곡(哭), 대학과 지성의 파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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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哭), 대학과 지성의 파탄
  • 이기홍 논설위원/강원대·사회학
  • 승인 2019.12.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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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직설]

문재인 정부의 학문정책과 대학정책에 기대를 접은 것은 나뿐만이 아닐 것이다. 이 정부의 첫 교육부 장관이 대학입시제도를 ‘잘못’ 건드렸다가 물러난 뒤 교육부는 유치원 문제, 대학입시 공정성 문제에 허둥대며 대학정책은 손을 놓았다. 한때 국가교육위원회를 설치한다 어쩐다 하더니 그마저도 사라졌다. 그리고 시나브로 이명박, 박근혜 정부의 정책으로 복귀했다.

흔히 ‘신자유주의 대학정책’으로 불리는 그 정책은 무슨 지향이나 내용을 가진 것이 아니라 대학들 사이에, 교수들 사이에, 경쟁을 격화하고 시장화를 강요하는 것이 전부였다. 대학에 대한 정부의 직접 통제는 이전 정부보다 약화되었다고 할 수 있지만, 그것이 학문자유와 대학자율의 확대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이전 정부가 상위법에 근거도 없이 자의적으로 만든 지침, 감사 지적 사항, 그리고 평가지표 등의 이름으로 부과한 해악들은 그대로 남아 대학들을 옥죄고 있다.

학과 조교가 영수증을 모아서 정리하느라 본래의 업무를 포기한 것은 일상이 되었다. 산학협력단의 직원은 연구비 사용을 지원하는 것이 아니라 감독하고 있다. 교수가 학교 밖의 회의나 학회에 참석하려면 출장신고를 해야 한다. 심지어 내가 근무하는 대학에서는 교수들이 수업을 제대로 하는지를 직원들이 ‘점검’하는 일도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항의했더니 ‘학생들의 민원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 대학본부의 답이다. 교수들의 수업 진행을 점검하여 위반을 적발하고 징계하면 점수를 더 주던 예전 교육부 대학평가의 폐습이 화장을 바꾼 것이다.

‘교수법’ 강의를 수강한 교수에게 성과급을 더 주고, 외부 연구비를 많이 ‘수주’하는 교수에게는 성과급뿐 아니라 ‘이달의 연구자’라는 명예까지 부여하는 대학에서, 교수가 연구주제를 스스로 정하고, 간섭받지 않고 연구하고, 자신의 관점에서 가르치는 학문의 자유 이야기는 철 지난 유행가이다. 허구한 날 취업률을 따지는 대학에서 새로운 지식을 탐구하고 나눠서 사회의 발전에 기여한다는 이상을 꿈꾸는 것은 철없는 망상일 뿐이다. 우리 사회에서 대학의 그런 이상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어쩌면 원래부터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디테일에 자리잡은 ‘악마’는 열거하기 어렵게 많다. 게다가 제약받지 않은 권력 행사에 그런 악마를 활용하는 사례도 있다. 어떤 총장은 연구와 교육이 아니라 사업을 하는 교수도 필요하다며 학과나 학부가 아닌 산학협력단 같은 부속기관에서 교수를 이상하게 채용하고는, 국정감사에서 의혹이 지적되자 ‘학과나 학부에서 교수를 선발하던 관행을 깨뜨린 것에 대한 일부 교수들의 반발’이라고 얼굴 두껍게 답했다. 10년 넘게 지속하는 신자유주의 대학정책이, 대학에서 교수 채용은 연구와 교육의 전문 역량에 대한 평가의 필요 때문에 학과나 학부를 통해서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는 대학의 제도적 기초조차 모르는 또는 알면서도 무시하는 엉터리 총장을 만들어낸 것이다.

더 심각한 것은 ‘공공 지식인’으로서 교수의 정체성이 모두 소멸한 점이다. 이제 ‘대학이 어떠해야 하며 학문연구와 교육이 어떠해야 하는가’의 문제는 교수들의 관심사가 아니다. 교수들의 유일한 관심은 ‘어떻게 하면 연구비를 더 많이 수주하고 논문을 더 빨리 그리고 더 많이 쓸 것인가’의 ‘상업적’ 문제에 있다. 성과급이라는 이름의 ‘상호약탈적 경쟁체계’를 통한 신자유주의적 대학 통치로 ‘교수는 교수에게 늑대가 되었다.’ 내가 더 많은 성과급을 받으려면 다른 교수들이 더 많은 성과급을 받는 것을 효과적으로 봉쇄해야 한다. 성과를 추구하면서 교수들이 서로 적대하고 ‘몰사회적으로’ 파편화하는 사이에 학문공동체 대학은 파탄했다. 오늘날 아무도 교수를 가리켜 ‘지성’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촛불 이후에도 대학은 ‘적폐청산’에서 무풍지대였을 뿐 아니라, 오히려 ‘혁신’이라는 이름으로 그 적폐를 악화하고 확대하고 있다. 촛불혁명으로 이룬 일이라고는 대통령 바꾼 것 하나뿐이라는 자조가 대학보다 더 적합한 영역도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결국 대학과 지성의 회복은 교수들 자신의 몫이다. 정부의 대학정책 개편을 압박하는 것도 교수의 몫이다. 어둠이 짙어질수록 빛이 가까운 법이다.


이기홍 논설위원/강원대·사회학

강원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로 교수회장을 맡고 있으며, 한국사회학회 편집위원장을 역임했다. 주 연구 주제는 사회과학철학, 사회과학방법론, 그리고 사회이론이다. 저서로 『사회과학의 철학적 기초: 비판적 실재론의 접근』, 역서로 『맑스의 방법론』, 『경제, 시민사회 그리고 국가』,『과학으로서의 사회이론』, 『새로운 사회과학철학』, 『지구환경과 사회이론』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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