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의 역사는 진실을 향해 가는 진보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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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의 역사는 진실을 향해 가는 진보의 역사
  • 임병태 기자
  • 승인 2020.03.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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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소개]

■ 제3의 생각: 우리는 이 우주를 얼마나 이해하고 있는가 | 스티븐 와인버그 지음 | 안희정 옮김 | 이강영 감수 | 더숲 | 288쪽
 

오늘날 입자 물리학의 산증인으로 우주론의 고전인 『최초의 3분』의 저자이자 노벨물리학상을 받은 스티븐 와인버그의 에세이 모음집이다. 제목의 ‘제3’은 그가 그동안 펴낸 에세이 모음집 중 3번째라는 의미이다. 이 에세이집은 우주론부터 천문학과 양자역학, 과학의 역사부터 현재 지식의 한계, 발견의 기술까지 다양한 이야기를 담았다.

현재 물리학은 어디까지 도달했는가. 우리는 이 우주를 얼마나 이해하고 있을까. 저자의 눈을 빌어, 현대 물리학이 어디까지 와 있는지 과학이 이룩한 한 시대의 발전상을 조망할 수 있다.우주 질량의 6분의 5를 차지하는 ‘암흑 물질’의 비밀은 이 시대 물리학의 과제다. 이 암흑 물질을 구성하는 입자 중 하나로 약하게 상호 작용하는 질량 입자는 최소 수십억 년 간 살아남을 수 있는 초월적 존재다. 뜨겁고 밀도가 높은 초기 우주에 존재했던 이 입자들의 소멸 방식을 밝히는 것 또한 물리학이 풀어야 할 과제 중의 과제다.

하지만 이 과제는 좀처럼 우리의 일상에 섞이지 못하는 ‘과학계의 이슈’에 머물고 있다. 그는 과학사를 되짚으며 과학자와 대중의 언어가 유리되기 시작했던 지점을 꼬집는다. 저자는 학계에 갇힌 과학의 언어에 대해 문제의식을 갖고 학계라는 벽 너머 대중에게 꾸준하게 말 걸기를 시도하는 대표적인 과학 커뮤니케이터로서 이 문제를 찬찬히 설명해 낸다.

우리는 우주를 모른다. 아니 정확히는 과학이 지금까지 밝혀낸 ‘우주’를 모른다. 쥘 베른이 이룩한 SF 소설의 장르에서 그려진 미래상 정도로 어렴풋한 이미지로 남아 있다. 저자는 과학 아이디어들이 대중에게 전달되는 행위 자체를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더 정확히 말하면 과학의 성과와 과학 아이디어가 개인에게 미치는 영향력을 중시한다.

1967년부터 힉스 입자의 발견을 기다리던 와인버그는 2012년 마침내 발견된 감격스러운 힉스 입자를 발견에 대해 글을 기고한다. 그는 힉스 입자의 발견이 왜 기쁜 일인지 어리둥절할 대중을 향해 다음과 같이 말을 건넨다. “병을 치료하거나 기술을 향상시키는 데 직접 활용되지는 못한다. 이 발견은 단지 모든 물질을 지배하는 자연의 법칙에 대한 이해의 틈새를 메우고, 초기 우주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의 질문에 실마리를 던져 줄 뿐이다.”

와인버그는 물리학자들이 정부 관리들에게 필요한 시설들을 요청할 때의 진심을 독자들이 알아주기를 바라며 거대과학에 대한 정부 예산 문제도 꼬집는다. 이 시대 과학의 위치는 정부 예산에 좌우되며, 경제 효용성의 원리에 지배를 받고 있다. 와인버그는 1993년, ‘암흑 물질’의 설명을 위한 초대형 입자가속기 SSC 설립 계획이 미국 하원의 결정으로 지원을 취소당한 적이 있다. 정치인들은 ‘쓸모없다고 생각하는 일의 예산’이라고 여겼고 과학의 새로운 발견과 현실적 중요성을 저울질했다. 하지만 물리학자, 과학자들에게 있어 이 발견은 세계가 어떤 질서에 의해 움직이는가에 관한 심대한 과제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는 것이었다.
 
또한 와인버그는 미국 항공우주국 NASA의 그리 효과적이지 않은 유인 우주선 방식의 과학 연구, 그 계획에 대해 일갈하며 미국 정부의 과학 예산편성에도 쓴소리를 아끼지 않는다. NASA는 사람을 우주선에 태워 우주로 보내는 유인 우주선 프로젝트를 통해 드라마틱한 서사로 흥행몰이를 꾀하며 과도한 예산을 짠다. 하지만 와인버그는 유인 우주선이라는 구경거리가 아니더라도, 사람을 굳이 우주로 보내지 않는 ‘무인 우주선’ 방식으로도 인류에게 필요한 과학적 발견을 해낼 수 있다고 역설한다. 미디어에 의해 흥미 위주의 과학 이야기를 섭취해 온 우리에게 과학자가 거대과학에 당위적으로 투자되어야 하는 예산에 대해 자기주장을 펼치는 현실은 어색하지만 한번 곱씹을 만한 대목이다.

일반적으로 이론이 앞장서고, 실험이 경쟁하는 두 이론 사이에서 심판의 역할을 할 때에 과학의 진보가 이루어졌다. 그에게 있어 과학의 역사는 방향 없이 하나에서 다른 것으로 이어지는 지적 유행의 역사가 아니라, 진실을 향해 가는 진보의 역사이다. 당장의 실용성과 경제적 효용을 넘어 입자들의 비밀을 풀어헤치려는 과학자들의 노력은 그 자체로 ‘앎의 의지’에 가깝다. 이 점에서 와인버그는 일반 역사학의 역사관과 조금 다른 견해를 펼친다. 현재의 눈을 들이댄다는 아이디어다. 동시대 역사가들이 가장 조심하고 회피하는 위험한 영역, 곧 현재의 기준으로 과거를 판단하는 방식이다. 과학자들에게 현재의 지식이라는 눈으로 바라본 과학사가 필요하기 때문이라는 것이 저자의 생각으로, 우리에게 익숙한 과학철학자 토머스 쿤의 생각과도 상이하기 때문에 우리에게 생각할 지점을 던져 준다. 그렇다면 과학의 역사는 누가 써야 하는가? 역사가인가 아니면 과학자인가? 그의 답은 명백하다. 둘 다 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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