캠퍼스 공간의 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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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퍼스 공간의 가치
  • 박원용 부경대학교·러시아현대사
  • 승인 2023.04.02 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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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쿠스]

사학과에 입학한 대부분의 학생들은 일찍부터 역사에 흥미를 느끼며 역사책을 즐겨 읽던 학생들이다. 그런 학생들을 상대로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강좌를 개설하여 역사의 본질에 관한 이해를 증진하기 위해 노력한 지도 20여년의 세월이 흘렀다. 영상 매체에 익숙한 MZ세대에게 추상적인 개념을 동원하지 않을 수 없는 역사의 본질을 나의 일방적인 설명으로 전달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상호 소통을 높이기 위해 채택한 방식은 매주 읽을거리를 부여한 다음 이를 바탕으로 학생들이 토론하고 싶은 문제들을 수업 전까지 학생들이 볼 수 있는 웹사이트에 올리도록 한 후 이 문제들을 중심으로 토론을 진행하는 방식이었다. 상호소통의 수업방식에 익숙하지 못한 첫 몇 주 동안은 학생들의 참여를 이끌어내는 데 힘들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자신의 생각을 말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보이는 학생들이 늘어나면서 활력 넘치는 수업을 진행할 수 있었다.

학생들의 열의와 활기를 느낄 수 있던 수업 시간이 부담으로 느껴지기 시작한 것은 코로나-19로 인해 비대면 수업으로 전환되면서였다. 비대면 수업에서도 토론식의 수업을 진행했지만 예전과 같은 활력과 집중도를 느낄 수는 없었다. 예전에 체험했던 그러한 기쁨이 줄어드니 나 자신도 수업을 타성적으로 임하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나날이었다. 채팅방의 활성화, 온라인 토론방 개설 등 이런 저런 방법등을 동원하며 아쉬움 해소를 위해 노력했지만 코로나 이전 교실에서 느꼈던 만족감에 미치지는 못했다.

2년여의 시간이 지나 대학의 강의실도 이전과 같은 활력을 되찾고 있다. 비대면 수업에 익숙해진 일부 학생들은 담당 교수에게 비대면 강의 방식을 고수해달라는 요구를 하기도 한다. 그런 요구를 하는 학생들에게는 나름대로의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학생들과의 직접적 소통, 현장에서의 감정의 교류를 중시하는 나 같은 교수에게는 절대로 수용될 수 없는 요구이다.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첨단기술의 사용을 거부하는 고루한 교수이기 때문이 아니다. 첨단기술과 차원이 다른 공간에서의 소통의 힘을 믿기 때문이다. 학생 개개인의 눈과 마주치면서 우리가 같이 호흡하고 있다는 감정의 교류, 그러한 교류의 시간이 쌓여감에 따라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친밀감 등을 첨단기술이 제공하는 공간에서는 느끼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러한 양방향의 소통을 통한 주체적 사고 능력의 함양을 대학이 앞으로도 제공한다면 대학 캠퍼스라는 공간의 무용론과 같은 주장은 우리 사회에서 사라지지 않을까?     


박원용 부경대학교·러시아현대사

부경대학교 사학과 교수. 서울대학교 졸업 후 미국 인디애나 대학교에서 러시아 현대사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부산경남사학회 회장을 맡고 있다. 관심분야는 역사이론, 스탈린시대 과학기술정책, 냉전기 소련의 문화정책과 교류, 러시아 극동의 대외관계사이다. <<소비에트 러시아의 신체문화와 스포츠>>, <<소련형 대학의 형성과 해체>>(공저) 외 다수의 저서와 역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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