사적 인식론 계보의 주역으로 등장한다. 60년대 분자생물학이 과학적 성과를 거둠에 따라 생명에 대한 새로운 관점이 요구되었을 때, 이에 부응하여 캉길렘은 앞서 집필한 저서들에서 개진했던 일련의 고찰에 대한 대대적인 재고 작업을 시작한다. 이러한 작업의 결과는 그의 마지막 저서 『생명과학의 역사에 나타나는 이데올로기와 합리성』에 일부 반영되어 있다.

인간 캉길렘의 삶도 철학자로서의 경력에 못지않게 많은 변동이 있었다. 청년 캉길렘은 1차 대전을 겪은 스승들 밑에서 수학했다. 이 시절 캉길렘의 소논문이나 글들에는 그의 저작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정치적 논조가 강하게 드러난다. 캉길렘이 의학박사 학위논문인 『정상적인 것과 병리적인 것』을 집필하던 당시는 2차 대전이 한창이었다. 캉길렘은 논문을 집필하는 학자로서의 삶 이면에서 레지스탕스로서의 삶을 이어 나갔다. 

그가 전임자인 바슐라르에게서 소르본 대학 교수좌를 이어받은 것은 의외의 일이었다. 바슐라르가 정식화한 역사적 인식론을 계승하고 심화하면서도 비판하는 것은 꽤나 갑작스럽게 그에게 주어진 일이었다. 이 모든 와중에 캉길렘은 철학 교사로서의 삶, 교육부 총감으로서의 업무도 이어 나갔다. 그에게 수업을 들었던 학생들의 회고와, 교육부 총감으로서 철학 교육이 무엇인지에 대해 논한 글들에 그가 얼마나 정력적으로 자신의 삶을 이끌어 나갔는지가 잘 드러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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