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학으로 인권 생각하기…인권은 입체적이고 다층적인 개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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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학으로 인권 생각하기…인권은 입체적이고 다층적인 개념
  • 임병태 기자
  • 승인 2020.03.15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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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소개]

■ 인권사회학의 도전: 인권의 통합적 비전을 향하여 | 마크 프레초 지음 | 조효제 옮김 | 교양인 | 344쪽
 

인권은 절대적 가치이며, 모두에게 공평하게 적용되어야 한다고 누구나 인정하지만 현실 속 인권 문제는 늘 이해와 해결이 아닌 갈등과 대립으로 나타난다. 이상과 현실 사이, 우리의 인권관에 무엇이 빠져 있는 것일까? 저자에 의하면 사회학으로 인권을 바라볼 때, 인권을 둘러싼 ‘갈등’은 인권의 ‘실패’가 아닌, 발전을 위한 출발점이 되며, 인권사회학은 선언을 넘어 인권을 총체적으로 바라보고 독창적으로 상상할 수 있는 통찰을 준다. 이 책은 인권사회학을 본격적으로 소개함과 동시에 더 나은 인권 실현을 위해 새로운 인식의 틀을 제안한다.

그렇다면 인권사회학이란 무엇인가. 저자는 인권사회학을 “특정 사회 조건에서 인권을 상상하고, 비판하고, 이행하고, 집행하고, 위반하는 실태를 분석하기 위해 사회학적 이론과 방법론을 체계적으로 활용하는 학문”이라고 규정한다. 그리하여 인권사회학은 성문화된 인권 규범의 해석과 적용을 넘어 인권의 동학과 역학을 구체적으로 살펴 현실에서 인권이 실현되는 과정을 뚜렷하게 밝힌다.

모든 사람이 ‘인권’을 중요하게 여기고, 인권의 절대적 가치에 공감하는 시대지만 현실을 보면 인권에 대한 오해와 의문은 여전하다. “권리와 권리가 충돌하면 어떤 권리가 이기는가.” “인권은 결국 자기 이익 찾기 아닌가.” “문제가 있으면 법을 만들어 단번에 해결하면 되지 않나.” “연대권이 집단의 이름으로 개인을 억압하는 논리로 사용되지는 않을까.” “인권이 절대적으로 중요하다면서 왜 권고니 교육이니 하는 미적지근한 대책밖에 없는가.”

저자에 의하면 인권사회학이 필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인권 문제는 문제 하나를 끝내고 다음 문제로 돌진하는 식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또한 인권은 완성된 개념도, 권리 ‘다툼’도 아니다. 인권사회학의 렌즈로 보면 인권은 단순히 법·제도적 기준을 현실에 적용하는 규범 실천에 국한되지 않고, 규범에 관한 지식의 형태, 일련의 제도, 다양한 실천 양식이 서로 영향을 끼치고, 관계를 맺으며 변화하고 발전해 나가는 사회적 구성물이 된다. 또한 인권을 개별적인 권리들의 총합이 아닌 유기적인 통합체로 볼 수 있게 해준다. 이러한 인권 인식은 인권을 ‘상상 가능하고 실현 가능한’ 것으로 만들어 인권 연구자, 활동가, 정책 결정자뿐 아니라 일반 대중 세력까지 모두를 변화를 이끌어낼 주체로서 생산적인 대화의 장으로 초대한다.

인권이 발전해 온 역사를 보면 세대별로 인권을 분류하는 학문적 관행이 있다. 집회와 결사, 언론의 자유를 주장하는 1세대 시민적·정치적 권리, 의료나 복지 체계에 관련된 2세대 경제적·사회적 권리, 그리고 지구화와 서구 중심 개발에 반대하며 남반구에서 터져 나온 3세대 문화적·환경적 권리가 그것이다. 이런 식의 분류는 인권이라는 추상적인 개념에 구체적인 이름을 붙여 권리를 주장하는 것을 용이하게 하지만 인권 발전에 정해진 길이 있다는 식의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저자는 인권 발전의 역사를 균형 잡힌 시각으로 살펴 인권이 본래 근대와 당대, 서구와 비서구, 세속과 종교, 정치 이념의 다양한 스펙트럼에서 비롯되는 입체적이고 다층적인 개념임을 강조한다.

그렇다면 권리와 권리, 규범과 규범이 맞서는 인권 현장에서 인권 충돌 문제를 풀려면 어떤 관점이 필요한가. 저자는 규범적인 시각을 넘어서 사회학적인 총체적 관점으로 인권 문제에 접근해야 한다고 말한다. 인권사회학은 인권 문제를 권력의 원근법으로 파악할 수 있게 해주고 핵심적인 문제와 부수적인 문제를 가릴 수 있게 해주며, 인권을 총체적이고 전 지구적이며 역사적인 관점에서 이해할 수 있도록 해준다. 또한 특정한 권리 주장이 어떤 식으로 힘을 얻고 어떻게 법으로 실행되고 해결되는지, 또 이런 변화를 통해 다른 권리 주장들에 어떻게 영향을 끼치는지 일목요연하게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요컨대 우리는 하나의 권리가 다른 권리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고 오랜 시간에 걸쳐 변화하고 발전해 왔음을 이해하는 역사적 감수성을 통해 눈앞의 인권 문제를 ‘갈등’이 아닌 ‘과정’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된다.

이처럼 이 책은 엘리트와 민중, 서구와 비서구가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발전해 온 인권의 역사를 돌아보고 보편주의와 문화 다원주의에 관한 해묵은 논쟁을 해결할 수 있는 시각과 함게 인권 운동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한다. 또한 경제적·사회적 요인이 얽힌 빈곤이나 환경 문제, 성정체성 같은 인권 난제의 해결을 위해, 기존의 규범적 개념을 넘어서는 새로운 권리 주장의 틀을 제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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