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을 둘러싼 맛있고 즐거운 철학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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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을 둘러싼 맛있고 즐거운 철학 이야기
  • 김한나 기자
  • 승인 2020.03.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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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소개]

■ 철학자의 식탁: 먹고 요리하고 이야기하는 일의 즐거움 | 노르망 바야르종 지음 | 양영란 옮김 | 갈라파고스 | 300쪽
 

전통 철학은 ‘먹는 행위’와 ‘맛’ 등을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예술에 부정적이었던 플라톤은 요리를 예술도 아닌 것으로 여겼고, 칸트는 ‘맛’은 미학적 판단이 불가능하다고 보았다. 이 책은 '식사'와 '철학'의 두 주제를 다룬 10가지 에피소드를 들려준다. 철학자들은 무엇을 먹고, 먹는다는 것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했는지 알 수 있다.

첫 이야기는 고대 그리스의 향연에 참가한 역대 철학자들이 와인에 관해 토론을 나누는 가상의 장면으로 시작한다. 플라톤과 칸트, 페르시아 천문학자·시인 오마르 하이얌, 미국 사회학자 소스타인 베블런, 오스트리아 출신 한스 구텐바인이라는 허구의 와인 전문가 등이 와인에 관한 취향 판단의 객관화가 가능한지를 두고 구구한 의견을 내놓는다. "식탐은 죄"라고 말한 토마스 아퀴나스부터 모든 생명체에게 이로운 식생활을 고민한 피터 싱어, 먹는다는 것의 즐거움과 황홀함은 명백한 탐구의 대상이라고 말한 철학자 이브 미쇼에 이르기까지 먹음에 대한 철학자들의 사유가 펼쳐진다.

이밖에도 철학자들이 즐겨 요리했던 음식 또는 그들을 생각하며 만들어볼 수 있는 레시피를 소개한다. 데이비드 흄의 단골 요리메뉴인 ‘여왕의 수프’와 헨리 데이비드 소로가 즐겨 먹은 건포도 빵 등이다. 각 장의 주제를 매개로 식탁에 둘러앉은 사람들과 나누면 좋을 이야깃거리와 간단한 게임도 소개했다. 테이블의 즐거움을 아는 이들의 식탁에 어울리는 책이기도 하다. 이 책을 읽다 보면 친해지게 되는 하나의 이름이 있다. 앙텔름 브리야-사바랭이다. 마치 음식과 관련한 모든 것을 칭찬하기 위해 태어난 것만 같은 그는 먹는다는 것이 얼마나 황홀하고 순수한 즐거움인지를 이야기해준다. 오늘날 ‘요리 예술’을 말하는 많은 사람들이 요리 그 자체의 예술성에 주목하고 있는 것과 다르게, 먹는 행위와 식탁에 앉는 행위를 구분하며 ‘식탁에서의 즐거움’을 강조한다. 

그는 "식사에 관한 여정은 식사 시간이 전부가 아니라 식사를 기다리는 시간, 사람들과 둘러 앉아 식사를 하는 시간, 음식을 음미하는 시간 등이 모두 빠짐없이 누려야 할 중요한 즐거움"이라며 테이블에서의 즐거움은 먹는 즐거움에서 나아가 문화적인 것에 접속하게 해준다"고 말한다. 이 두 가지 즐거움은 서로 다르지만 상보적인 것으로, 이를 적절히 조율할 때 식탁 위에서 최고의 만족감을 얻는다는 것이다. 한끼의 식사를 위한 모든 과정을 존중하는 그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먹는 것을 잘 생각해보는 시간과 잘 먹는 시간, 잘 살아가는 시간이 서로 영향을 주며 가깝게 붙어 있을지도 모른다고 설명한다.

저자는 "먹는 얘기로 가득한 진지하고도 가벼운 이 책을 보다 보면 ‘먹는 나’, ‘먹는 것을 생각하는 나’, ‘살아가는 나’를 좀 더 잘 보게 되지 않을까?"라고 되묻는다. 한 사람의 일상에서 윤리적 성찰과 육식 습관은 양립할 수 있는지, 무엇을 먹을지 생각할 때 그건 오롯이 나만의 선택이 될 수 있는지, 미래에는 무얼 먹고 살게 될지, ‘맛’을 예술의 영역에 포함할 수 있을지, 잘 먹는다는 건 무엇인지, 이같은 내용이 궁금하다면 이 책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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