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사람들은 민주주의자를 자임하면서, 또 민주주의를 제한하려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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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사람들은 민주주의자를 자임하면서, 또 민주주의를 제한하려 하나
  • 이현건 기자
  • 승인 2023.04.09 11: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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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유주의 이전의 민주주의: 민주주의는 어떻게 자유주의 없이도 다양성을 지키며 번영하는가 | 조사이아 오버 지음 | 노경호 옮김 | 후마니타스 | 448쪽

 

오늘날 현대사회에서 민주주의는 어떤 정치적 권위체의 정당성을 보증하는 거의 유일한 하나의 명칭으로 자리를 잡고 있다. 즉, 오늘날 거의 모든 나라들은 스스로를 민주주의 국가라 부른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자신의 정치체를 단순히 ‘민주주의’라고만 부르는 국가들은 거의 없다. 다양한 가치와 결합되어 있거나, 특수한 시·공간적 제약을 받고 있다. 이런 현실은 역설적이다. 모두 민주주의를 자임하지만, 모두 순수한 민주주의는 거부하거나, 다른 가치 체계와 섞으려 하거나, 무언가를 통해 한정/제한하려 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여기에는 분명 철학적, 역사적 이유들이 있다. 예컨대, 민주주의는 평등을 가장 중요한 가치로 삼고 있기에,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는 다수의 폭정(전제)으로 전락하거나, 부자들을 증오하고 개인의 재산권을 인정하지 않는 가난한 사람들의 우중 정치로 타락할 수 있다는, 그래서 ‘자유민주주의’라는 용어에서처럼, ‘자유주의’를 통해 민주주의를 제한해야 한다는 것이다. 과연 그런가. 이런 흐름에서 우리가 간과한 것은 없을까? 또는 우리가 거꾸로 민주주의를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자유주의 정치 이론가들은 자유주의 없는 민주정을 마치 루소가 꿈꾼 하나의 일반의지 혹은 무제한적 다수결주의에서 영감을 받은 것으로, 근본적으로 반자유주의적인 이데올로기로 그린다. 하지만, 저자는 그렇게 보지 않는다. 그는 순수한 다수결주의가 충분히 상상해 볼 만한 정치의 한 형태이긴 하지만, 그것은 민주정의 타락한 형태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이는 결코 하나의 원형적이고 정상적이며 건강한 정치체제의 유형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나아가, 저자는 자유주의적 민주주의자들이 옹호하는 가치는 민주정 자체로도 충분히 보장될 수 있으며, 그들이 악몽처럼 여기는 비자유주의적 결과들이 민주국가에서 도래하지 않을 것임을 이 책을 통해 보여 준다.

그렇다면, 자유주의 이전의 민주주의는 어떤 의미였을까? 그 민주주의는 오늘날 우리의 삶에 어떤 결과를 가져왔을까? 이 책은 역사와 정치 이론의 결합을 통해 시민들의 집단적이고 제한된 자기 통치(자치)라는 민주주의의 핵심 의미를 복원하고 있다. 저자에 따르면, 자유주의가 등장하기 이전 고대 아테네에서 민주주의(원초적 민주정)는 많은 사람들이 오늘날 우려한 것과 같은 다수의 횡포가 아니라 시민에 의한 제한적 통치를 의미했다. 이는 아테네의 법 그리고 공동체의 일에 참여해야 한다는 행동 양식상 규범 덕분에 민주정의 조건인 정치적 자유, 정치적 평등, 시민적 존엄이 지속될 수 있었다. 특히, 이 ‘자유’(원하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고), ‘평등’(동일한 가치의 발언권과 표를 행사하고), ‘존엄’(상대를 어린아이로 취급하지 않고 나와 동등한 성인 시민으로 대하는 것)이라는 민주정의 조건들은 인민이 자신의 ‘권력’(kratos)을 행사하는 데에 제약 조건이 되었다.

실제로 아테네 정치사에서 인민이 정치적 권력을 행사할 때 거기에는 항상 입법 절차를 준수하도록 하는 법률적 제한이 있었고, 인민은 그런 제한을 잘 지킬 수 있다는 인식이 자리 잡아 왔다. 오늘날 사람들은 인민의 권위가 법률에 의해 제한되어야 하고, 또 제한될 수 있다는 인식을, 자유주의적 민주정을 자유주의 이전의 민주정과 구별하는 기준 가운데 하나로 여기지만, 입법적 권위에 대한 법률적 제한은 고대 그리스에서부터 이미 이론상으로나 현실 속에서 잘 발달해 왔다. 

이 책에서 저자의 주장은 두 가지이다. 첫 번째는, 고대 그리스에서 자유주의적이지 않은 민주주의가 존재할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여러 세대에 걸쳐 번성했음을 보여 준다. 그리고 이를 통해 모든 민주주의가 생존하기 위해서는 현대의 자유주의적 가치를 따라야 한다는 주장은 무효임을 밝힌다. 두 번째로, 저자는 안전하고 번영하며 제3자의 통치 없이 자유롭게 살고자 하는 개인들이 설립한 가상의 사회인 ‘데모폴리스’에 기반한 사고실험을 제시하며, 이를 통해 고대 아테네 민주주의를 넘어 오늘날에도 민주주의가 그 원초적 형태로 어느 정도로나 작동할 수 있는지를 보여 준다.

시민의 존엄성은 성인 시민 누구나 정치적 참여에 충분히 가치 있는 존재로 인정받는 것을 의미하며, 이 같은 인정은 서로 다른 잠재적 이해관계를 가진 상호 의존적인 개인들의 사회적 균형으로 이해되는 민주주의의 기본 조건이다.

