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은 사고에서 벗어나자 - 〈대학무상교육이 해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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낡은 사고에서 벗어나자 - 〈대학무상교육이 해법이다〉
  • 박정원 (전)상지대 교수/부총장
  • 승인 2023.03.27 1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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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논평]

“새 술은 새 부대에!”라는 말이 있듯이, 이제 고등교육에 대한 낡은 사고를 버리고 새로운 생각을 가져야 한다. 과거 한국·미국·일본 등 자본주의 일부 국가들에서는 중등교육까지를 국가가 책임지면 된다고 생각했고, 고등교육은 개인의 선택영역이라고 여겼다. 즉, 대학 교육비용은 국가가 아닌 개인이 부담해야 하고, 대신 대학 교육에 따른 과실은 비용을 부담한 개인이 가져가면 된다는 사고방식이다. 그 결과 고소득층 자녀들은 수학능력에 관계없이 4년제 일반대학에 진학할 수 있었던 반면, 대학 교육비 부담이 버거운 저소득층 자녀들은 2년제 전문대학에 입학하거나 대학 진학을 아예 포기했다. 부모의 소득수준이나 직업이 자녀의 대학 진학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인이 되었고, 부의 대물림이라는 사회적 악폐가 뿌리 내리게 되었다. 

그러나 21세기 들어 이런 낡은 사고는 급속히 밀려나고, <고등교육은 국가의 책임>이라는 사조로 바뀌고 있다. 프랑스·독일·핀란드·노르웨이·덴마크·스위스 등 국민행복도가 높은 유럽 복지국가들의 <대학 무상교육체제>에 자극받은 미국의 바이든 행정부가 중저소득층 자녀들이 주로 입학하는 커뮤니티대학부터 무상화하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고, 일본 역시 저소득층 자녀들부터 무상으로 대학 교육을 제공하기 시작했다. 필리핀에서는 2021년부터 아예 자국 대학생들 전체에게 등록금을 부과하지 않고 있다. 이러한 세계적 추세에도 불구하고 윤석열정권은 오히려 대학등록금을 인상할 수 있는 길을 터놓아 중저소득계층 학생들의 고통을 배가시키고 있다. 다시 말해, ‘고등교육 개인 책임’을 강화함으로써 부자에게 유리한 구시대적 고등교육체계를 유지하려 하고 있다. 이러한 정책 방향은 구시대적 낡은 사고방식에 기인한 것으로서 과감히 폐기해야 하고, <고등교육 국가 책임>을 확립해야 할 것이다. 

여러 국제기구들은 고등교육이 기본권임을 선언하고 있다. 먼저, UN 경제적·사회적 및 문화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 (ICESCR) 제13조 (교육권) 2에는 <이 규약의 당사국은 동 권리의 완전한 실현을 달성하기 위하여 다음 사항을 인정한다>라고 하고, (c)항에서 “고등교육은, 모든 적절한 수단에 의하여, 특히 무상교육의 점진적 도입에 의하여, 능력에 기초하여 모든 사람에게 동등하게 개방된다.”고 규정하여 대학 무상교육 도입을 통한 기본권 보장을 촉구하고 있다. 

또한 UN 아동권리협약 제28조 (c)는 “고등교육의 기회가 모든 사람에게 능력에 입각하여 접근가능하도록 모든 적절한 조치를 취하여야 한다.”라고 규정하고 있으며, UNESCO 교육에서의 차별금지에 관한 협약 제4조에서는 정부들은 “초등교육을 무상 의무교육으로 만들어야 하며; 중등교육은 일반적으로 채택할 수 있는 다양한 형태로 모든 이에게 개방되어야 하고, 고등교육은 개인 능력에 기초하여 모든 사람이 접근할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외에도 여성에 대한 모든 형태의 차별 철폐에 관한 협약 제10조에서는 “경력과 직업 안내, 학업에 대한 접근, 및 모든 종류의 교육시설에서 학위취득에 대해 동일한 조건이어야 하는데, 도시지역이든 농촌지역이든 마찬가지다; 이러한 평등이 유치원, 인문계 학교, 기술학교, 전문적 고등기술교육 및 모든 종류의 직업훈련에서 보장되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세계 여러 국가의 국제조약 비준은 교육이 보편적 인권임을 인정하고 있는 것이며, 고등교육은 국제관습법에 따라 당연히 하나의 인권으로 간주해야 한다는 강력한 주장들이 증가하고 있다. 이러한 국제규약이나 협약을 인정하는 당사국들은 “고등교육이 모든 사람에게 차별 없이 제공되고 모든 사람이 평등하게 접근할 수 있게 ‘완전히 그리고 즉각적으로’ 필요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

