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사랑한 대표시부터 내밀하고 진솔한 일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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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사랑한 대표시부터 내밀하고 진솔한 일기까지
  • 이현건 기자
  • 승인 2023.04.09 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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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디 에센셜 김수영 | 김수영 지음 | 민음사 | 476쪽

 

2021년은 김수영 시인이 태어난 지 100년이 되는 해였다. 그러나 다만 숫자가 말해 주는 시간이 고전을 증명하는 것은 아니다. 김수영은 과거에 썼으나 미래를 썼으며, 자신을 썼으나 시대를 썼다. 현재의 우리는 김수영의 시간을 통해 우리의 시간을 수정하거나 상상한다. 그것이 김수영이 한국문학의 고전이라는 증거일 것이다.

이 책은 우리가 널리 알고 있지만 자세히 알지 못했던 김수영의 세계와 그의 세계를 엿볼 수 있는 작품을 한데 담은 ‘김수영 다이제스트’다. 교과서에 수록되며 필독 작품으로 알려진 시와 대중에 널리 알려져 있지 않으나 김수영의 매력을 곱씹게 하는 작품들을 한눈에 볼 수 있다.

김수영은 소시민의 일상을 통해 비겁한 자신을 질책하는 한편, 눈에 보이지 않는 적과 맞서기 위해 이를 악무는 시인이다. 정신적 나태에 빠지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전선을 확인하는 냉철함과 그러한 냉철함에서 비롯되는 긴장감을 일상적 소재에서 발견하는 독창적인 시인이기도 하다. 김수영은 그의 시를 통해 모든 것이 시가 될 수 있고, 모든 것에 시가 있다는 것을 과감하고 전위적인 작법으로 보여 준다. 

「풀」, 「폭포」, 「구름의 파수병」,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 등 우리가 한 번쯤은 들어 보고 읽어 보았을 김수영의 대표 시부터 「애정지둔」, 「여름 뜰」, 「나의 가족」 등 소시민의 일상과 자신의 생활에 대한 김수영식 사랑을 담은 매력적인 시편들을 선별하여 묶었다. 이는 세상과 자신을 향해 타협 없이 꾸짖다가도 골목과 아이와 마당을 향해 너털웃음을 보이는 시인의 모습과 닮아 있다.

김수영의 시만큼이나 사랑받는 것이 김수영의 산문이다. 혹자는 김수영의 산문이 없었다면 김수영의 시 또한 없었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김수영 산문의 특징을 한 마디로 정의하자면 읽는 이를 놀라게 할 정로도 스스로를 까발리는 솔직함이다. 그만큼 김수영의 산문은 김수영의 현실과 시, 자신과 세상에 대해 지닌 태도를 거침없이 보여 준다. 「내가 겪은 포로 생활」, 「양계 변명」, 「시인의 정신은 미지」 등 그는 산문을 통해서 그가 포로수용소에 수용당했을 당시의 기록, 생활을 돕던 양계에 대한 기억, 자신의 시와 시론에 대한 태도를 드러낸다. 

김수영은 시만큼이나 빛나는 그의 산문에서 날카롭게 벼린 문장으로, 꼿꼿한 정신으로, 시민으로서의 삶과 시인으로서의 태도에 대해 끊임없이 성찰하며 나태해지기를 경계한다. 정치 참여에 대해 일갈하고 문학에 대한 소신 발언을 쏟아 내는 동시에, 자신이 뱉는 이야기에 대해 스스로가 먼저 지킬 것을 밀어붙이고 몰아붙이는 양면의 노력이 김수영의 산문에는 있다. 바깥으로는 눈치 보지 않는 산문을 발표하면서, 일기에는 더 소박하고 자연스러운 말을 적으려 했던 김수영의 독특한 매력도 함께 엿볼 수 있다.

이 책의 마지막 수록작은 그가 생전에 미처 완성하지 못한 장편소설 「의용군」이다. 김수영을 소설로 만나는 일은 우리가 미처 알지 못한 김수영의 새로운 모습을 알게 되는 일이며, 익숙하다고 여겨 온 시인을 만나는 색다른 방식일 것이다. 또한 김수영이 과거에 썼으나 현재까지 끝나지 않은 소설, 미완의 결말에 대해 독자들이 이후를 상상하게 될 작품을 읽는 일은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맞물리는 순간을 경험하는 일과 닮았다. 아직 끝나지 않은 그의 소설을 마지막 순서로 읽으며, ‘여전히 쓰고 있는’ 김수영과 만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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