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이란 무엇인가? 예술은 언제 시작되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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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이란 무엇인가? 예술은 언제 시작되었는가?
  • 이명아 기자
  • 승인 2023.03.26 1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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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술의 발명 | 래리 샤이너 지음 | 조주연 옮김 | 바다출판사 | 528쪽

 

예술은 어떻게 예술이 되었을까? 저자 래리 샤이너가 예술의 기원을 추적하는 책이다. 저자는 우리가 알고 있는 ‘예술’, 즉 현대 순수예술의 체계가 18세기 유럽에서 수공예와 분리되어 만들어진 발명품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예술과 수공예의 경계를 구분 짓는 18세기 이전과 이후의 역사적 맥락에서 예술의 기원을 집요하게 추적해나가며, 16~17세기의 예술과 그 이후 분리된 18세기 이후의 현대 순수예술 체계를 지배하는 규범들이 얼마나 다른지 살펴본다. 기존의 예술과 현대 순수예술의 체계의 거리를 좁혀 제3의 예술을 맞이할 수 있을까? 저자는 우리가 예술에 대해 가지고 있던 기존 개념들을 뒤흔들어 새로운 관점에서 예술을 보도록 하며, 예술을 향유하는 우리 모두에게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무엇이든 ‘예술’이라고 불릴 수 있는 시대다. 일상적인 물건이 미술관에 전시되거나 플랫폼과 형식에 제한 없이 문학이나 음악의 테두리 안에서 예술로 인정받을 수 있는 시대. 이러한 현상의 반대편 극단에는 미술, 문학, 고전음악이 ‘죽었다’는 절망의 목소리가 있다. 무엇이든 예술이 된다고 말하는 사람과 예술이 죽음에 이르렀다고 말하는 사람이 혼재한 시대, 우리는 이 문제를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저자는 예술 본질이 처한 문제를 직시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역사적 맥락에서 예술의 기원을 추적해나간다. 우리가 지금 겪고 있는 예술에 대한 혼란은 결국 예술의 분리를 극복하려는 모색의 과정이 아직 진행 중이며, 그 진행 중인 과정을 이해하려면 먼저 예술이 어떻게 분리되었는지를 알 필요가 있다고 말하면서. 저자가 말하는 예술의 분리란 무엇을 뜻하는 걸까?

고대에 정의하는 예술은 말 조련, 시 짓기, 구두 제작, 통치술 등 인간의 모든 기술을 포함했다. 당시 인간의 예술과 반대되는 개념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수공예가 아니라 바로 자연이었다. 그러나 이 개념은 18세기에 결정적으로 분리를 맞게 된다. 우아한 기술로 수행된 인간의 모든 활동이 쪼개져 우리가 알고 있는 시나 회화, 음악과 같은 순수예술이라는 새로운 범주가 탄생했고 이는 구두 제작이나 자수, 대중음악으로 특징되는 수공예나 대중예술과 대립되게 되었다. 이후로 수공예와 대중예술은 기술과 규칙을 이용하여 특정 목적을 가진 것을 의미하는 반면 순수예술은 용도나 재미를 위한 목적을 가지지 않고 영감과 천재성으로 구현할 수 있는 것으로 정의되었고, 이러한 흐름에 따라 예술가와 장인도 자연스럽게 분리되었다.

18세기 이전까지만 해도 ‘예술가’와 ‘장인’은 바꾸어 쓸 수 있는 단어였지만 18세기 말에 이르자 ‘예술가’와 ‘장인’은 서로 반대말이 되었다. 이러한 역사를 거쳐 ‘예술가’는 순수예술 작품의 창조자로, ‘장인’은 유용하거나 재미있는 무언가를 만드는 단순 제작자로 정립된 것이다. 이 분리를 시작으로 예술의 정의만 바뀐 것이 아니라, 개념, 관행, 제도로 이루어진 예술의 한 체계 전체가 다른 체계로 대체되었다. 예술의 기원을 전체적인 역사적 맥락에서 바라봐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몇몇 장르를 순수예술이라는 정신적 지위로 끌어올리고 그 제작자들은 영웅적 창조자로 격상하는 반면 나머지 장르들은 오로지 실용성의 지위로 떨어뜨리고 그 제작자들을 가공업자로 격하하는 것, 이는 개념적인 변화를 훨씬 넘어서는 일이다”에서 저자가 지적한 것처럼 순수예술의 체계의 밑바탕에는 여성, 소수 민족 등 특정 층과 영역을 배제시키는 제국주의적 전제가 깔려 있다. 자율성과 생활 모두를 포괄한, 분리 이전의 예술에서는 볼 수 없는 모습이다. 이러한 점에서 순수예술이 가르는 이분법은 인종, 성, 정치적 분리의 결과를 초래할 수 있음을 인지하고 ‘관조적’이며 ‘미적’인 순수예술의 고결함을 지키려는 행위가 제국주의적 역사의 뿌리를 둔 예술을 강화하는 일일 수 있다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실제로 19세기 초 이후로 현대 순수예술 체계가 유럽과 미국을 지배하면서 예술과 수공예를 가르는 이 체계의 근본적인 양극성에 저항해온 예술가와 비평가들이 있었다. 대표적인 예로 호가스, 루소, 울스턴크래프트는 예술의 분리가 일어나고 있던 바로 그 시기에도 예술가와 장인, 미적인 것과 도구적인 것을 구분해서 가르는 데 거세게 반대했으며, 에머슨, 러스킨, 모리스도 ‘예술 대 수공예’ ‘예술 대 생활’이라는 근저의 이분법을 공격했다.

저자를 따라 16, 17세기 예술 체계와 18세기 분리 이후의 현대의 순수예술 체계를 지배하는 규범들이 얼마나 다른지를 살펴보면, “미술, 문학이나 음악이 죽었다”라고 말하는 것은 기존의 예술 체계의 품을 너무 좁게 보고, 과소평가하기 때문이라는 것을 이해할 수 있다.

순수예술 체계의 이분법을 깨닫고 분리 이전의 예술의 기원을 이해하는 일은 예술의 분리에서 파생된 해묵은 위계와 질서를 완화시키고, 다양한 정치, 사회, 문화적 거리를 조정해갈 수 있는 그 시작점에 서는 것과 같다. 그 시작점에 섰을 때야 비로소 우리는 지금 예술로 인해 빚어지고 있는 혼란을 극복하고, 기존의 예술과 현대의 순수예술을 화해시키는, 제3의 예술 체계를 맞이할 수 있지 않을까?

“예술의 현대적 체계는 본질이나 운명이 아니라, 바로 우리가 만들어낸 것이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이해하는 바의 예술은 겨우 200년 전에 유럽인들이 발명해낸 것일 뿐이다. 그전에는 훨씬 광범위하고 실용적인 예술 체계가 있었는데, 이 체계는 2000년이 넘도록 지속되었고, 앞으로는 세 번째 예술 체계가 현대적 체계의 뒤를 잇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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