고등교육이 기본권이라면, 원하는 국민 누구나 능력에 따라 향유할 수 있어야 한다. 특히 소득이 없거나 적은 사람도 교육의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 따라서 고등교육을 기본권으로 인식하고 있는 사회에서는 일찍부터 대학교육이 무상으로 공급되고 있다. 유럽의 복지국가들이 특히 그러하다. 한국에서는 2021년부터 고교교육까지 무상화되긴 했지만, 대학 교육만큼은 시장재(市場財)에 가까운 방식으로 공급되고 있다. 고등교육에 관한 권리가 하나의 구체화 된 권리로서 실현되고 있지 않다. 이제 시대에 맞게 이러한 사고가 바뀌어야 하고, 고등교육을 받을 국민의 권리가 구체화 되어야 한다. 

따지고 보면, 대학 등록금은 민주평등사회로 가는 길에서 가장 큰 장애물이다. 등록금이 저소득층의 사회진출과 자기실현(행복)을 방해하면서, 학벌의 사회지배를 공고히 하고 있기 때문이다. 출신대학을 기준으로 형성된 한국의 학벌들은 3부(입법, 사법, 행정)의 권력을 장악하고 있다. 법을 만들고 적용하고 심판하는 일까지 모두 지배한다. 사회발전이나 국민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국가의 주요 정책을 이들이 만들고 집행한다. 금융자본주의의 실세로서 금융 전반을 지배한다. 권력을 감시하고 견제해야 할 언론도 이들의 손에 있으며, 문화 권력까지 이들이 지배하고 있다. 

학벌사회는 대학 교육을 상품화하여 등록금을 지불한 사람에게만 교육을 제공한다. 대학 등록금과 부대비용을 최대한 높여서 높은 교육비 장벽을 만들고, 지불 능력이 없거나 낮은 집단의 접근을 차단한다. 결국, 저소득층을 대학 교육에서 소외시켜 기존의 지배 질서를 공고히 한다. 일부 고소득층이 벌이는 학비 경쟁에 중저소득층은 참여할 수 없고, 대학을 졸업한다 해도 양질의 일자리를 확보하기 어렵다. 이처럼 높은 등록금은 학벌을 재생산하고 유지하는 기둥이며, 중저소득층의 사회진출을 가로막고 있는 절벽이다. 

고등교육에 관한 국민의 기본적 권리를 보장하고, 학벌의 사회적 폐해를 근절하기 위해서는 대학개혁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무엇보다 먼저 원하는 모든 국민이 대학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교육비를 국가가 부담해야 한다. 가능하면 생활비까지 국가가 지원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미 유럽 여러 국가가 시행하고 있다. 

물론, 모든 사람이 대학 교육을 받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대학을 나오지 않아도 사회에서 자기 몫을 하며 당당히 살아갈 수 있다면, 그런 사람들에게는 대학 교육이 필요 없을 것이다. 대학 출신이 아니라는 이유로 차별받지 않고, 임금이나 생활전선에서 크게 불리하지 않다면 굳이 대학에 가지 않을 사람도 많을 것이다. 실제로 유럽에는 대학진학률이 낮으면서도 삶의 질이 아주 높은 나라들이 상당수 있다. 