특히 여기서 주목해야 할 지점은, 존엄성의 수직적 차원과 수평적 차원이다. 우리는 서로를 존엄하게 대해야 하며, 공직자 역시 존엄하게 대우받아야 한다. 마찬가지로, 힘 있는 공직자나 힘 있는 개인이 시민을 열등한 존재로 취급하는 것은 굴욕감을 주고, 시민을 어린아이처럼 무능력한 존재로 간주하는 것은 동료 시민의 존엄성을 침해하는 것이다. 시민은 책임감 있는 성인이며 그에 걸맞은 대우를 받아야 하며, 여기에는 위험한 선택을 할 수 있는 기회도 포함된다. 이런 민주주의적 가정 위에 설립된 데모폴리스는 시민 개개인의 존엄성을 보장해야 한다는 민주주의적 명령에 따라, 타인의 존엄성을 희생하여 개인의 자유를 극대화하고 약자의 권리를 박탈하려는 극단적인 우파 자유주의자들과, 불평등의 모든 흔적을 없애고 시민을 어린애 취급하려는 극단적인 좌파 평등주의자들에 맞서 중간 지점을 찾고자 노력한다.

저자는 시민적 존엄성이라는 개념에 기반한 데모폴리스에서의 통치 방식을, 현대 민주주의에서의 기술 관료적, 엘리트적, 지식 기반 통치 방식과 대조한다. 이를 통해, 우리는 민주주의가 한정되고 규제되어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진정으로 제한하고 규제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들이 선호하는 통치 방식은 무엇인지, 또한 그런 경우, 우리는 그런 통치 체제를 과연 민주주의라 부를 수 있는지 진지하게 고민하게 된다. 

오늘날 자유주의적 민주정(자유민주주의)은 커다란 위험에 봉착해 있다. 그러다 보니 오늘날 사람들은 ‘자유주의’를 모욕적인 의미로 사용하기도 한다. 자유주의란 한편으로 (주로 좌파에게) 엘리트주의, 글로벌리즘, 약탈적 자본주의를 연상시킬 뿐이고, 다른 한편으로 (주로 우파에게) 현실에 안주하는 세계시민주의, 다양성을 다양성만으로 찬양하는 태도, 전통적 가치를 모두 일소해 버리려는 사상에 지나지 않게 되었다. 

자유주의 이론가들은 오늘날의 상황을 보며, 민주정에 대한 혐오와 절망, 그리고 지식 기반 체제를 옹호하는 것으로 대응하고 있다. 시민들의 참여는 불필요한 비용을 초래하기에 최소화해야 할 비용으로 치부되며, 통치와 공적 권위는 잘 교육된 유능한 엘리트들의 손에 맡겨져야 한다는 것이다. 나아가 민주주의를 포퓰리즘과 동일시하면서, 민주주의의 문제점과 오류, 잘못된 결정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저자는 이런 흐름에 대해, 시민들이 스스로 통치할 수 있으려면 발언과 결사의 자유, 정치적 평등과 시민적 존엄이 꼭 마련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우리가 인정할 경우, 민족주의적 포퓰리스트들은 민주정의 이름을 참칭한다 하더라도, 그들이 만들려는 정치체는 민주정이 될 수 없다고 지적한다. 또한 민주주의는 다른 형태의 정치와 마찬가지로 무오류하지 않으며, ‘완벽한’ 결과를 무한히 제공할 수 있는 능력으로 측정되어서는 안 된다고 지적한다. 민주정치에서 완벽을 요구하는 것은 충족할 수 없는 기준이며 이 같은 기준은 거꾸로 ‘국민’ 전체를 어린애 취급하며, 시민이 아닌 더 높은 곳의 의사 결정권자에게 의존하는 존재로 치부하는 것을 정당화할 뿐임을 지적한다.

물론 저자는 원초적 민주정이 현대에도 즉각 실천될 수 있다고, 또 그래야만 한다고 주장하지는 않는다. 나아가, 원초적 민주정이야말로, 우리가 알고 있는 자유민주주의, 사회민주주의 등등보다 우월한 형태라고 주장하지도 않는다. 다만, 저자는 원초적 민주정을 통해, 우리는 민주주의를 통해 우리가 하려고 하는 것, 민주주의가 가장 잘하는 것이 무엇이며, 반대로 자유주의를 비롯해 도덕적 가치에 기반한 다양한 형태의 이념들이 민주주의에 기여할 수 있는 점은 무엇인지, 그러나 덧붙일 수 없는 것은 또 무엇이며, 무엇이 민주주의를 위태롭게 할 수 있는지 세심히 따져 봐야 한다고 지적한다.

사람들은 흔히 자유주의를 통해 민주주의를 제약하기 위해서는 자유주의의 모든 가치 체계를 하나의 묶음으로 일괄 받아들여야 한다는 식으로 이야기한다. 사적 재산의 절대적 보호, 시장의 무제한적 자유 등등. 하지만, 우리는 자유주의가 민주정체에 긍정적으로 기여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구분해서, 자유주의의 가치를 선별적으로 선택해야 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어쨌든 우리는 민주정체에서 살아가고 있으며, 그 외 다른 어떤 정체도 자신의 정당성을 민주정체만큼 자임하거나 주창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물며, 자유주의는 그 자체로 하나의 정치체가 될 수 없는 수많은 한계가 있지 않은가. 이 점에서 원초적 민주정은 비자유주의적 시민들과 충분히 양립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자유주의적 시민들과도 충분히 양립할 수 있다. 그것이 양립할 수 없는 것은, 민주정을 참칭하는, 민족주의와 포퓰리즘을 등에 업는 기회주의자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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