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모두 죽음을 향해 달려간다. 우리는 그것을 삶이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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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모두 죽음을 향해 달려간다. 우리는 그것을 삶이라고 부른다”
  • 이현건 기자
  • 승인 2023.03.26 1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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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죽음이란 무엇인가: 예일대 최고의 명강의 10주년 기념판 | 셸리 케이건 지음 | 박세연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512쪽

 

“죽음이란 무엇인가?” 인간의 숙명이자 영원히 해결할 수 없는 이 질문에 대한 철학적 고찰을 담은 책으로, 심리적·종교적 해석을 완전히 배제한 채 오직 이성과 논리를 통해 죽음에 관한 모든 것을 파헤친다. 플라톤·에피쿠로스·데카르트부터 현대 철학에 이르기까지 방대한 철학사를 넘나드는 철저한 철학적 사유를 바탕으로 죽음의 본질과 삶의 의미, 그리고 생명의 존엄성을 고찰한다. 

저자가 죽음의 본질에 다가가기 위해 선택한 수단은 오로지 논리와 이성, 철학적 질문뿐이다. “죽는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죽을 수밖에 없는 나란 존재는 과연 무엇인가?”, “영원한 삶은 가능한가?”, “영혼은 육체가 죽은 뒤에도 계속 존재하는가?”와 같은 개념적 질문에서 시작해, “죽음은 나쁜 것인가?”, “영생은 좋은 것인가?”, “자살은 합리적인 선택인가?”, “우리는 왜 경험하지도 못한 죽음에 대해 두려워하는가?”와 같은 질문으로 죽음에 대한 우리의 태도를 되돌아보게 만든다. 그리고 이 모든 질문은 다시 하나의 질문으로 귀결된다. “그렇다면 나는 과연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저자는 이러한 철학적 질문을 통해 방대한 철학사의 죽음 논쟁을 다루면서 우리를 깨닫게 만든다. ‘죽음’에 대한 질문은 곧 ‘삶’에 대한 대답을 요구한다는 것을. 저자는 “삶은 죽음이 있기 때문에 비로소 완성되는 인간의 가장 위대한 목적”이며, “죽음의 본질을 이해하면 가치 있는 삶을 살 수 있다”고 힘주어 말한다. 

죽음 이후의 삶이란 존재하는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영생이나 죽음 이후의 삶에 대한 기대와 믿음을 낳았다. 저자는 이는 마치 ‘육체가 죽어도 육체는 살아남을 수 있는가?’와 같은 자기모순적 질문이라고 단언하며, 인간 존재의 실체에 관한 두 가지 거대한 관점, 즉 인간이 ‘육체와 영혼’으로 이뤄져 있다는 ‘이원론(dualism)’과 인간이 ‘육체’로만 이뤄져 있다는 ‘물리주의(physicalism)’을 소개한다. 

소크라테스의 죽음과 영혼의 불멸을 다룬 『파이돈(Phaidon)』의 논리적 오류를 해명하는가 하면, “육체 없이도 정신(영혼)이 존재할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기 때문에 육체와 정신은 각각 다른 존재”라는 데카르트(Rene Descartes)의 주장에 반박하는 등, 이성으로 증명하기 매우 까다로운 존재 앞에서 쉽게 심리적 믿음을 택하게 되는 현상을 비판하기도 한다. 

나아가 ‘영혼 관점’, ‘육체 관점’, ‘인격 관점’이라는 인간 정체성에 관한 세 가지 주장을 살펴보고, ‘시공간 벌레(space-time worm)’ 개념에서부터 시계 수리공의 비유와 영화 〈스타워즈〉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일상의 사례를 통해 형이상학적 수수께끼를 풀어간다. 톨스토이의 『이반 일리치의 죽음』을 예로 들어 죽음에 임박하는 순간에도 죽음을 부인하고자 하는 인간 심리의 이중성을 살펴보고, “인간은 모두 홀로 죽는다”라는 명제를 분석하면서 찰스 디킨스 『두 도시 이야기』를 톺아보기도 한다.

‘죽음은 두렵고 나쁜 것인가?’라는 의문에 대해 저자는 “삶이 가져다주는 좋은 것들을 앗아가기 때문에 나쁘다”는 ‘박탈 이론(deprivation account)’을 근거로 제시하며 이에 대해 ‘죽고 나면 나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죽음은 나쁜 게 아니다’라는 에피쿠로스(Epicurus)의 입장과, “죽음이 나쁘려면 마찬가지로 비존재 상태인 태어나기도 전의 상태도 나빠야 한다”는 루크레티우스(Lucretius)를 비교해 살펴보고, 이 밖에 토머스 네이글(Thomas Nagle), 프레드 펠드먼(Fred Feldman), 데렉 파피트(Derek Parfit) 등 현대 철학자들의 핵심 견해도 소개한다. 

죽음의 반대 개념인 ‘영생(永生)’, 즉 영원한 삶은 좋은 것일까? 이에 대해 저자는 우리가 “영원하다”는 것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지 반문하면서, 어떤 형태의 삶도 영원히 지속된다면 그 매력을 잃어버리게 되며, 무한한 삶은 그 어떤 고통보다도 가혹한 형벌임을 강조하고, 모든 좋은 것들은 그것이 유한하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환기시킨다.

철학에서는 죽음의 네 가지 특성을 이야기한다. 인간은 ‘반드시 죽으며(필연성, inevitability)’, ‘얼마나 살지 모르고(가변성, variability)’, ‘언제 죽을지 모르는데다(예측불가능성, unpredictability)’ “어디서 어떻게 죽을지 모른다(편재성, ubiquity).’ 이와 같은 특성을 이해하며 삶의 유한성을 받아들일 때 우리는 비로소 죽음에 대한 두려움에서 벗어나 행복의 본질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다. 

저자는 ‘무엇이 삶을 살아갈 만한 가치가 있는 것으로 만들어주는가?’라는 대단원의 질문을 던지며 삶의 가치는 삶 그 자체가 아니라 삶 속에 채워지는 ‘내용물(contents)’ 즉, 삶을 채우는 좋은 것과 나쁜 것의 총합을 통해 삶의 가치를 평가할 수 있다고 답한다(그릇 이론, container theory). 결국 “우리가 주목해야 할 대상은 삶 자체나 죽음 자체가 아니라, 태어나서 죽기까지의 과정”이라는 것이다. 우리에게 얼마 주어지지 않은 시간 동안 삶을 가능한 많은 것들로 채워 넣기 위해, 즉 행복지수가 높은 삶을 위한 전략을 어떻게 짜야 하는지 설명한다. 그리고 저자는 자살이 도덕적이고 합리적인 선택이 될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것을 끝으로 총 14강의 강의를 마친다.

죽음에 대한 모든 책은 삶을 이야기한다. “우리는 죽는다. 그렇기 때문에 잘 살아야 한다.” 어찌 보면 단순 명료한 이 결론을 위해 저자는 자신의 모든 지식과 사유를 동원해 우리를 철학의 유희로 이끌었다. 저자는 어제보다 더 또렷한 삶의 이유를 찾고자 하는 독자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환상에서 벗어나 죽음과 직접 대면하기를, 그리고 또 다시 살아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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