하지만, 아쉽게도 한국은 이와 상황이 다르다. 학력에 따른 사회적 차별이 곳곳에 존재하고, 소수의 학벌이 정치·경제·사회·문화 전반을 지배하고 있다. 학벌은 부모의 소득과 학력에 의해 재생산되었고, 여기에 기득권을 옹호하고 지키는 장치가 만들어져 소수 학벌에 의한 권력 독점이 이루어지고 있다. 한국의 학벌 체제는 교육비 차별화와 대학 서열 체제에 의해 유지된다. 물론, 이 두 가지는 모두 왜곡된 능력주의의 허상 위에 서 있다. 고소득층은 초등학교 또는 그 이전부터 고액의 사교육비를 투입하여 중저소득층의 교육 접근을 막는데, 그 마지막 단계가 대학 등록금 (로스쿨 등 전문대학원 수업료 포함)이다. 고등교육은 각 개인의 행복 추구에 필수요소라 할 수 있지만, 그 길은 소수에게만 열려 있는 좁은 통로이다. 

인간의 진정한 행복은 자신을 실현하는 데 있다고 생각한다. 교육은 자신의 잠재력을 실현하는데 필요한 여러 가지 기능과 사회적 삶을 사는데 요구되는 가치들을 습득하는 과정이다. 대량생산 방식이 지배하던 시절에는 초중등교육 이수만으로 사회생활이 가능했다. 그러나 현대 자본주의 체제에서는 고등교육을 이수하지 않고는 자기실현에서 오는 진정한 행복을 누리기 어렵다. 대학 교육은 급격한 기술 진보(제4차산업혁명)가 초래하는 일자리 변화에 대응할 거의 유일한 대안이다. 자동화·인공지능 등의 영향으로 이미 빠른 속도로 저숙련 노동자들의 일자리가 사라지고 있다. 선진국 경제들에서는 고(高)기능 작업장의 지속적 확산이 예상된다. 이러한 변화는 분석적 기술과 창의적 사고력을 갖춘 노동자를 필요로 하고 있다. 대학이 이 기술들을 개발하고 가르치기 때문에, 원하는 모든 사람이 대학 교육에 접근하게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프랑스·독일·스웨덴·핀란드·노르웨이·덴마크·스위스·오스트리아·그리스·슬로바키아·슬로베니아·헝가리·폴란드·스코틀랜드(영국)·스페인·벨기에 등 유럽 국가들은 대학 등록금이 없거나 아주 소액이다. 독일 등 일부 국가는 외국인 학생들에게도 등록금을 받지 않고 이를 자랑으로 여긴다. 모로코·필리핀 등 소득수준이 높지 않으면서도 대학 무상교육을 넉넉하게 시행하는 국가도 있다. 우리나라 국민 중에도 이들 나라에 유학하여 무상교육의 혜택을 받은 사람들이 많다. 이 나라들은 대체로 1인당 소득이 6천-7천불 수준이었던 1960년대와 70년대 초반에 무상교육으로 전환했다. 오늘날 이들의 대학 무상교육은 대성공을 거두고 있다. 

2020년 1월, 세계경제포럼에서 발간한 「사회유동성 보고서」에서는 교육이 가장 강력한 기회 균형장치(equaliser of chances)라고 규정하고 있다. 여기서 “사회유동성”이란 자녀가 부모보다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는 능력(가능성)을 의미한다. 보고서는 사회유동성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모든 사람이 평등하게 최고의 학교에 다닐 기회를 보유하는 것이 핵심 요소라고 지적했다. 고등교육 무상화로 인해 보다 많은 사람이 행복에 이를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윤석열 정권이 추진하는 대학등록금 자율화나 이와 유사한 조치들에 단호히 반대한다. 고물가·고금리 시대에 가계를 더욱 힘들게 하기 때문이며, 이제 세계적 추세가 된 <대학무상교육>과는 반대 방향의 정책이기 때문이다. 일부 대학 총장들의 등록금 인상 주장도 반대한다. 국가가 고등교육비를 부담하면 될 일이다. 재정이 부족하다는 말은 변화를 거부하는 기득권층의 변명에 불과하다. 부모의 재력과 직업이 고등교육을 받을 수 있는 자격이 되어서는 곤란하다. 기본권으로 보장되는 권리가 많은 나라일수록 행복한 나라일 것이다. 국가가 모든 국민에게 고등교육을 받을 권리를 대가 없이 보장해야 한다. 이제 모두 낡은 사고에서 벗어나자! 


2023년  3월  27일

전/국/교/수/노/동/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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